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웹소설: 비검 무영 (飛劍無影)**
**제12화: 옥청각의 밀실**
정파 명문, 화산검문의 깊은 곳. 겹겹의 봉인과 수십 개의 수호진이 지키는 옥청각은 늘 적막했다. 그곳은 문파의 최고 원로 중 한 명인 금로(金老)께서 수십 년간 폐관 수련에 정진하던 성지였다.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으며, 영력을 이용한 침입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적막은 처참하게 깨어졌다.
“문이…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금로께서 응답이 없으십니다!”
호위대장 철룡(鐵龍)의 다급한 외침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매일 아침 금로의 기상에 맞춰 영초 차를 올리던 시동이 비명처럼 소리쳤고, 곧 수십 명의 호위 무사들이 옥청각 앞에 집결했다. 철룡은 가장 강력한 수호진의 봉인석을 해제하려 애썼지만, 굳게 잠긴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안에서 잠긴 듯, 혹은 외부의 영력에 완전히 저항하는 듯, 완강하게 침묵했다.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감히 누가 금로의 처소에 장난질을 한단 말이냐!”
철룡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뒤로 백발의 문파 종주, 현진도인(玄眞道人)이 창백한 얼굴로 다가섰다.
“철룡, 무슨 소란이냐. 금로께 누가 되는 짓은 용납치 않겠다.”
“종주님! 송구하오나, 금로께서 응답이 없으십니다. 이 문은… 밖에서 봉인된 것이 아니라, 안에서 강력하게 잠겨 있는 듯합니다. 저희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현진도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금로께서는 최근 중요한 수련에 들어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응답이 없을 리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어서 문을 부숴라! 안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종주의 명에 따라 최정예 호위 무사들이 각자의 영력을 끌어모아 봉인된 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굉음과 함께 번개가 치고 지축이 흔들렸지만, 옥청각의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을 발하며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때였다. 옥청각 뒤편, 한때는 검은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반쯤 말라버린 연못가를 한가롭게 거닐던 한 청년이 다가왔다. 옅은 녹색의 도포를 걸치고, 한 손에는 검은 자갈 하나를 굴리고 있는 모습은 이 엄숙한 상황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보였다.
“소란이 크군.”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긴장된 공기 속을 파고들었다. 현진도인이 고개를 돌렸다.
“백하늘(白河樂)! 네놈은 이곳에 무슨 일로 왔느냐? 지금은 물러가 있거라.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백하늘은 화산검문의 이단아였다. 출중한 검재를 지녔지만, 정파의 고루한 규칙을 따르지 않고 기이한 것에만 탐닉했다. 하지만 지난번, 문파 내부에 감춰진 보물 도난 사건을 귀신같이 해결하며 그의 천재성은 만천하에 드러난 바 있었다.
“음, 옥청각의 문이 이렇게 요동치는 건 처음 보는군요. 금로께서 혹시 기묘한 신공을 개수하신 것인가요?” 백하늘은 눈을 가늘게 뜨며 봉인된 문을 응시했다.
현진도인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네가 감히 금로를 희롱하느냐!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얼른 돌아가거라.”
“비상 상황이라… 그렇다면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그 일은 외부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아주 교묘한 문제일 테고요. 이 문이 종주님의 영력 공격에도 끄떡없는 것을 보니, 분명 안에서 단단히 걸쇠가 채워진 밀실이 틀림없습니다.”
백하늘의 말에 현진도인은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은 그저 문이 ‘강력하게 봉인되었다’고만 생각했지, ‘안에서 걸쇠가 채워진 밀실’이라고 단정 짓지는 못했다. 백하늘은 이미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백하늘! 네 놈, 기어이…” 철룡이 분노하며 검을 뽑으려 했지만, 현진도인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기다려라, 철룡. 백하늘, 네 말대로 안에서 걸쇠가 채워진 것이라면… 우리가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백하늘은 피식 웃었다. “밀실이라면, 밀실 전문가가 필요하겠지요. 마침 제가 좀 아는 바가 있어서요.”
그는 더 이상 종주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옥청각의 문으로 다가갔다. 다른 무사들이 문을 부수느라 놓쳤던, 문틀에 박힌 작은 영력 주입구를 유심히 살폈다. 그곳은 금로만이 알 수 있는 특정 영력 파동을 통해 봉인을 해제하는 곳이었다.
“금로의 영력 파동… 음, 이건 마치 고요한 호수 같으면서도, 그 심연에는 격렬한 용오름이 숨어 있는 듯하군. 역시 독특하셔.”
백하늘은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가락을 봉인석에 가져다 댔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러나왔고, 그것은 마치 금로의 영력을 흉내 내는 듯 섬세하게 봉인석 내부로 파고들었다. 잠시 후, 웅장한 문에서 ‘딸깍’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숨을 멈췄다.
철룡이 눈을 비볐다. “말도 안 돼… 그 봉인이 해제되다니!”
