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탁.”
황동 기어의 일정한 움직임과 증기기관의 묵직한 고동 소리가 자욱한 안개처럼 도시를 감싼 밤이었다. 가스등 불빛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뿌연 증기는 흡사 살아있는 유령처럼 거리를 배회했다. 톱니바퀴가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계탑은 자정을 향해 묵묵히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런던 서부, 상류층의 저택들이 빽빽이 들어선 ‘강철의 언덕’에 비명이 울려 퍼진 것은.
사흘 후, 이 도시에서 가장 독특한 시계장치 박사이자 탐정으로 불리는 엘리엇 크로우의 조용한 사무실에 한 통의 다급한 전보가 도착했다.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황동 전보기가 떨며 종이 테이프를 뱉어냈다. 검은색 잉크로 인쇄된 글자는 사건의 위중함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긴급] 알버트 경 살해 사건. 밀실. 불가능. 즉시 출동 요망. – 경감 베이커**
엘리엇은 느릿하게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의 눈은 복잡한 태엽장치를 들여다보는 장인처럼 예리하게 빛났다. “밀실 살인이라… 흥미롭군, 안나.”
그의 조수 안나는 이미 코트와 모자를 챙겨 들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결의에 차 있었다. “경감님이 직접 전보를 보내실 정도면, 꽤나 까다로운 사건일 거예요, 박사님.”
“까다로운 건 언제나 환영이지.” 엘리엇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태엽새를 쓰다듬었다. 새는 미세한 기어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 그럼 그 불가능이라는 장치를 해체하러 가볼까.”
***
알버트 경의 저택은 ‘강철의 언덕’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웅장함을 자랑했다. 거대한 증기 파이프가 외벽을 타고 흐르고, 지붕 위에는 황동으로 만든 풍향계와 기압계가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웅장함과는 대조적으로, 저택 전체는 깊은 슬픔과 불길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쇠기름 냄새와 오래된 목재 냄새가 뒤섞인 독특한 향이 코를 찔렀다. 널찍한 현관 홀에는 이미 베이커 경감과 몇몇 순경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오셨군요, 박사님! 제발 이번에는 기적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베이커 경감은 엘리엇을 보자마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려왔다. 그의 굳은 얼굴에는 밤샘 수사의 피로가 역력했다.
엘리엇은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 설명을 듣고 싶군요, 경감님.”
“피해자는 알버트 경입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시죠. 살해당한 장소는 경의 서재입니다. 사망 시각은 삼일 전 밤 11시에서 자정 사이로 추정됩니다.” 베이커는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완벽한 밀실이라는 겁니다.”
“완벽한 밀실이라.” 엘리엇이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이미 주변을 훑고 있었다.
베이커는 엘리엇을 서재로 안내했다. 묵직한 오크 문이 열리자, 내부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피 냄새와 오래된 책 냄새가 뒤섞여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재는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과 희귀한 증기기관 모형들, 그리고 복잡한 태엽장치들이 가득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 얼룩이 선명한 고급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 고풍스러운 호두나무 책상 옆에 알버트 경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날카로운 황동 편지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사체는 제가 이미 확인했습니다.” 안나가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흉기는 알버트 경의 개인 물품인 황동 편지칼이고, 사망 원인은 과다 출혈입니다.”
엘리엇은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시선은 빠르고 날카롭게 움직였다. 그는 가장 먼저 문을 살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열쇠는 안쪽에 그대로 박혀 있었고요.” 베이커가 설명했다. “창문은 모두 안쪽에서 걸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서재에는 환기용 증기 배관이 있지만, 사람 한 명이 통과할 수 없는 작은 크기입니다. 비밀 통로? 아무리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입니다, 박사님.”
엘리엇은 대답 없이 문고리를 잡았다. 묵직한 황동 문고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아보았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문고리 바로 위, 문틀 부분을 면밀히 살폈다.
“흠…” 엘리엇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박사님?” 베이커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엘리엇은 손가락으로 문틀의 특정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아주 미세한 그을음 자국이 보이는군요.”
베이커와 안나가 그곳을 들여다봤다.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검은 점 같은 자국이었다.
“그을음이라고요? 오래된 목재라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베이커는 의아해했다.
“아닙니다. 이건 최근에 생긴 흔적입니다. 열이 아주 집중적으로 가해진 흔적이죠.” 엘리엇은 열쇠를 돌려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열쇠 자체를 살폈다. “열쇠에도 같은 흔적이 미약하게 남아 있습니다.”
안나가 작은 돋보기를 꺼내어 자세히 살폈다. “정말이네요. 마치 아주 작은 불꽃이 스친 것 같아요.”
엘리엇은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문지방 바로 안쪽, 두툼한 양탄자 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반짝이는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은빛 비늘 가루로군요. 이곳의 먼지와는 다릅니다.”
베이커는 고개를 저었다. “박사님, 그런 미세한 흔적으로 밀실의 비밀을 풀 수 있을까요? 저희는 이틀 밤낮을 방을 뒤졌습니다만, 아무것도….”
“경감님, 진실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는 법입니다.” 엘리엇은 고개를 들어 서재 내부를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책장, 낡은 세계 지도, 벽난로, 그리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태엽 인형들을 지나쳤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천장 가까이 높이 걸려 있는 작은 공기정화장치, 그 위 먼지 앉은 선반에 놓인 정교한 증기 비행선 모형이었다.
