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아틀라스 호, 인류의 마지막 개척지라 불리던 태양계 너머, 미지의 영역을 탐사 중이었다. 함교의 스크린은 검고 푸른 성운과 먼지띠 너머, 익숙지 않은 낯선 별들의 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장 이준호는 조용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수십 년 항해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 광활한 심연은 언제나 그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선장님, 약 500AU 전방에서 에너지 신호 감지되었습니다.”
항법사 최유리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젊은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너지 신호? 어떤 종류지?” 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미확인 물질입니다. 기존 데이터와 일치하는 바가 없습니다. 일시적 변동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안정적으로 지속되고 있어요.”
수석 과학자 김수현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밀 분석 결과는요, 유리 씨?”
“일반적인 별의 에너지원과는 다릅니다. 인공적인 패턴에 가깝지만, 너무도… 복잡합니다. 저희가 아는 어떤 문명의 흔적과도 달라요.” 유리의 목소리에 호기심과 함께 미묘한 긴장이 섞여 있었다.
준호는 잠시 침묵했다. 미지의 신호. 이토록 깊은 심우주에서. “경계 태세 발령. 탐사선 발진 준비해.”
***
아틀라스 호의 보조 탐사선 ‘갈라테아’는 어둠 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수현, 민재, 그리고 유리, 세 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있었다. 엔진장 박민재는 투박한 손으로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했지만, 헬멧 너머로 보이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젠장, 이 놈의 우주선은 늘 이런 식이지.” 민재가 중얼거렸다. “새로운 거 찾으러 다니다가 엉뚱한 거에 걸려 넘어지질 않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저희 임무 아닌가요, 민재 씨? 이런 미지의 영역에서 미지의 신호를 발견한 건 인류에게 엄청난 도약이 될 겁니다.” 수현의 목소리에는 들뜬 기대감이 역력했다.
갈라테아는 신호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거대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구조물이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석 덩어리도, 인류가 아는 어떤 형태의 우주선도 아니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하면서도, 동시에 비정형적인 곡선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은 눈을 피로하게 만들었다.
“이건… 대체 뭐야.” 유리가 숨을 들이켰다.
민재는 조심스럽게 갈라테아를 구조물의 표면에 착륙시켰다. 외부 카메라가 전송하는 영상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구조물은 표면 전체가 검은색이었고, 빛을 흡수하는 듯했다. 간혹 표면에 흐릿하게 보이는 문양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함장님, 착륙했습니다. 구조물의 외벽은 어떤 에너지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분석 불가입니다.” 수현이 통신했다.
“외부 진입은?” 준호의 목소리에 신중함이 묻어났다.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아, 여기 통로가 있습니다!” 수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작은 입구가 열려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보입니다.”
“섣불리 들어가선 안 돼, 수현 박사.” 민재가 경고했다. “이런 건 언제나 함정이었어.”
“함정이라뇨, 민재 씨. 이건 발견이에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현은 들뜬 목소리로 유리를 돌아봤다. “유리 씨, 준비됐죠?”
유리는 잠시 망설였다. “네, 박사님.”
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갈 테니까, 유리 씨는 여기서 대기해.”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유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제 전공은 탐사이기도 합니다. 박사님을 보호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건 제 임무예요.”
결국 세 사람은 생체 보호복을 갖춰 입고 구조물의 내부로 진입했다. 내부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들의 탐사등이 닿는 곳마다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벽면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문양으로 가득했다. 공기 중에는 묘한, 금속 비린내와 함께 달콤한 향이 섞여 있었다.
“산소 농도 정상. 대기 성분 이상 없음.” 유리가 보고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거대한 홀에 다다랐다. 홀의 중앙에는 검은색의, 완벽한 정육면체 형태의 물체가 떠 있었다. 탐사등이 닿자, 그 검은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동시에 미약하게 빛을 반사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그리고 정육면체는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귀로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주파수로 웅웅거리고 있었다.
