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폐허가 된 거대 경기장의 한쪽 벽면에, 붉게 녹슨 강철 기둥이 위태롭게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 위로 갈라진 콘크리트 틈새마다 질긴 잡초들이 뿌리를 박고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본래 수십만 인파의 함성이 울려 퍼졌을 좌석들은 이제 듬성듬성 남아 있는 잔해들처럼 황량했다. 그러나 이 죽은 공간 속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 하나가 타오르고 있었다.

“천하제일무도회, 준결승!”

경기장 중앙, 흙먼지가 가득한 원형 무대 위에서 심판의 목소리가 사자의 포효처럼 울려 퍼졌다. 쩌렁쩌렁한 그 외침은 메아리치며 텅 빈 관중석을 한 바퀴 휘감았다. 그러나 그 소리에 화답하는 환호성은 미약했다. 겨우 수백 명 남짓한 생존자들, 잔혹한 세상이 남긴 그림자 같은 이들이 듬성듬성 앉아 떨리는 눈빛으로 무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간절한 염원이 뒤섞여 있었다.

“청풍검류(淸風劍流) 류진(柳眞) 대(對) 철심권사(鐵心拳士) 백운(白雲)!”

두 이름이 호명되자, 무대 위로 두 그림자가 비장하게 걸어 나왔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류진이었다. 스물 남짓, 아직 채 물들지 않은 듯 앳된 얼굴이었다. 그는 검은 무복을 입고 허리에는 낡고 투박해 보이는 목검을 차고 있었다. 번쩍이는 보검 대신, 오랜 세월 수련으로 손때 묻은 그 목검은 언뜻 보기에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달랐다. 깊은 강물처럼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잠들어 있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를 마주하는 것은 철심권사 백운이었다. 쉰을 훌쩍 넘긴 듯한 나이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터질 듯한 사내. 그의 주먹은 쇠를 녹여 부어 만든 것처럼 단단하고 거칠었다. 오랜 시간 풍찬노숙하며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어온 듯, 얼굴에는 깊은 주름살이 가득했지만, 그 눈빛은 한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맹한 기운은 마치 폭풍우를 몰고 오는 거대한 산맥 같았다.

백운은 무대 중앙에 우뚝 서서 류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쳤다.

“흐음… 쯧쯧. 이 자리에 이런 어린아이가 서게 될 줄이야. 세상이 정말 말세로구나.”

백운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경멸이 뒤섞여 있었다. 그의 시선은 류진의 허리에 찬 낡은 목검에 잠시 머물렀다가, 이내 다시 류진의 어깨를 툭 치는 시늉을 했다.

“애송아, 여긴 네가 나설 곳이 아니다. 꼬리 말고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 젖이나 더 먹는 것이 좋을 게다.”

류진은 표정의 변화 없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백운의 맹렬한 눈빛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어르신. 이 무도회에 나이 따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류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세상의 명운이 걸린 자리에, 그 누가 나선들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명운? 핫! 웃기는 소리!” 백운이 거친 숨을 내쉬며 헛웃었다. “네놈이 뭘 안다고 명운을 입에 담느냐. 이 세상은 이미 지옥과 다름없어. 우리가 여기서 싸우는 건, 그 지옥에서 한 줌의 희망이라도 건져 올리려는 발버둥일 뿐이다.”

그의 눈빛이 일순 섬뜩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 발버둥은, 네놈 같은 햇병아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니.”

백운의 주먹에서 으스스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 흙먼지가 그의 움직임에 맞춰 희미하게 일렁였다.

“자, 그럼 이제 내가 너에게 이 세상의 잔혹함을 가르쳐 주마.”

백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류진에게 다가섰다. 그의 발걸음이 무대를 울릴 때마다, 관중석에 앉은 이들의 심장도 함께 쿵, 쿵, 하고 격렬하게 울렸다. 류진은 굳게 다문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허리에 찬 목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손바닥에 선명하게 와 닿았다.

“시작!”

심판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운의 몸이 맹렬한 기세로 류진에게 돌진했다. 그의 거대한 주먹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류진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철심권! 쇄혼격(碎魂擊)!”

