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어둠 속의 칼날

만월이 기울어가는 깊은 밤, 화려한 연등이 수놓인 천봉문의 대연회장은 잔치 분위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문도들이 웃음꽃을 피웠고, 명문정파의 고수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백무영의 위업을 칭송했다. 탁자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고, 향긋한 술내음이 공기를 가득 채웠다. 모두가 흥겹게 떠들었지만, 단 한 사람, 백무영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그는 금빛 수려한 비단포를 두르고 상석에 앉아 있었으나, 그의 시선은 끊임없이 연회장 구석의 어둠을 훑고 있었다.

“백 소협! 오늘 같은 길일에 어찌 그리 수심이 깊으시오?”

주인장 격인 천봉문의 문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잔을 채웠다. 백무영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받았다.

“별말씀을요, 문주님. 그저 과분한 칭송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눈동자는 여전히 예리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거나, 혹은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연회장 한구석,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워진 기둥 뒤에서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백무영의 등골에는 차가운 전율이 스쳤다.

***

류진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의 검은 장포는 그림자와 하나가 되어 어떤 존재도 그의 모습을 포착할 수 없게 만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두 눈만이 이글거리는 불꽃처럼 번뜩였다. 저 화려한 연회장, 웃음꽃 피운 군중,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앉아 있는 남자. 백무영.

‘웃어라. 실컷 웃어라.’

그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걸렸다. 2년 전,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빗줄기 쏟아지던 밤, 절벽 끝에서 그의 가슴을 꿰뚫었던 칼날. 친우의 얼굴에 떠올랐던 섬뜩한 미소와, 피투성이로 추락하는 자신을 향해 던졌던 싸늘한 한마디.

*“류진. 네 시대는 끝났다.”*

그 한마디가 그의 영혼을 조각조각 찢어발겼다. 살점이 뜯겨나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보다 더 깊은, 심장을 갈라놓는 배신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지옥 같은 아귀다툼 속에서 그는 살아남았고, 이제는 어둠을 딛고 일어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의 심장에는 오직 증오만이 피어올랐고, 그의 손에 들린 검에는 복수의 피가 흘러넘치길 갈망했다.

류진은 천천히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그의 발소리는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았고, 그의 존재는 연회장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오직 백무영만이 그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백무영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고, 손은 무의식중에 허리춤의 검자루로 향했다.

“누, 누구시오?!”

가장 가까이 있던 문도가 류진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늦었다. 류진의 그림자가 번개처럼 백무영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오랜만이다, 친구.”

나직하지만 지독히도 차가운 목소리. 등 뒤에서 들려온 그 목소리에 백무영의 온몸이 굳었다. 술잔을 놓치며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정적이 감돌았다. 모든 시선이 백무영과 그 뒤의 검은 그림자에게로 향했다.

백무영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류진의 얼굴을 훑었다. 흉터가 가득한 얼굴, 퀭한 눈,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지독한 증오의 불꽃은 과거의 류진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류, 류진…? 설마… 네가 살아있을 줄은…!”

그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손은 이미 검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살아남아서 기분이 어떤가? 지옥에서 돌아온 기분 말이다.”

류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얼음 칼날처럼 백무영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네놈의 피로 이 지옥을 끝내러 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류진의 손에서 번개 같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검은 장포 속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칠흑 같은 검이었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연회장을 찢었다. 류진의 검은 미련 없이 백무영의 목덜미를 겨냥했다. 단 한 찰나의 망설임도 없는, 오직 죽음을 위한 일격이었다.

“무례하다!”

백무영은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검을 뽑아 막아냈다. 쨍그랑! 쇠와 쇠가 부딪치는 섬뜩한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불꽃이 튀었고, 연회장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술잔들이 깨지고,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무영의 검술은 여전히 정교하고 빨랐다. 하지만 류진의 검은 그보다 훨씬 격렬하고, 처절했으며, 생명을 초월한 듯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검은 더 이상 정파의 검법이 아니었다. 그림자를 쫓고, 어둠을 가르는, 살의로만 가득 찬 마검(魔劍)이었다.

두 자루의 검이 공중에서 춤을 추듯 얽히고설켰다. 류진의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백무영의 피부를 할퀴는 듯했다. 백무영은 필사적으로 막아섰지만, 류진의 매서운 일격에 그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이것이 네가 살아남은 대가인가… 지옥에서 배운 검술이냐!”

백무영이 이를 악물고 반격했지만, 류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대가? 고작 그딴 것으로 나의 고통을 논하지 마라.”

류진의 검이 백무영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백무영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지만, 류진의 검 끝이 그의 어깨를 스쳤다. 화려한 비단옷이 찢겨나가고, 선혈이 솟구쳤다. 백무영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막아라! 저 살인귀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천봉문의 문도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류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검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단 한 번의 회전으로 수십 명의 문도들을 동시에 베어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문도들의 모습에 연회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백무영은 류진의 변모에 경악했다. 과거의 류진은 분명 강했지만, 이토록 잔인하고 처절하지는 않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인간의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복수심에 미친 광기만이 서려 있었다.

“백무영. 이제 시작이다.”

류진의 목소리가 연회장의 혼란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검이 붉은 핏물을 머금고 섬뜩하게 번뜩였다. 백무영은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죽이려 했던 친구는, 이제 지옥의 문을 열고 돌아온 복수의 화신이라는 것을.

류진은 한 걸음, 한 걸음 백무영에게로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가 연회장을 지배했고, 그의 검 끝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백무영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두고 봐라, 무영아.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갔던 모든 것들을, 피로 되갚아줄 테니.”

마치 사자의 포효처럼, 류진의 복수심 가득한 외침이 천봉문의 밤하늘을 갈랐다. 연회장은 피비린내와 공포로 가득 찼고, 백무영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진정한 두려움이 서렸다. 복수의 칼날은 이제 막 춤을 시작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