“이것이… 에너지 신호의 근원지입니다.” 수현이 전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육면체에 손을 뻗었다.
“수현 박사님! 위험합니다!” 민재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수현의 손끝이 검은 정육면체에 닿는 순간, 파동이 일었다. 정육면체의 표면에서 미세한 먼지 같은 것들이 뿜어져 나와 수현의 보호복 표면에 달라붙었다.
“이것 봐… 아무런 유해 반응도 없습니다. 하지만… 표면에서 뭔가가 분리되고 있어요. 샘플 채취하겠습니다.” 수현은 작은 채취 도구를 꺼내 먼지 몇 가닥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민재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정육면체를 바라봤다. “함장님, 샘플 채취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이 물체는 마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입니다. 여기 있으면 불쾌합니다.”
“알겠다. 민재, 수현 박사, 유리. 즉시 귀환해. 분석은 아틀라스에서 진행한다.” 준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
아틀라스 호로 돌아온 후, 수현은 곧바로 실험실로 향했다. 그녀는 채취한 샘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살아있는 세포도, 무생물도 아니었다. 단단한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박사님, 괜찮으세요?” 유리였다.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응? 아, 유리 씨. 왜요? 피곤해 보여요.” 수현이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요. 속도 안 좋고.” 유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까 그 구조물에 있을 때부터 좀 이상했어요. 공기가… 역했어요.”
“정신적인 피로일 겁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겠죠.” 수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좀 쉬세요. 제가 이 샘플 분석을 마치면 엄청난 결과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유리의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었다. 몇 시간 후, 그녀는 식사를 거부하고 침대에 누워 신음했다. 온몸에 오한이 들고, 열이 펄펄 끓었다.
“함장님, 유리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의무관이 보고했다. “어떤 바이러스에도 해당되지 않고, 기존의 질병 증세와도 다릅니다.”
준호는 유리의 병실로 향했다. 유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창백했다. 그녀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초점은 흐릿했다.
“유리 씨, 제 말 들려요?” 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리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이내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침대 시트를 움켜쥔 손가락은 비틀리고, 손톱은 길고 날카롭게 변하는 듯했다. 그녀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짐승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리 씨!” 의무관이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유리가 눈을 번쩍 떴다. 핏발 선 눈동자는 광기로 번뜩였다. 그녀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의무관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아아악!” 비명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준호는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망설였다. 유리는 이제 사람이 아니었다. 의무관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기괴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인간의 형상을 잃어가고 있었다. 턱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치아는 송곳처럼 뾰족해졌다.
“제압해! 죽이지 말고 제압해!” 준호가 소리쳤다.
보안팀이 달려왔지만, 유리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는 벽을 짚고 천장을 기어다니는 듯한 기동력을 보이며 달려들었다. 보안팀원 한 명이 목을 물려 쓰러졌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만에, 쓰러진 보안팀원의 몸이 경련하더니 똑같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이건… 감염이다!” 준호의 뇌리에 섬광처럼 스쳤다. “젠장, 수현 박사! 김수현 박사에게 연락해! 샘플! 그 샘플 때문이야!”
***
아틀라스 호의 복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소리와 찢어지는 살점 소리, 그리고 괴물들의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감염은 놀라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물린 자는 물론, 감염된 자의 피나 체액에 노출된 자들마저 빠르게 변이했다. 그들의 피부는 회색빛으로 변하고, 눈은 핏발 서린 광기로 번뜩였다.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파괴적인 충동만이 남아 있었다.
“함장님! 격벽을 폐쇄해야 합니다! 더 늦으면 통제 불능이 됩니다!” 민재가 통신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구역에서 몇 명의 변이체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준호는 함교의 통제판에 주먹을 내리쳤다. “실험실 구역 봉쇄해! 수현 박사에게 무슨 일이 있어선 안 돼!”
하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통신은 잡음으로 가득했고, 수현의 응답은 없었다.
