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소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잿빛 먼지가 끊임없이 흩날리는 하늘 아래, 세상은 언제나 침묵으로 가득했다. 무너진 빌딩의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아 과거의 영화를 조용히 조롱하는 듯했다. 그 잔해들 사이를 비집고,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딛는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하아… 하아…”

메마른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아린은 땀으로 축축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낡은 방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텁텁한 흙먼지가 목구멍을 긁는 고통은 여전했다. 그녀의 어깨에는 오래된 천으로 만든 낡은 배낭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속에는 며칠 치 비상 식량과 녹슨 공구 몇 개가 전부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주변을 쉴 새 없이 탐색했다. 한때는 번화했던 거리였을 곳은 이제 기괴하게 뒤틀린 변이 식물들이 콘크리트를 뚫고 솟아나 촉수를 흔들고 있었다. 삭막한 풍경 속에서, 아린의 몸에 걸친 누더기 같은 제복만이 희미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새벽별의 기사’라 불리던 그녀의 마법소녀 복장은, 이제는 온몸에 흠집과 때가 잔뜩 묻어 희망보다는 생존의 상징에 가까웠다.

“이번에도 헛걸음인가…”

텅 비어 버린 편의점 터에서 겨우 빈 통조림 캔 몇 개를 찾아낸 아린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애초에 바랐던 게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에너지 촉매제’는 대재앙 이후 가장 희귀한 자원 중 하나였고, 특히나 정화 시설에 쓰이는 고순도 촉매는 더더욱 그러했다. 우리들의 ‘새싹 은신처’에선 정화 필터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실 물조차 구하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때였다. 찌르르륵, 하고 낡은 통신기가 작게 울렸다. 흠칫 놀란 아린이 황급히 꺼내 들었다. 송신은 불가능하고 수신만 겨우 가능한, 망가진 기기였다.

— …아린? 무사해?

작은 오빠, 시우의 목소리였다. 잔뜩 지쳐 있었지만,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은 변함없는 듯했다.

“응, 시우. 아직까진 괜찮아.”

아린은 최대한 밝게 대답하려 애썼다. 사실은 발목을 삐끗한 후유증으로 걸을 때마다 시큰거렸고, 며칠 밤낮을 잠도 제대로 못 잔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 젠장,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우리 쪽도 탐색조가 별 성과를 못 내고 있어. 슬슬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아…

시우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감이 배어 있었다. 아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안 돼, 포기할 순 없어. 시우와 은신처의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데.

“아니, 아직이야. 저기… 저쪽 폐기물 처리장 쪽은 아직 안 가봤어. 어쩌면 그쪽에… 오래된 정화 시설의 잔해가 남아있을지도 몰라.”

아린의 시선은 저 멀리, 기형적으로 솟아오른 거대한 금속 탑들을 향했다. 예전에는 도시의 쓰레기를 처리하던 시설이었지만, 대재앙 이후엔 괴이한 변이 생물들의 안식처로 변해버린 곳이었다. 그곳에 발을 들이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 폐기물 처리장? 미쳤어, 아린! 그곳은 위험해! 돌아와. 차라리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

시우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통신기를 찢을 듯 울렸지만, 아린은 이미 돌아설 수 없었다. 그녀는 통신기를 끄고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손에 든 낡은 마법봉이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제복에 새겨진 별 문양에서도 푸른빛이 번져 나와 그녀의 지친 몸을 감쌌다.

“나는… 새벽별의 기사니까.”

작게 읊조린 그녀의 목소리는, 부서진 세상의 고요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마법은 화려한 공격이나 압도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둠을 밝히고, 부서진 것을 일시적으로 보강하며, 위험을 감지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생존을 위한 마법.

휘잉, 휘잉…

금속 탑들 사이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흡사 거대한 괴물이 울부짖는 것 같았다. 탑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물질들이 응고되어 기괴한 형상을 만들어냈고, 그 틈새에는 끈적거리는 변이 식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도 역한 화학 물질 냄새와 썩은 내음이 섞인 공기가 느껴졌다.

아린은 마법봉을 들어 올렸다. 쨍한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을 밝혔다.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끝없이 이어진 폐기물 더미와 녹슨 기계들이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그림자들.

키이익! 키이이익!

머리 위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녹슨 파이프와 철골 사이에서 거대한 변이 박쥐들이 날개를 펼치며 튀어나왔다. 날개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 있었고, 붉게 빛나는 눈동자는 굶주림으로 가득했다. 적어도 세 마리였다.

젠장, 설마 여기에까지 있을 줄이야. 아린은 이를 악물었다. 재빨리 몸을 낮추고 마법봉을 휘둘렀다. 푸른빛이 그녀의 주변에 얇은 막을 형성했다. ‘여명의 방패’. 방어에 특화된 그녀의 유일한 공격 수단이자 생존기였다. 변이 박쥐들이 쇄도하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방패를 긁어댔다. 끽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이대로는 안 돼. 마력만 낭비할 뿐이야.’

아린은 생각했다. 그녀의 마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방패를 유지하는 데도 상당한 마력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녀는 방어막을 유지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면에 커다란 환기구가 보였다.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아아앗!”

그녀는 짧게 기합을 내지르며 방패를 확장했다. 순간적으로 빛의 파동이 퍼져 나가며 변이 박쥐들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린은 전력으로 환기구로 몸을 던졌다. 쿵! 쿵! 철제 환기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뒤에서 닫히는 날개 소리를 들었다.

겨우 살았다.

어둠 속으로 더 깊이 기어 들어갔다. 철제 환기구는 좁고 먼지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변이 박쥐들의 공격을 피할 수는 있었다. 그녀는 마법봉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빛이 닿지 않는 깊은 곳,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이따금씩 바닥에 고인 오염된 물웅덩이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한참을 기어갔을까. 환기구의 끝이 보였다. 철제 그릴을 밀고 아래로 떨어지자, 거대한 지하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래된 정수 시설의 중심부였다.

“찾았다…”

아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녹슬고 부서진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숲처럼 솟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아직 빛을 잃지 않은 투명한 용기들이 보였다. 용기 안에는 푸른빛이 감도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고순도 정화 촉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지이잉…

발밑에서부터 섬뜩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지하 공간의 거대한 기계들 사이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촉매가 담긴 용기들 주변으로, 거대한 촉수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촉매를 보호하려는 듯, 아니면… 촉매를 흡수하려는 듯.

그것은 살아있었다. 폐기물 처리장의 심장부에 숨어있던, 대재앙이 낳은 거대한 변이 생명체였다. 아린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동자에, 푸른빛과 붉은빛이 동시에 요동쳤다. 이제 겨우 찾았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새벽별의 기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