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드네 호 – 항성력 325년, 세페우스 자리 외곽성계**
한서아는 모니터에 떠오른 희뿌연 성운 지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리아드네 호는 지금, 우주의 가장자리,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유영하는 중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루했다. 행성 탐사 전문가이자 고고학자인 그녀의 본분은 새로운 문명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건만, 최근 몇 달간 아리아드네 호가 발견한 것은 낡은 우주 부유물 몇 조각과 미확인 미생물 콜로니 정도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강태준 함장님은 ‘쓸데없이 우주선 예산만 갉아먹는 무의미한 탐사’라고 으르렁거렸을 테지만.
“서아 씨, 함교로 와주시겠습니까? 이상 징후가 포착됐습니다.”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박지수 부함장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활기찼지만, 어딘지 모르게 흥분기가 서려 있었다. 평소라면 한숨부터 쉬었을 서아였지만, ‘이상 징후’라는 말에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드디어!
서아는 망설임 없이 일어섰다. 함교로 향하는 복도를 걷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함교에 들어서자마자 서아의 시선은 거대한 메인 스크린에 고정됐다. 검은 우주 공간 한가운데, 작지만 선명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보랏빛과 푸른빛이 오묘하게 섞인 형체였다.
“이게… 뭔가요?” 서아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저도 처음 보는 형태입니다, 서아 씨.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정보가 전혀 없어요.” 지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빛을 좇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의 중심에, 강태준 함장이 서 있었다. 늘 그렇듯 완벽하게 정리된 은회색 제복,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의 시선은 메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미간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탐사선 발진 준비.” 태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결코 감출 수 없는 호기심이 배어 있었다. “서아 씨는 탐사팀에 합류합니다.”
“네? 아, 네! 물론입니다!” 서아는 생각보다 빠르게 떨어지는 지시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얼굴에 미소를 피웠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발견인가!
작은 탐사선이 아리아드네 호의 도킹 베이를 벗어나 미지의 물체로 다가갔다. 탐사선 내부의 모니터에는 물체의 상세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그 형체는 더욱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매끄럽고 유기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하고, 동시에 완벽한 기하학적 결정체 같기도 했다. 표면에는 미세하게 빛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문양들은 마치 끊임없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금속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유기물도 아닌 것 같고…” 서아는 현미경 화면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분광 분석 결과도 비정상적입니다. 에너지 파장이… 매우 독특해요.”
탐사팀은 조심스럽게 물체를 회수하여 탐사선 안으로 들였다. 물체가 탐사선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서아는 몸이 흠칫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텅 빈 공간을 채우는 듯한, 웅장하고 미묘한 진동이 탐사선 전체를 감쌌다.
“괜찮으십니까, 서아 씨?” 옆에서 지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괜찮아요. 그냥… 기분 탓이겠죠.” 서아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등골을 타고 오르는 묘한 서늘함은 지울 수 없었다.
아리아드네 호로 귀환한 탐사팀은 물체를 격리실로 옮겼다. 강태준 함장은 직접 격리실 앞에서 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평소보다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어떤가, 서아 씨. 정체는 파악했나?” 태준의 목소리에는 권위가 서려 있었지만, 그 뒤에는 불안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아직은요, 함장님. 워낙 특이해서… 하지만 분명 외계 유물입니다. 인공적인 동시에 자연적이고, 죽어있는 동시에 살아있는 듯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예요.” 서아는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살아있는 듯하다니.” 태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유리창 너머의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유물은 이제 보랏빛과 푸른빛을 넘어, 희미하게 붉은색을 띠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격리실 문을 지키던 보안 요원 중 한 명이 갑자기 몸을 흔들더니, 엉뚱한 자세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하, 함장님! 제가 얼마나 당신을… 존경하는지 아십니까! 이 몸 바쳐… 충성!”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눈은 비정상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짓인가, 김 일병!”
“함장님, 제 심장이! 제 심장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 안의 모든 불꽃이 당신을 향하고 있다고!” 김 일병은 엉뚱한 방향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더니, 갑자기 격리실 문에 이마를 박기 시작했다. “오, 영원한 나의 캡틴!”
서아와 지수는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이건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진정해요, 김 일병! 대체 왜 이러세요?” 서아가 다가가 말렸지만, 김 일병은 서아를 밀쳐내며 더욱 격렬하게 문에 머리를 박았다.
“젠장. 격리실 안의 유물 때문인가?” 지수가 다급하게 유물 쪽을 보았다. 유물의 붉은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강태준 함장의 얼굴은 굳어졌지만, 그의 눈빛은 묘한 감정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서아를 향해 돌아섰다.
“한서아 씨.”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아져 있었고, 마치 온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내 모든 것이다.”
서아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귓가를 울리는 태준의 목소리에 그녀의 얼굴은 화르륵 달아올랐다. 아니, 지금 무슨…!
“함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서아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당신은… 이 아리아드네 호의 가장 빛나는 별이오. 나의 은하수를 밝히는 유일한 존재.” 태준은 한 걸음, 한 걸음 서아에게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처럼 빛나고 있었다. “내 심장이, 당신을 원하고 있어. 거부하지 마시오, 한서아.”
서아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함장님, 지금 제정신이 아니신 거야! 외계 유물 때문에! 그런데… 그의 눈빛은 왜 이렇게… 진심처럼 느껴지는 걸까.
“함장님! 위험합니다! 진정하세요!” 지수가 당황하여 외쳤다.
하지만 태준은 지수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서아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했고, 서아는 놀라 뒤로 주춤거렸다.
“내 모든 것을 바쳐… 당신을 지키겠소.”
태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아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건 꿈인가? 아니, 현실이다! 눈앞의 김 일병은 여전히 격리실 문에 이마를 박으며 “함장님 사랑합니다!”를 외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이게 무슨…!
그때였다. 격리실 안의 유물이 엄청난 섬광을 내뿜으며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보라색, 붉은색 빛이 뒤섞여 함교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동시에, 아리아드네 호 전체의 전력이 불안정하게 깜빡거렸다.
“함장님! 유물의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격리 장치가 버티질 못해요!” 지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유물의 섬광이 최고조에 달하자, 서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에 찌릿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강한 충격이 그녀를 덮쳤다.
눈을 떴을 때, 서아는 제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주위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함교의 차가운 금속 벽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는 어딘지 모를 미지의 행성 위에 서 있었다. 하늘에는 오색찬란한 두 개의 달이 떠 있었고, 발아래에는 부드러운 초록빛 이끼가 깔려 있었다.
“이게… 대체…?”
서아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태준 함장이었다.
그는 은회색 제복 대신, 짙은 남색의 화려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고, 그윽한 눈빛으로 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서아에게로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숲의 요정들이 춤을 추는 듯한 환영이 아른거렸다.
“드디어… 당신을 찾았군, 나의… 공주님.”
태준의 목소리는 서아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공주님’이라는 단어에 서아는 거의 질식할 뻔했다.
“함장님… 지금… 어디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서아는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태준은 서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의 손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강렬했다.
“내가 꿈꿔왔던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유일한 여왕.” 태준은 서아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갈망으로 가득했다. “나와 함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해주오, 한서아.”
서아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남자가 진짜 함장님이라고? 지금… 대체… 어떤 상황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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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