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1장: 핏빛 황혼, 들불의 서막

북풍한설이 매서운 철이었다. 그러나 이 땅을 덮친 가장 가혹한 추위는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마른기침 소리와 메마른 논밭뿐. 제국력 삼백이십칠 년, 삼 년 연속 이어진 가뭄은 강산을 말려 죽였고, 백성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강성한 제국의 위세는 한없이 처량하고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이리 내놓으시오! 이것마저 빼앗아가면 우리 애들은 무얼 먹고 사느냐 말입니까!”

누더기를 걸친 노파가 쭈그린 채 겨우 모은 보리쌀 한 줌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미 말라붙어 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샘솟아 그을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제국의 병사들은 그런 절박함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의 굳은 얼굴에는 오직 명령과 탐욕만이 서려 있었다.

“시끄럽다! 황제 폐하의 세금은 그 어떤 이유로도 감면될 수 없는 법! 당장 이 곡식 자루를 내놓지 않으면 네 목숨은 물론, 네놈 자식들 목숨까지 성치 못할 것이다!”

쇠몽둥이를 든 병사가 노파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노파의 몸이 휘청였고, 품에 안고 있던 보리쌀이 흙바닥에 사정없이 흩뿌려졌다. 노파는 피가 맺힌 입술을 깨물며 흩어진 곡식들을 그러모으려 했지만, 병사의 발길질이 다시금 그녀의 손등을 짓밟았다.

“크으읍!”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노파의 신음소리가 황량한 들판에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저 멀리서 이 참상을 지켜보며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감히 제국의 군대에 맞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절망과 체념이 가득했다. 매달, 매년 반복되는 착취에 그들의 영혼마저 바싹 말라버린 듯했다.

그때였다. 흙먼지 가득한 길 위로 한 무리의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이곳 철기현(鐵器縣)을 다스리는 수비대장, 위충현(魏忠賢)이었다. 비단 옷을 입고 기름진 몸매를 자랑하는 그의 얼굴에는 오만함이 가득했다. 그는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 따위는 저 멀리 안개처럼 치부하는 자였다.

“이놈들! 아직도 황제 폐하의 은덕을 모르고 반항하는 자들이 있단 말이냐!”

위충현은 말 위에서 채찍을 휘둘렀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른 채찍은 아무도 없는 허공을 때렸지만, 그 위세는 마을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뭄이 들어 수확이 없으니 곡식을 낼 수 없다고? 좋다! 그렇다면 너희의 젊은 사내들을 징발하여 북방 공사에 투입할 것이다! 아니면, 네년들의 딸이라도 내놓든지!”

수비대장의 음탕한 눈길이 젊은 처녀들에게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곡식은 차라리 나았다. 자식들을 빼앗기고, 딸들을 짓밟히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분노에 못 이겨 주먹을 쥐었으나, 이내 옆 사람에게 제지당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무모한 저항은 죽음만을 불러올 뿐이었다.

그때, 침묵으로 가득했던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허름한 베옷을 입고 있었다. 등에 진 낡은 보따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사내였다. 흙먼지가 앉은 얼굴은 앳된 티를 벗지 못했으나, 그의 눈빛은 짙은 호수처럼 깊고 서늘했다.

“멈춰라.”

사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황량한 들판의 정적을 깨고,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박혔다. 병사들은 물론, 위충현조차도 순간 멈칫했다. 감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가 나타난 것이 얼마만인가.

“네놈은 또 누구냐? 감히 황제 폐하의 징수를 방해하려 드는가?”

위충현이 비웃듯이 말했다. 병사들이 사내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사내의 이름은 무영(無影)이었다. 그림자조차 없는, 이름 없는 존재로 살아가던 그였다.

무영은 위충현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흩뿌려진 보리쌀을 주워 담으려 애쓰는 노파와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위충현에게로 향했을 때, 그 눈빛은 한없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늘이 주신 백성들을 굶주리게 하고, 눈물로 피를 토하게 하는 것이 진정 황제의 도리인가? 그대들은 하늘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린다고 말하지만, 그대들의 칼끝은 백성들의 목을 조를 뿐이다. 부패한 제국은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와 다름없다!”

무영의 말은 차분했으나, 그 속에 담긴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억눌렸던 감정이 그의 말에 반응하여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무엄한 놈이! 당장 저자의 목을 베어라!”

위충현이 격노하며 소리쳤다. 병사들이 일제히 무영에게 달려들었다. 창칼이 번뜩이고, 발소리가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러나 무영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첫 번째 병사의 창날이 무영의 심장을 겨냥했다. 무영은 마치 바람처럼 살짝 몸을 틀었다. 창날은 허공을 갈랐고, 무영의 손이 병사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의 손에서 창이 떨어져 나갔다. 이어서 무영의 주먹이 병사의 턱을 강타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병사는 고꾸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무영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정확했다. 그는 칼날을 피하고, 주먹을 피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서로를 부딪히게 만들기도 했다. 칼을 쓰는 병사의 팔목을 비틀어 칼날이 다른 병사의 어깨를 스치게 하는 식이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병사들은 팔다리가 꺾이거나, 급소에 일격을 맞아 맥없이 쓰러졌다.

무영은 살상을 피했다. 그의 목표는 병사들의 전투력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그의 몸놀림은 마치 그림자처럼 잡히지 않았고, 그의 공격은 마치 그림자처럼 예측할 수 없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그러나 강력하게 존재하는 그림자 무예였다.

순식간에 대여섯 명의 병사가 쓰러졌다. 그들의 비명소리가 전장을 채웠다. 위충현은 말 위에서 이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이런 무예를 가진 자가 어찌…”

“나는 이름 없는 백성일 뿐이다.” 무영은 조용히 말했다. 그의 눈은 위충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이름 없는 백성들이 더 이상 짓밟히지 않을 것임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무영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위충현은 저도 모르게 말 고삐를 움켜쥐었다. 흙바닥에 쓰러진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다. 그는 자신이 너무나도 쉽게 여겼던 백성들 중에 이런 괴물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은, 내가 물러가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황제 폐하의 권위는 하늘보다 높다! 너희 같은 미천한 벌레 한 마리가 감히 하늘을 거스를 수는 없다! 곧 대군을 이끌고 와 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위충현은 치욕을 삼키며 급히 말을 돌렸다. 남은 병사들도 허둥지둥 쓰러진 동료들을 부축하며 황급히 도주했다. 그들이 남긴 것은 흙먼지와 함께 스러지는 패배의 잔해뿐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마을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방금 벌어진 일이 현실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경외감과 경악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시선은 한곳으로 모였다. 바로 무영이었다.

무영은 여전히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흙바닥에 흩어진 보리쌀을 묵묵히 그러모아 노파의 품에 안겨주었다.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보리쌀을 받아 들며, 무영의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도련님…”

노파의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무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오만함도, 자만심도 없었다. 오직 결연한 의지만이 엿보였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무영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도주하는 병사들이 남긴 흙먼지 너머, 끝없이 펼쳐진 제국의 영토를 향하고 있었다. “황제가 짓밟은 모든 땅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피가 헛되이 흐르지 않도록, 우리가 스스로 일어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석양에 물든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 핏빛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백성들이 모인, 거대한 들불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