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오래된 저택의 정원, 경광등의 붉고 푸른 섬광이 빗물에 젖은 나뭇잎 위로 미끄러졌다. 낡은 철문 앞에 선 이수진 형사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빗방울이 후드득 얼굴을 때렸지만, 그녀의 신경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무전기에서는 이미 도착한 선배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수진 형사! 어서 들어와!”
선배 형사의 독촉에 수진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삐걱이는 문을 지나자, 정돈되지 않은 숲길이 나타났다. 으스스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밤하늘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택은 이 고립된 공간의 주인만큼이나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예술계의 은둔자’라 불리던 한정호 화백의 집. 그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거대한 저택의 현관은 이미 포렌식 팀과 강력반 형사들로 북적였다. 공기 중에는 흙냄새와 묘한 비릿함이 뒤섞여 있었다. 수진은 선배 형사 강태식 반장에게 다가갔다. 강 반장은 초조한 얼굴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반장님?”
수진의 목소리는 제법 차분했지만, 심장은 빠르게 고동치고 있었다. 이런 끔찍한 현장은 몇 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끔찍해. 말 그대로 끔찍해.” 강 반장이 낮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저택 2층 창문을 향해 있었다. “발견자는 한 화백의 유일한 혈육인 조카 김민재 씨. 오늘 아침 일찍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가 발견했다고 해. 연락이 안 돼서 찾아왔다는데….”
“피해자는 한정호 화백입니까?”
“그래. 서재에서 발견됐어.” 강 반장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밀실이라는 거야.”
수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밀실 살인. 모든 형사들의 악몽이자, 동시에 가장 풀고 싶은 미스터리.
강 반장은 수진의 어깨를 붙잡고 2층으로 이끌었다. 삐걱이는 나무 계단을 오르는 내내, 기이한 침묵이 이어졌다. 복도 끝, 서재 문 앞에는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고리에는 흰색 끈이 매달려 있었고, 문틀에는 지문 채취용 검은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발견 당시,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어. 안팎으로 잠긴 흔적은 없고, 오직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 구조야. 창문도 마찬가지. 굳게 닫혀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어. 쇠창살까지 박혀 있어서 사실상 외부 침입은 불가능해.” 강 반장이 한숨처럼 말했다.
수진은 문 안으로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앤티크 가구와 그림들로 가득 찬 서재. 그 한가운데, 거대한 책상 앞에는 한정호 화백이 쓰러져 있었다. 검붉은 피가 나무 바닥에 흥건했고, 화려한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도 끔찍한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는 명백히,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사망한 상태였다. 가슴에 깊게 박힌 칼자루가 섬뜩하게 박혀 있었다.
“범행 도구는 저겁니까?” 수진이 물었다.
“그래. 피해자 소유의 장식용 단검이야. 지문은 아직 확인 중이지만, 아마도 피해자 지문만 나올 가능성이 높아.”
수진은 현장을 꼼꼼히 살폈다. 문과 창문의 잠금장치, 흙먼지 하나 없는 바닥, 흐트러짐 없는 가구 배치. 완벽한 밀실이었다. 어떻게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까? 피해자가 스스로 단검을 꽂았다고 하기에는 상처가 너무나 깊고 끔찍했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살해 후 밀실을 만든 트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때, 현관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나지막하지만 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현장 보존은 잘 된 건가요?”
수진은 고개를 돌렸다. 한 남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짙은 회색 코트 차림의 그는 한 손에는 낡은 가죽 서류철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은테 안경을 매만지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짧은 머리칼과,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눈동자. 서강우. ‘천재 탐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경찰청 고위층에서 비공식적으로 자문을 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경찰이 아니었지만, 그의 수많은 사건 해결은 이미 전설에 가까웠다.
강 반장의 얼굴에 미묘한 안도감과 동시에 불편함이 스쳤다. “늦었군, 서군. 아니, 늦을 줄 알았네.”
서강우는 피식 웃으며 강 반장을 지나쳐 서재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선은 곧장 서재 안으로 향했고, 마치 스캔이라도 하는 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눈빛은 주변의 감식반원이나 형사들처럼 당황하거나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냉철함이 깃들어 있었다.
“피해자의 사인은 과다출혈과 심장 파열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됩니다.” 수진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흉기는 장식용 단검, 안방에서 발견되었고, 피해자의 것…”
서강우는 손을 들어 수진의 말을 끊었다. “알겠습니다. 이 형사님 맞죠? 기록을 읽는 것보다 현장을 보는 게 빠르겠습니다.”
수진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무례함이 특유의 천재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다른 형사들도 침묵했다. 서강우는 서재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현장의 모든 작은 변화를 감지하려는 듯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침없었다. 그는 피해자의 시신 근처로 다가갔다.
“피해자는 사망 직전까지 어떤 활동을 했습니까?” 서강우가 묻는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발견자는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붓과 물감이 있었고…” 수진이 답했다.
서강우는 피해자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그의 눈은 시신에 박힌 단검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문에서부터 창문, 그리고 천장까지 훑어 내려갔다.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
“사건 발생 시각은 대략 언제로 추정되죠?”
“새벽 2시에서 4시 사이로 예상됩니다. 발견자 진술에 따르면,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화백의 습관과 시신 경직도를 고려했을 때…” 강 반장이 대신 답했다.
서강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떴다. 그의 시선은 이제 서재 바닥 한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으로 향했다. 평범한 화분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흙과 이름 모를 식물.
“이 화분은 원래 저기에 있던 겁니까?” 그가 물었다.
감식반원이 답했다. “네, 피해자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라 함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서강우는 화분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숙여 화분 속 흙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 올렸다. 흙은 축축했다. 그는 냄새를 맡았다.
“젖은 흙이네요.” 서강우가 말했다. “누군가 최근에 물을 준 모양입니다. 그것도 아주 듬뿍.”
모두의 시선이 화분으로 향했다. 작은 화분, 젖은 흙. 그것이 이 밀실 살인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강 반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서강우는 화분에서 손을 떼고는 시신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그의 입술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비웃음도, 냉소도 아닌,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였다.
“트릭은 언제나 사소한 곳에 숨어 있습니다.” 서강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눈은 서재 천장 모서리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 밀실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어쩌면, 범인은 애초에 이 방을 나갈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죠.”
수진은 그의 마지막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갈 생각이 없었다니? 그건 무슨 의미인가? 범인이 자살했다는 말인가? 하지만 현장에는 두 번째 시신은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여전히 이 안에 있다는 말인가?
서강우는 주변의 당혹스러운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재의 문턱을 다시 넘어섰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될 겁니다. 범인이 숨겨놓은 그림자 속에서, 그 놈의 어설픈 연극을 찾아내는 것. 그게 제가 할 일이죠.”
밤은 깊어지고 빗소리는 여전히 창밖을 두드리고 있었다. 밀실의 장막은 조금도 걷히지 않은 채, 서강우의 싸늘한 선언만이 어둠 속을 가로질렀다. 이 복잡한 미스터리의 첫 번째 조각이, 이제 막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