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이선우에게 있어 그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오래된 서고의 퀴퀴한 냄새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영역이었다. 세상의 이목과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서, 그는 사라진 문명과 잊힌 언어의 잔해들을 탐닉하며 살았다. 빛바랜 양피지 위에서 흘러내린 고대 언어의 흐느낌을 해독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의 외로운 탐구에 기꺼이 동참해 준 이는 강태호, 단 한 명뿐이었다. 태호는 선우와는 정반대의 인간이었다. 활기차고, 재기 넘치고, 무엇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는 선우가 미처 가닿지 못할 깊숙한 곳까지 탐험할 용기를 주었고, 선우가 해독한 지식의 조각들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태호는 선우의 세상에 들어온 유일한 빛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랬다.

“선우야, 이건 좀 달라.”

어느 날 태호가 낡은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선우의 연구실 문을 벌컥 열었다. 상자 안에는 시커먼 진흙으로 빚은 듯한 작은 조각상이 들어있었다. 불규칙한 형태,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틀린 윤곽, 그리고 온몸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문양들. 선우는 조각상을 보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기이한 유물 속에서 살았지만, 이런 불쾌한 기운은 처음이었다.

“어디서 찾은 거야?” 선우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글쎄, 아는 형님이 정리하던 창고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걸 본 순간 네가 떠올랐어. 분명 뭔가 있을 거야.”

태호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것은 지적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마치 금단의 과실을 탐하는 자의 탐욕처럼 보였다. 하지만 선우는 그 위험한 불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오래된 친구의 변함없는 열정에 감응했을 뿐이었다.

선우는 조각상에 새겨진 문양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며칠 밤낮을 매달렸다. 처음에는 단순한 상형문자처럼 보였던 것들이 점차 유기적인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유사한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뒤틀린 체계였다. 해독이 진행될수록 선우는 기이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심연 속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속삭임, 아득한 우주에서 번뜩이는 차가운 눈동자,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형적인 형태의 그림자들이 그의 밤을 잠식했다.

“이건… 제물에 대한 의식이야.”

마침내 선우가 해독을 마쳤을 때,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고통받는 존재들의 이름과, 그들을 ‘불러내는’ 방법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정점에는 하나의 존재, ‘그것’이 있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우주적 공포의 심연에서 솟아난 이름.

태호는 선우의 옆에 서서 해독문을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숨길 수 없는 희열이 번져 있었다.
“제물? 설마 사람을 바친다는 거야?” 태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보다 흥분이 가득했다.
“이건 단순한 의식이 아니야. 존재 자체를 뒤틀어버리는 문이야. 이 조각상은… 열쇠야.” 선우는 조각상을 들어 올렸다. 조각상이 뿜어내는 어둡고 차가운 기운이 그의 손을 휘감는 듯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돼.”

선우는 조각상을 즉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태호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봐, 선우야.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힘이야. 이걸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린 세상을 바꿀 수 있어.”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파멸시킬 거야!”

그때부터 태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선우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조각상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이전의 활기 넘치던 친구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갈망만이 남은 듯했다.

다음 날, 태호는 선우를 이끌고 학교 외곽의 낡은 연구실로 향했다. 그곳은 한때 폐쇄된 고문서 보관소였지만, 이제는 태호가 몰래 점거하여 자신만의 은신처로 쓰고 있었다. 선우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지만, 태호의 강한 설득과 알 수 없는 압력에 밀려 결국 그를 따랐다.

“선우야, 우리가 이걸 여기까지 해냈잖아.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어.”
태호가 벽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선우가 해독한 문양과 똑같은 형태의 제단이 그려져 있었다. 누군가 미리 그려놓은 듯 완벽했다. 선우는 숨을 헙 들이켰다.
“네가… 이걸 다 계획한 거였어?”
“계획이라니? 이건 우리의 위대한 발견이야.” 태호는 선우의 어깨를 잡고 빙긋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차갑고 낯설었다.

태호는 조각상을 제단 중앙에 놓았다. 그리고 해독문에서 언급된 대로 몇 가지 향과 기이한 빛을 내는 광석들을 배열하기 시작했다. 선우는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안 돼! 태호야, 제발 멈춰! 이건 위험해!”
“걱정 마, 친구. 네가 옆에 있는데 뭐가 두렵겠어.”
태호는 선우의 말을 무시한 채, 해독문에 적힌 구절들을 읊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우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선우가 해독한 언어였다. 그 소리가 연구실을 채우자, 공기 자체가 뒤틀리는 듯했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가 뚝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선우는 비명을 지르며 태호에게 달려들었다. 이 미친 짓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태호는 이미 다른 존재에 홀린 듯했다. 그의 눈동자는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르트… 코나… 자’히아…”

빛과 그림자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연구실 중앙에 검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간의 틈새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틈새였다. 균열 너머에서 알 수 없는 형체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끔찍한 비명과 함께 선우의 귓가에 수십 개의 목소리가 속삭였다. 그의 이성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이걸로… 난 새로운 존재가 될 거야. 그리고 너는…”

태호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선우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이 위대한 현현의 첫 번째 제물이 되겠지.”

태호가 돌연 선우의 등 뒤를 강하게 밀쳤다. 선우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검은 균열 속으로 떨어졌다. 그의 비명은 이미 변형된 균열 속에서 기괴하게 메아리쳤다.
“태호! 이 개자식…!”
선우의 시야에 태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멀어져갔다. 그의 입은 잔인한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의 눈은 승리감으로 번뜩였다. 그 시선은 선우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가 고작 이 정도 존재였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선우는 끝없이 추락했다. 차갑고 끈적한 촉수가 그의 몸을 휘감았고,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성이 붕괴되고, 육체가 조각나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강태호.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다.

차가운 심연 속에서, 복수의 맹세가 불꽃처럼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