파아앙! 하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그 엄청난 주먹의 위력에 무대 위 흙먼지가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류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잎새처럼, 그의 몸은 백운의 주먹이 도달하기 직전, 허공을 가르며 옆으로 미끄러져 있었다. 류진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유려하여, 마치 그가 애초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백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 밖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쇄혼격이 빗나가자마자, 백운의 몸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쇠뭉치처럼 회전하며 또 다른 주먹을 류진의 옆구리로 날렸다.

“하압!”

이번에는 류진이 허리춤의 목검을 번개처럼 뽑아 들었다. 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목검의 검면이 백운의 주먹을 스쳐 지나갔다. 목검에 온 힘을 실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백운의 주먹에서 ‘으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운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이 목검… 보통 물건이 아니다!’

그는 그제야 류진의 목검이 단순한 수련용 목검이 아님을 깨달았다. 검신을 감도는 희미한 푸른 기운,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강철 같은 경도. 분명 평범한 나무는 아니었다.

“크으… 이 자식!”

백운은 이내 격분했다. 그의 육체가 더욱 거칠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근육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는 마치 성난 맹수처럼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무대 위를 짓밟는 발걸음마다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철심권! 폭류권(爆流拳)!”

백운의 주먹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마치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날아드는 권격은 그야말로 파괴적이었다. 작은 몸집의 류진은 그 거대한 폭풍 속에서 마치 한 장의 종이배처럼 흔들렸다.

그러나 류진은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그의 청풍검류는 마치 바람과 물의 흐름 같았다. 때로는 바람처럼 거친 권격을 스쳐 지나갔고, 때로는 물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며 충격을 흘려보냈다.

카앙! 카앙! 챙! 콰앙!

금속과 나무가 부딪치는 듯한 격렬한 소음이 무대 위를 뒤흔들었다. 백운의 주먹과 류진의 목검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부딪치고 스쳐 지나갔다. 백운의 얼굴에는 점차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맹렬한 공격이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유효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헛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어린 녀석이…! 마치 유령 같구나!’

백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주먹을 뻗는 족족 류진의 검이 마치 신들린 듯 막아내거나, 그의 몸이 절묘하게 비켜났다. 그 속도와 간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류진의 목검은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었다.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백운의 공격 흐름을 끊고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류진은 계속해서 백운의 공격을 받아내며 무대 위를 돌았다. 그의 시선은 백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치 물이 바위를 깎아내듯, 류진은 백운의 힘을 조금씩 소모시키고 있었다. 그의 검은 단순한 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이고, 물이었으며, 또한 흐름 그 자체였다.

“이제 그만 농땡이 쳐라! 정정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피하기만 하는 것이 사내 대장부의 도리더냐!”

백운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더욱 거세졌다. 무대 바닥의 흙먼지가 거대한 나선형을 그리며 솟구쳐 올랐다.

“도리… 입니까.”

류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일순 깊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류진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회피를 넘어, 적극적으로 백운의 공격 흐름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슈우웅!

백운의 주먹이 류진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류진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낮춰 백운의 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목검을 휘둘렀다.

푸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목검의 끝이 백운의 명치 부위를 깊게 찔렀다. 뼈에 닿은 듯 묵직한 충격음이 울렸다. 그 한 방에 백운의 거대한 몸이 휘청거렸다.

“크억!”

백운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자신의 명치를 움켜쥐었다. 충격에 잠시 숨이 막힌 듯,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류진은 백운이 물러서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이 한 마리 학처럼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목검은 그의 손에서 살아있는 검처럼 푸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청풍검류… 류수식(流水式)!”

류진의 목검이 강물처럼 흐르며 백운의 빈틈을 향해 쇄도했다. 그 동작은 너무나도 빠르고 유려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가 휘두르는 목검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목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푸른 폭포 같았다.

“이, 이놈이… 감히!”

백운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듯, 두 주먹을 모아 류진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려 했다. 그의 주먹 주변에 붉은 기운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숴버릴 듯한, 철심권의 최후의 비기였다.

“철심권! 파천격(破天擊)!”

붉은 기운을 두른 백운의 주먹과 푸른 폭포 같은 류진의 목검이… 마침내 격렬하게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대 전체가 흔들렸다. 흙먼지가 거대한 장막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라, 두 고수의 격돌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관중석에서는 탄식과 함께 숨죽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과연, 이 엄청난 격돌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세상의 운명이 걸린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