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조각
칠흑 같은 심우주, 크로노스 호는 잠시 모든 기동을 멈추고 표류하고 있었다.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플라즈마의 섬광도, 미세하게 진동하던 선체도 고요했다. 길고 지루한 항해 끝에 허락된, 짧지만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함교의 주 화면에는 무수한 별들이 마치 흩뿌려진 다이아몬드 가루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아래로는 익숙한 행성도, 성운도 없는, 오직 어둠만이 가득한 심연이 자리했다. 인류의 탐사 영역을 아득히 벗어난 미지의 공간.
엘라 선장은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무중력 상태로 천천히 떠다니는 먼지 한 조각을 응시했다. 함교는 적막했고, 오직 생명 유지 장치의 낮은 웅얼거림만이 그녀의 귓가를 맴돌았다. 벌써 몇 년째인가. 낡은 크로노스 호는 거대 기업 ‘넥서스 코프’의 심우주 자원 탐사 임무를 띠고 이 외로운 우주를 떠돌고 있었다. 임무는 지루했고, 성과는 미미했다. 그녀의 지친 눈꺼풀 아래로 잠시 오래된 고향의 풍경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선장님, 커피 한 잔 하시겠습니까?”
조종사 리오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졸음과 익숙한 피로감이 뒤섞여 있었다. 리오는 함교 한쪽 구석에 있는 자동 브루어에서 증기를 뿜어내는 머그잔을 들고 엘라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목에는 미세하게 푸른빛이 도는 데이터 포트가 박혀 있었고, 눈가에는 수많은 야근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고맙다, 리오.”
엘라가 머그잔을 받아 들었다. 뜨거운 온기가 차가워진 손끝에 닿자 작은 위로가 되었다. 무중력 공간에서 커피가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오늘도 별다른 보고는 없습니까? 과학 책임자 진은 여전히 잠수입니까?”
리오가 하품을 쩍 벌리며 물었다. 그의 시선은 주 화면에 박혀 있었다. 진은 항상 그랬다. 흥미로운 데이터라도 발견하면 식음 전폐하고 연구실에 틀어박히기 일쑤였다.
“아마도. 그 친구, 뭘 또 파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겠지.”
엘라는 피식 웃었다. 진은 외계 문명 고고학을 전공한 몇 안 되는 전문가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 심우주에서 외계 유물을 찾아내겠다며 매일 밤낮으로 센서 데이터를 분석하는 괴짜였다. 하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높이 살 만했다.
그때, 함교의 메인 화면이 갑작스럽게 붉은색 경고등과 함께 번쩍였다. 동시에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삐이익! 삐이이익!*
리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재빨리 조종석으로 돌아가 홀로그램 키보드를 두드렸다. 엘라 또한 등골에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몸을 바로 세웠다.
“무슨 일이지, 리오? 충돌 코스인가?”
“아닙니다! 미확인 물체 감지… 탐지 거리 5천 킬로미터, 예상 크기… 이건…”
리오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 주 화면에는 붉은색 점 하나가 깜빡이며 거대한 물체임을 알리고 있었다. 크로노스 호의 센서는 지금까지 이런 물체를 탐지한 적이 없었다.
“크기? 에너지 반응은?”
엘라가 침착하게 물었다. 심우주에서는 항상 변수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떠도는 소행성 파편일 수도 있고, 고장 난 위성 잔해일 수도 있었다.
“크기, 직경 약 200미터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불규칙한 형태… 그리고 에너지 반응은… 없습니다. 그런데… 감지되는 물질이… 이 데이터는 도저히 말이 안 됩니다.”
리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연신 분석 패널을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값은 그의 상식을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주 화면에 확대된 미확인 물체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마치 주변의 빛을 모두 흡수하는 듯, 어둠 그 자체인 것처럼 보였다.
“진! 진 박사! 당장 함교로 와라!”
엘라는 인터컴을 통해 진을 호출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에너지가 없으면서도 명확한 물질로 존재하는 거대한 물체.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틀림없었다.
잠시 후, 연구복을 대충 걸친 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함교로 들어섰다. 그녀의 안경은 삐뚤어져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미 주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진의 눈이 경이로움과 충격으로 커졌다. 그녀는 홀린 듯 조종석으로 다가가 리오의 분석 패널을 들여다보았다.
“센서 오류인가? 혹시 우주선 잔해가 극저온 상태로 떠다니는 건가?”
엘라가 물었다.
“아닙니다, 선장님! 제 모든 감각이 오류가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질량, 이 밀도… 그리고 이 파장 감지… 리오, 이걸 다시 스캔해 봐! 가능한 모든 주파수로!”
진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잠 못 이루던 피로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학자의 순수한 열망만이 빛나고 있었다.
리오는 진이 지시하는 대로 센서를 재조정했다. 주 화면의 붉은 경고등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지만, 미확인 물체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거대한 불규칙한 다면체. 검은색 표면 곳곳에는 마치 오랜 세월 동안 풍화된 듯한 흔적이 보였지만, 동시에 경이로울 정도로 매끄러운 부분이 섬광처럼 빛나기도 했다. 마치 깊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정체불명의 거대 암석 같았다.
“이건… 자연적인 물질이 아닙니다.”
진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표면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인공적인… 어떤 조각들이 보입니다. 풍화되었지만… 분명 가공된 흔적입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화면 위를 맴돌았다. 확대된 이미지는 흐릿했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다.
“인공물이라고? 이 심우주에?”
엘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인류의 항성 지도를 벗어난 이 심연에서, 이런 크기의 인공물이 발견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에너지 반응이 없다는 건, 수십억 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감지할 수 없는 종류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거겠죠.”
진의 눈빛은 탐욕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녀는 이미 이 미지의 유물에 대한 수많은 가설을 머릿속에 펼쳐놓고 있었다.
“선장님, 크로노스 호의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상세 조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건… 인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발견입니다!”
진이 흥분하여 외쳤다.
엘라는 주 화면에 떠 있는 검은 다면체를 응시했다. 그것은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다. 아무런 생명 반응도, 에너지 신호도 없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원초적인 공포와, 동시에 인류의 지식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거대한 기대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리오, 모든 시스템 점검. 비상 상황 대비. 진, 상세 접근 계획을 세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엘라의 목소리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쩌면 이 발견은 넥서스 코프의 지루한 자원 탐사 임무를 영원히 끝낼 수도 있을 터였다. 혹은, 인류에게 새로운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크로노스 호의 미약한 추진기가 다시 한번 푸른 섬광을 뿜어냈다. 거대한 검은 다면체를 향해, 인류의 작은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우주의 정적 속에서,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미지의 조각이 품고 있는 비밀을 향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