모형은 실제 비행선을 축소해 놓은 듯 정교했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동체와 증기기관, 그리고 얇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프로펠러까지 완벽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그 모형이 놓인 위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프로펠러 한쪽에 아주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엘리엇은 아무 말 없이 벽난로 위에 놓인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지팡이 끝에는 작은 집게가 달려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뻗어 증기 비행선 모형의 프로펠러에 걸린 것을 잡아챘다.
“이것은… 고열에 강한 합성 섬유로군요. 이 저택의 직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엘리엇이 집게로 잡은 실을 안나에게 내밀었다. 안나는 작은 분석 키트로 실의 성분을 확인했다.
“맞아요, 박사님. 이건 특수 재질이에요. 인장 강도가 엄청나게 강하고, 열에도 강하네요.” 안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엘리엇은 이 모든 조각들을 머릿속으로 맞춰보고 있었다. 그을음 자국, 은빛 비늘 가루, 그리고 특수 합성 섬유. 그는 다시 문을 향해 걸어갔다.
“경감님, 혹시 이 저택에 특별히 정교한 소형 기계를 다루는 취미를 가진 분이 계십니까?” 엘리엇이 물었다.
베이커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알버트 경의 조카인 빅토리아 양이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여러 소형 장치들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범행 시각에 저택에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알리바이요? 그건 나중 문제입니다.” 엘리엇은 미소를 지었다. “중요한 것은 밀실의 트릭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는 문에 다시 다가섰다. 그리고 경감과 안나의 눈앞에서,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서 작은 황동 막대기를 꺼냈다. 막대기 끝에는 마치 작은 새의 부리처럼 생긴 미니어처 집게가 달려 있었다. 막대기의 옆구리에는 조그만 증기기관이 붙어 있었고, 버튼을 누르자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한 증기 기류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제가 만든 미니어처 원격 조작기입니다. 작고 정교한 기계 부품을 다루는 데 유용하죠.” 엘리엇이 설명했다. “범인은 이와 유사한 장치를 사용했을 겁니다. 더 작고, 더 은밀하게 만들어진 것을요.”
엘리엇은 막대기 끝에 걸려 있던 특수 섬유를 다시 집게로 잡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문 아래 아주 미세한 틈새로 밀어 넣었다. 문 안쪽에서 열쇠가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실을 통해 무언가를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엘리엇은 틈새로 밀어 넣은 섬유를 조심스럽게 조작했다. 섬유는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문 아래 틈새를 기어들어가, 안쪽에 박힌 열쇠의 손잡이를 감쌌다.
“보십시오, 경감님.” 엘리엇이 말했다. “범인은 이 특수 섬유를 사용해 문틈으로 이 작은 장치를 밀어 넣었을 겁니다. 열쇠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길게요.”
그는 막대기를 살짝 움직여 실을 당겼다. 실에 연결된 작은 집게가 열쇠의 손잡이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이 장치를 조작하여 열쇠를 돌린 후, 문을 잠그고 밖으로 빠져나갔겠죠.” 엘리엇은 막대기를 이용해 실을 당겼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돌아가 문이 잠겼다.
“말도 안 돼!” 베이커가 경악했다.
“그리고는 이 특수 섬유를 다시 잡아당겨 장치를 회수했을 겁니다.” 엘리엇은 천천히 막대기를 회수했다. 섬유는 문틈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열쇠는 여전히 안쪽에 박혀 있지 않습니까?” 안나가 지적했다.
“그렇죠. 열쇠가 안쪽에 박힌 채로 잠겨 있다는 것이 바로 범인이 노린 밀실의 핵심 트릭입니다.” 엘리엇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열쇠를 조작한 후, 장치만 회수하고 특수 섬유는 문틈에 매달아두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엇은 막대기 끝에 달린 증기 분사 버튼을 눌렀다.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가늘고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 증기를 문틀의 그을음 자국과 열쇠의 미세한 그을음 자국이 있던 곳에 겨누었다.
“이처럼 강력한 증기나 혹은 갈바닉 아크를 이용해 특수 섬유를 순간적으로 태워 끊었을 겁니다. 섬유는 고열에 강하지만, 국부적으로 집중된 열에는 취약할 수 있거든요.” 엘리엇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타버린 섬유의 잔해가 문틀과 열쇠에 아주 미세한 그을음 자국을 남겼을 것이고, 그 장치에서 사용된 특수 윤활유나 재료의 잔해가 은빛 비늘 가루로 떨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끊어진 섬유의 한 조각이… 아마도 범인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채, 서둘러 현장을 떠나면서 아까 그 증기 비행선 모형에 걸려 버린 것이겠죠.”
경감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범인은 그저 이 장치와 섬유를 이용해 문을 잠그고, 섬유를 태워 증거를 없앤 뒤 유유히 사라졌다는 말입니까?”
“정확합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밀실은, 사실 아주 정교하게 조작된 기계장치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엘리엇은 안경을 고쳐 썼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이처럼 특수하고 정교한 장치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었는지를 찾는 일뿐이군요, 안나.”
안나는 이미 수첩에 빼곡히 엘리엇의 설명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 엘리엇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이제 시작될 진짜 수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빛났다.
“네, 박사님. 이제 누가 알버트 경에게 이런 짓을 했는지 알아낼 시간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