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무대전: 백룡의 각성
장엄하게 솟아오른 용화대(龍華臺)는 오늘따라 더욱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수천, 수만의 강호인들이 운집한 관중석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고, 그들의 열기가 한겨울 서리마저 녹일 듯 뜨겁게 타올랐다. 거대한 돌기둥들이 하늘을 찌르고, 그 사이를 잇는 붉은 비단과 황금 술장식이 바람에 휘날렸다. 저 멀리, 위태롭게 흔들리는 황실의 깃발과 강호 맹주들의 문장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천하의 운명을 건 천무대전(天武大戰)의 준결승, 그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무대 중앙,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공기 속에서 한 젊은이가 조용히 숨을 골랐다. 류진이었다. 스무 살 남짓한 앳된 얼굴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굳건했고, 등 뒤에 매달린 검은 낡았지만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뿜어냈다. 수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그를 두고 ‘백룡(白龍)의 환생’이라 불렀다. 하지만 류진은 그런 칭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눈앞의 무대에만 집중했다.
“다음 대결! 청운문(靑雲門)의 흑풍대사(黑風大師)와 무영검객(無影劍客) 류진(柳眞)!”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이 용화대 전체를 뒤흔들었다. 함성과 환호가 폭발했고, 곧이어 흑풍대사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는 말 그대로 ‘검은 바람’ 같았다. 거구의 몸집을 검은 도포로 감싼 흑풍대사는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묵직하게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 한 걸음마다 용화대의 단단한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듯했다. 그가 한때 강호 무림을 피로 물들였던 ‘흑철권(黑鐵拳)’의 계승자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를 스쳐 지나는 바람조차 얼어붙을 것 같은 살기가 류진을 향해 쏟아졌다.
류진은 그 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흔들림 없었다. 그의 스승은 어린 시절 그에게 말했다. “진아, 검은 곧 너의 마음이다. 흔들림 없는 마음에서 비로소 흔들림 없는 검이 나오는 법.” 그 가르침은 류진의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어린 친구.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만, 네 상대는 내가 아니다. 무대를 잘못 고른 것을 후회하게 될 게야.”
흑풍대사의 목소리는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듯 묵직했다. 그의 시선은 류진의 어깨 너머, 관중석을 향했다. 마치 류진을 무대에 서 있는 존재로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오만함이었다.
류진은 조용히 답했다. “대사께서도 여기까지 오셨을 뿐. 승부를 결정짓는 건 결국 무대 위에서 펼쳐질 한 수 한 수일 터.”
“흥! 건방진 놈.”
흑풍대사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내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압력이 용화대 위를 짓눌렀다. 관중석에서는 저절로 침묵이 흘렀다. 저 압도적인 기세 앞에서 감히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류진은 두 손으로 허리춤의 검을 천천히 그러쥐었다. 그의 손은 가늘었지만, 그립은 흔들림 없었다.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은 한 줄기 백광을 뿜어냈다. 날카로운 검기가 용화대의 공기를 갈랐다.
“시작!”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흑풍대사가 발을 굴렀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그의 육중한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류진에게로 돌진했다. 마치 산이 움직이는 듯한 박력이었다.
“흑철권! 천산벽력격(千山霹靂擊)!”
그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회오리치며 류진을 덮쳤다. 눈앞에 거대한 벽이 밀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바위조차 산산조각 날 일격이었다.
하지만 류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휘이잉!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류진의 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흑풍대사의 주먹은 허공을 가르고 용화대 바닥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어디냐!”
흑풍대사의 시선이 빠르게 허공을 훑었다. 강호 무림에서 흑철권은 속도보다는 파괴력으로 승부하는 권법이었다. 그렇기에 흑풍대사에게는 류진의 저런 ‘잔상’을 남기는 검술이 가장 성가셨다.
쉬익! 류진의 검이 흑풍대사의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검은 흑풍대사의 검은 도포를 찢었지만, 육중한 육신에는 작은 상처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의 몸은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흑철과도 같았다.
“젠장, 끄적이는 칼날로는 나를 벨 수 없다!”
흑풍대사가 으르렁거렸다. 그는 몸을 돌려 무작위로 주먹을 휘둘렀다. 쾅! 쾅! 쾅! 용화대 바닥이 그의 주먹질에 갈라지고 부서졌다. 그야말로 파괴의 폭풍이었다. 그의 목적은 류진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류진이 설 공간 자체를 없애버리는 듯했다.
류진은 그 폭풍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다. 그의 검은 언제나 빈틈을 노렸지만, 흑풍대사의 육중한 방어와 쉴 새 없는 공격은 그 빈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류진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혔다.
‘역시… 흑철권의 내공은 상상 이상이군. 어설픈 검으로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어.’
류진은 생각했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이 대회에서, 북방의 이민족들이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는 이 시점에서, 무림의 맹주가 될 자격은 오직 최강자에게만 주어지는 법.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때, 흑풍대사가 갑자기 정지했다.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류진의 움직임을 예측한 듯, 류진이 착지할 만한 지점을 향해 팔을 뻗었다.
“흑철권! 대붕탁룡식(大鵬啄龍式)!”
거대한 팔이 마치 독수리의 발톱처럼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 속에 갇히면 어떠한 고수라도 빠져나올 수 없는 위력이었다. 류진은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이 팔에 잡혔다.
“크윽…!”
류진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흑풍대사의 악력은 강철 같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덮쳤다.
“이것으로 끝이다, 애송이!”
흑풍대사는 류진을 잡은 채 번쩍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용화대 바닥에 내리치려 했다. 그 모습은 흡사 거인이 장난감 인형을 다루는 것과 같았다.
그 순간, 류진의 눈빛이 번뜩였다. 고통 속에서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전수했던 마지막 비기, ‘백룡비천결(白龍飛天訣)’의 정수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검은 곧 나. 내가 가는 길이 곧 검의 길!’
류진의 몸에서 백색의 기운이 폭발했다. 그것은 흑풍대사의 검은 내공과는 다른, 순수하고 강렬한 빛이었다. 그의 손에 쥐인 검이 마치 살아있는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백룡비천결! 역린참(逆鱗斬)!”
잡힌 채 거꾸로 매달린 류진의 몸이 회오리쳤다. 그의 검은 흑풍대사의 팔뚝, 그 육중한 근육 사이의 미세한 틈을 향해 섬광처럼 파고들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 검은 이미 흑풍대사의 몸 깊숙이 박혀 있었다.
“커억!”
흑풍대사의 거대한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손아귀에 잡혀 있던 류진이 자유로워졌다. 류진은 착지하자마자 몸을 굴러 거리를 벌렸다.
흑풍대사는 자신의 팔뚝에 박힌 검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고통이 뒤섞여 있었다. 흑철권법으로 단련된 그의 몸에 감히 상처를 낸 자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 상처가 단순히 겉만 찢은 것이 아니라, 그의 내공 흐름을 뒤흔들고 있었다.
류진은 고통으로 휘청거리는 흑풍대사를 응시했다. 그의 검에서는 여전히 백색의 빛이 서려 있었고, 그의 눈은 한층 더 깊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은 이제야 진짜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