현진도인의 눈빛에도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백하늘은 얇게 열린 문틈으로 먼저 발을 들여놓았다. 옥청각 내부는 어둠침침했다. 켜져 있어야 할 영등(靈燈)은 꺼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짙은 비린내와 함께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 적막은 살아있는 자의 기척이 사라진 공간 특유의, 차갑고 끈적한 느낌이었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시야가 익숙해지자, 방 한가운데서 연좌 자세로 앉아 있는 금로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깊은 삼매경에 빠진 듯 평온해 보였다.
“금로!”
뒤따라 들어온 철룡이 다급하게 외치며 금로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백하늘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대장, 잠시 멈추시오. 이곳의 영력이… 뭔가 이상합니다.”
백하늘은 방 안의 공기 흐름, 영력의 잔류 상태, 그리고 미세한 향의 변화를 감지하려 애썼다. 그의 눈동자는 방 안의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바닥의 먼지 한 톨, 창문에 맺힌 이슬 한 방울, 심지어 공기 중의 습도까지도 그의 분석 대상이었다.
이윽고, 그가 금로의 옆으로 다가섰다. 금로의 등은 여전히 곧았고,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어린 듯했다. 그러나 백하늘의 눈은 그 미소 뒤에 감춰진 무언가를 발견했다. 금로의 정수리 부분에서 아주 미세하게,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영력의 파문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에 남은 잔해처럼, 혼란스러운 영력의 흔적이었다.
백하늘이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금로의 어깨에 대었다. 차가웠다. 생기가 완전히 사라진 차가움. 그리고 그 순간, 평온해 보이던 금로의 몸이 마치 모래성처럼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사르르… 옷 속에서 드러난 몸은 한 줌의 재처럼 바스러져, 순식간에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바닥에 내려앉았다.
“금로께서… 돌아가셨어!” 철룡이 망연자실하며 외쳤다.
현진도인 역시 충격에 휩싸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 봉인된 밀실 안에서 누가 감히 금로를 살해했단 말인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니!”
방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무너져 내린 금로의 잔해만이 모든 이들의 눈앞에서, 밀실 살인의 불가사의함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백하늘은 무너져 내린 금로의 재를 묵묵히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방의 구석구석을 다시 한번 훑었다.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창문은 안팎으로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침입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밀실… 완벽한 밀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지.”
그의 눈길은 방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족자로 향했다. 족자에는 푸른 학 한 마리가 평화롭게 구름 속을 유영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평화로워 보였다.
“흠…”
백하늘은 족자 아래, 바닥에 아주 희미하게 번진 검은 얼룩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그저 오래된 흔적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백하늘의 눈에는 달랐다. 그것은 액체의 흔적이었고, 그 액체는 마치 영력을 흡수해 형태를 바꾼 듯한 미세한 이물질을 머금고 있었다.
“대장, 이 족자는 늘 여기에 걸려 있던 것입니까?” 백하늘이 물었다.
철룡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금로께서 아끼시던 족자라, 수십 년간 저곳에 걸려 있었습니다만…”
백하늘은 대답 대신 족자 아래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 보시오. 이 흔적. 마치 먹물이 번진 것 같지만, 일반적인 먹물과는 다릅니다. 미세한 영력의 파편이 섞여 있군요. 그리고 이 방향… 족자 아래에서 벽 쪽으로, 마치 흘러내린 듯한 자국이 보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백하늘의 손끝으로 향했다. 현진도인이 돋보기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희미하지만 분명한 검은색 얼룩이 벽을 따라 아래로 흐른 듯한 자국이 보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백하늘?” 현진도인이 물었다.
백하늘은 고개를 들어 족자를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족자 뒤편의 벽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벽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미세한 균열이 나 있었지만, 그것이 살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종주님, 혹시 금로께서 수련하시던 신공(神功) 중에, 몸의 형태를 일시적으로 변화시키거나, 혹은 영력을 극도로 압축하는 종류의 비기(秘技)가 있었습니까?”
현진도인은 백하늘의 뜬금없는 질문에 의아해했다. “금로께서는 무형무상(無形無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일생을 바치셨지. 자신의 영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경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냐?”
백하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만약 금로께서 자신의 영체를 자유자재로 다루셨다면, 이 밀실은 처음부터 밀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에 현진도인과 철룡은 동시에 경악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백하늘!”
“살인자는 이 족자 뒤의 벽을 이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금로께서는… 스스로 문을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죠. 죽음의 통로를.”
백하늘의 시선은 다시 족자 뒤편의 벽, 그 미세한 균열로 향했다. 그 안에서, 그는 평범한 살인이 아닌, 영체의 경지를 이용한 기묘하고 잔인한 트릭의 윤곽을 보고 있었다.
“진정으로 봉인된 것은 문이 아니었습니다. 금로의 육신이었죠.”
방 안의 공기는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두가 다음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백하늘은 아직 답을 완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춘 듯 빛나고 있었다.
“이 검은 흔적은 힌트입니다. 금로께서 마지막 순간에 남긴… 죽음의 편지.”
그는 손가락으로 다시 한번 벽의 균열을 가리켰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살인 트릭의 첫 번째 단서를 던졌다.
“밀실은 없었습니다. 오직… 벽을 타고 흐른 죽음만이 있었을 뿐.”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