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창문 너머의 속삭임**

김현우는 익숙한 탕비실의 쇠 비린내와 함께 덜그럭거리는 컵 소리에 낮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눈앞에는 모니터 세 대가 무심하게 파란빛을 뿜고 있었고, 화면 속엔 한참 전 띄워둔 코드 뭉치와 자료들이 그대로였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어제도, 그제도, 지난 몇 주간 그의 일과는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났다. 해가 질 무렵 깨어나, 밤새 일하고, 해 뜰 무렵 잠드는 프리랜서 개발자의 삶. 고층 아파트의 빽빽한 창문들은 언제나처럼 도시의 불빛을 반사하며 무언의 감시자처럼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밤은 고요했다. 완벽하게 고요했다. 한 달 전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뒤부터 현우는 이 고요함에 매료되어 있었다. 지친 하루 끝에 얻는 선물 같은 침묵. 하지만 요즘 들어 그 침묵이 조금씩 균열을 보이고 있었다.

현우는 커피를 타러 주방으로 향했다.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찬장 문을 열었다. 컵을 꺼내려 손을 뻗는 순간, 접시 몇 개가 쌓여 있는 접시꽂이에서 ‘짤그랑’ 하는 미약한 소리가 났다. 설거지 후에 건조대에 세워둔 접시들이었다. 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 덜 말라서 그런가.” 습기가 마르면서 접시끼리 살짝 벌어지는 소리일 거라고 넘겼다.

커피를 마시며 다시 책상에 앉았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새벽 두 시. 깊어가는 밤만큼 그의 집중력도 깊어졌다. 키보드 소리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렸다. 그때였다.

“…툭.”

아주 작고, 희미한 소리. 마치 누가 손가락으로 유리컵을 가볍게 치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들렸지? 거실? 아니면 주방?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착각이겠지. 피곤해서 헛것이 들린 것일 수도 있었다.

“툭.”

이번엔 조금 더 명확했다. 분명히 거실 쪽에서 들린 소리였다. 현우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거실은 어두웠다. 창밖의 도시 불빛만이 흐릿하게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걸어갔다. 불을 켜지 않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닫힌 창문, 가지런히 놓인 소파, 벽에 걸린 그림.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뭐지? 바람인가?”

아파트 20층 높이라면 바람 소리가 종종 들리곤 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무언가를 건드렸을 수도 있었다. 현우는 창문으로 다가가 창틀을 확인했다. 굳게 닫혀 있었다. 방충망도 팽팽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몇 시간이 더 흐르고, 어느새 새벽 네 시가 넘었다. 현우는 복잡한 코드를 짜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맹렬하게 오갔다.

“스윽…… 철컥.”

이번엔 놓칠 수 없는 소리였다. 현우는 순간 손을 멈췄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 바로 작업실 문에서 들려왔다. 분명히 잠겨 있지 않았지만,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이내 다시 ‘철컥’ 하고 닫히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현우가 고개를 들자마자 급히 문을 닫고 숨은 것처럼.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작업실 문을 바라봤다. 굳게 닫힌 문. 그 위로 흐릿하게 드리운 그림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는 확신했다. 그는 똑똑히 들었다.

“누구… 없어요?” 현우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텅 빈 공간에 메아리치는 그의 목소리만이 어색하게 울렸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 현우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는 망설이다가,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문고리에 손을 뻗으려는데, 문득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문 뒤에 정말로 무언가 있다면?’

그는 손을 멈췄다. 대신 방문을 두드렸다. 세 번.
“똑똑똑. 누구세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현우는 용기를 내어 문고리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틈새로 보이는 것은 어두운 복도와 그 너머의 거실 풍경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복도 끝의 신발장부터 거실의 소파, 주방까지. 모든 것이 고요하고 비어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이상했다. 너무나 완벽하게 ‘평소와 같아서’ 더 이상했다. 현우는 복도에 서서 한참 동안 집 안을 둘러봤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꾸만 문으로 향했다.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애써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피곤해서 그래. 잠을 못 자서 환청이 들리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그 말은 그의 불안감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아니 정확히는 현우에게 ‘아침’인 오후 3시. 그는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어제 일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시려는데, 식탁 위를 보고 현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어제 밤, 커피를 마시며 놓아두었던 컵이 정확히 식탁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문제는 그 컵이 뒤집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컵 아래에는 어제 현우가 사용했던 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장난을 쳐놓은 것처럼, 컵으로 펜을 눌러둔 채.

현우는 어제 밤 컵을 씻어 식기 건조대에 놓았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리고 펜은 분명 작업실 책상 위에 있었다.
심장이 또다시 쿵 떨어졌다.
현우는 천천히 컵에 손을 뻗었다. 컵을 들어 올리자, 펜이 식탁 위에서 ‘툭’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자유로워졌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

“젠장.”

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더 이상 피곤함이나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명백한 이질감,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끔찍한 공포.

현우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집 안은 낮의 햇살을 받아 환했지만, 그 환한 빛 속에서도 어딘가 모를 섬뜩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집 안 어딘가에,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그때, 현우의 눈이 거실 창문에 닿았다.
창밖은 평화로운 도시의 풍경이었다. 수많은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우는 그 창문에서, 아주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투명한 막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진동 속에서, 현우의 귓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왔어.’

정체를 알 수 없는, 듣는 순간 온몸이 마비될 것 같은, 차갑고 낯선 목소리였다. 그것은 분명 현우의 것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기괴했다. 마치 차가운 쇠붙이가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이면서 동시에 짓눌린 누군가의 비명 같았다.

현우는 얼어붙은 채 창문을 노려봤다.
무엇이 왔다는 말인가.
어디에서.
그리고 왜.

그는 자신의 아파트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보금자리는, 이제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