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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1: 망각의 심장부**
“캡틴 이지안, 항해 일지 갱신. 우주력 2537년 8월 12일. 개척자호, 망각의 심장부 진입 172일째. 특별한 이상 없음. 외부 은하 탐사선으로서의 임무… 계속 수행 중.”
이지안은 텅 빈 관제실에 홀로 앉아 나직이 읊조렸다. 얇고 푸른 홀로그램 화면 위로 수없이 많은 별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빛의 속도로 수십 년을 달려온 이곳은 인류의 지도가 닿는 마지막 경계, 아니, 경계 너머의 미지였다. 망각의 심장부.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이 잊힌 듯 고요하고,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정지된 공간이었다.
‘특별한 이상 없음.’
그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 이상 없음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평화인지, 지구의 누구라도 알까. 3년째, 오직 검은 배경에 뿌려진 차가운 별들만이 개척자호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때였다. 관제실의 고요를 찢고 비상 신호음이 울렸다. “삐비빅—! 비비비빅—!”
이지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의 반사적으로 손이 홀로그램 패널 위로 움직였다. “관제실, 캡틴 이지안! 무슨 일인가?”
“서, 서연입니다! 캡틴, 이건… 전례 없는 상황입니다!” 항법사 박서연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넘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지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의 메인 스크린을 바라봤다. 일반적으로는 아무것도 없을 검은 심연, 그 한가운데에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깜빡이고 있었다.
`미확인 에너지원 감지!`
`패턴 불일치!`
`기존 데이터베이스 일치율 0.0001%!`
“민준, 기관실은 괜찮나?” 이지안은 곧바로 수석 과학자 김민준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침착하려 애썼지만,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0.0001%? 그것은 곧 ‘없다’는 의미였다.
“최대한 접근 중입니다, 캡틴! 현재까지 기관 계통 이상 없음. 다만… 에너지원 데이터가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에너지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아요. 자연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김민준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역력했다. 지루함에 잠식되어 가던 그의 과학자적 호기심이 마침내 깨어난 것이다.
“인공물… 이라는 건가?” 이지안이 중얼거렸다. 망각의 심장부에서 인공물이라니.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니요, 캡틴. 단순한 인공물이라면, 적어도 에너지 방출 패턴이나 구성 물질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이건…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물질에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민준은 거의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데이터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당장 분석팀을 꾸려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진정해, 민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이지안은 냉정하게 말했다. “서연, 현 위치에서 최대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전방 스크린에 미확인 물체를 확대해.”
메인 스크린이 지직거리더니, 검은 우주 한가운데에 하나의 형체가 잡혔다. 처음엔 그저 점에 불과했지만, 확대될수록 그 윤곽이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했다.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완벽한 정팔면체.
표면은 마치 가장 깊은 밤의 암흑을 응축해 놓은 듯,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어떠한 반사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가장자리에서는 아주 미세한, 푸른빛이 일렁였다.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세상에…” 박서연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눈을 비볐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저게… 뭐야?” 기관장 최준혁이 뒤늦게 관제실로 뛰어들어오며 물었다. 그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있었지만, 스크린을 보자마자 모든 피로가 날아간 듯했다.
이지안은 숨을 들이켰다. 정지해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 미세한 푸른 파동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마치 태고의 어떤 존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기분이었다.
“미확인 외계 유물. 혹은… 그 이상.” 이지안은 나직이 대답했다. “스캔 결과를 다시 보내봐, 민준.”
“보내고 있습니다, 캡틴. 하지만… 대부분의 스캐너가 오류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표면 성분은 감지 불가. 내부 구조도 파악 불가. 어떤 종류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심지어는 물질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민준은 경이와 좌절이 뒤섞인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저… ‘거기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명확합니다.”
“온도, 질량, 밀도… 어떤 수치라도 없어?” 최준혁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무합니다. 측정 가능한 모든 물리량이 이상 값을 뱉어내거나, 아예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지안은 스크린 속의 완벽한 정팔면체를 응시했다. 인류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
“전 함선에 비상 경계령을 내려. 모든 무장은 대기 상태로 전환. 하지만 절대로 먼저 도발하지 마.” 이지안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서연, 최대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유물의 주변 궤도에 진입해. 모든 탐사 드론을 발진시켜.”
“네, 캡틴.” 박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조종간을 잡았다. 개척자호는 거대한 유물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드론들이 유물을 향해 날아갔다. 수십 개의 소형 드론들이 유물의 표면을 정밀하게 촬영하고, 각종 센서로 데이터를 수집하려 애썼다. 드론들의 카메라가 근접 촬영한 유물의 표면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끈하고, 완벽하며, 어떤 흠집 하나 없었다. 수억 년의 시간을 견딘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방금 만들어진 것처럼 완벽했다.
그때, 유물 가장자리의 푸른빛 파동이 갑자기 강렬해졌다.
“캡틴! 유물에서 반응이 있습니다! 드론들이… 드론들이 통제를 벗어납니다!” 박서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메인 스크린에는 드론들이 일제히 유물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잡혔다.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드론들은 통제 불능 상태로 유물 표면에 맹렬하게 부딪혔다.
“이게 무슨…!” 최준혁이 경악했다.
드론들은 유물의 검은 표면에 닿는 순간,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아무런 폭발음도, 파편도 남기지 않고, 그저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것이다.
관제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지안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들은 지금, 인류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와 마주하고 있었다.
유물의 푸른빛 파동이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개척자호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함선 진동! 원인 불명! 모든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습니다!” 최준혁이 소리쳤다. “캡틴! 엔진 출력이… 떨어집니다!”
개척자호는 마치 거대한 손에 붙잡힌 듯, 유물을 향해 끌려가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 유물은 이제 거대한 푸른빛의 심장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마치 우주의 심연에서 속삭이듯, 하나의 형상이 일렁였다.
“이건… 무슨…?” 민준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빛의 잔상이 아니었다. 형상이었다.
불확실하고, 유동적이지만, 분명히 인식 가능한 ‘무언가’가 유물의 표면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고대의 문자와 같았다. 혹은 알 수 없는 기호의 나열.
개척자호의 함교를 가득 메운 사이렌 소리와 함께, 그 형상들은 곧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되었다.
그 이미지는 메인 스크린을 넘어, 함교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이지안은, 그 이미지 속에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거대한… 눈을 보았다.
알 수 없는 존재의, 너무나도 깊고, 너무나도 오래된 눈동자를.
동시에, 그 눈동자의 심연에서, 인류의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너무나 명확한 ‘의지’가, 그들의 마음속에 직접적으로 울려 퍼졌다.
*너희는…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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