준호는 남아있는 보안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함교를 사수한다! 그리고… 수현 박사를 찾아! 그녀가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그는 권총을 꽉 쥐었다. 복도 저편에서, 끔찍하게 변이한 승무원들이 기괴한 몸놀림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
수현의 실험실은 난장판이었다. 테이블은 뒤집히고, 유리 기구들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수현은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피범벅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팔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이미 피부색이 미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박사님! 김수현 박사!” 준호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수현은 준호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그녀의 눈이 준호를 향했다. 그 눈에는 아직 일말의 이성이 남아 있는 듯했지만, 동시에 끓어오르는 광기가 보였다.
“함장님… 안 돼요… 이대로는… 안 돼요…” 수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이건… 이건 단순한 감염이 아니에요… 진화… 아니… 퇴화…”
그녀의 손에는 깨진 현미경 렌즈가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게서 채취한 샘플 옆에 놓았다. 샘플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 샘플…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까?” 준호가 물었다.
수현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그것은… 살아있는 물질이에요… 우리의 생체 에너지를 흡수해서… 자신을 복제해요… 그리고 숙주를… 비틀어요… 다른 존재로… 만들어 버려요… 그 외계 유물… 그것 자체가… 생명체였어요…”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했다. 그녀의 피부에 기괴한 문양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그 외계 구조물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과도 같았다.
“함장님… 제발…” 수현은 간신히 손을 뻗어 준호의 팔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활처럼 휘더니 다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그녀의 눈은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젠 어떤 이성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현 박사…!” 준호는 차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와 연구를 함께했던 천재 과학자의 얼굴이, 지금은 끔찍한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민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장님! 제가 있는 구역의 격벽이 무너졌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복도 저편에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준호는 수현을 돌아봤다. 그녀는 이미 그의 눈앞에서 완벽한 변이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총을 들었다.
“미안하다, 수현 박사.”
탕! 총성이 실험실을 울렸다.
준호는 뒤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결단이 서려 있었다.
***
“함장님! 이대로라면 통제 불능입니다! 퇴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민재가 통신했다. 그는 이제 엔지니어 구역의 마지막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퇴출? 뭘 퇴출한다는 건가, 민재? 어디로?” 준호가 핏발 선 눈으로 물었다.
“아틀라스 호를… 이대로… 자폭시켜야 합니다.” 민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감염체가 우주로 퍼져나가선 안 됩니다. 인류에게 닿아서는 안 돼요!”
준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함교의 메인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크린에는 비상등이 깜빡이는 아틀라스 호의 내부 지도가 보였다. 빨간색으로 물든 구역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었다. 우주선은 이미 살아있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이건… 우리의 임무였어. 미지의 것을 탐사하는…” 준호가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 미지의 것이… 우리를 파괴할 줄이야…”
“함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감염체들이 함교로 진입하려 합니다!” 민재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 뒤로 둔탁한 금속음과 괴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준호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은 자폭 스위치를 향했다. 이 우주선에는 이제 그와 민재뿐이었다. 어쩌면 민재마저도…
“민재, 자네는…”
“걱정 마십시오, 함장님. 저는 제 위치를 지키겠습니다. 당신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민재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는 군인이었다.
준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우주가, 그리고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외계 구조물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을 비웃는 듯, 여전히 그 자리에 고고하게 존재하고 있을 터였다.
“아틀라스 호… 모든 인류에게 고한다…” 준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메시지를 전송했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에서… 미지의 존재와 조우했다. 인류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는… 아니, 이미 뒤바꾼… 그것은… 이 우주선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스위치를 눌렀다. 함교 전체가 붉은 비상등으로 물들었다.
“카운트다운 시작. 남은 시간… 5분.”
복도 저편에서, 마지막 격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끔찍한 괴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핏발 선 눈은 오직 생존자를 향해 있었다.
준호는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 대신, 차가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끝까지… 싸운다.”
아틀라스 호는 검은 우주를 가로지르며, 스스로의 종말을 향해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다. 어둠 속, 미지의 별들만이 그들의 마지막 비극을 지켜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