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김민준은 익숙한 먼지 냄새를 들이마셨다. 퀴퀴하고 축축하며, 오래된 종이와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 그에게는 ‘잊힌 서고’라는 이 낡은 고서점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향이었다. 스물셋의 나이에 그는 대단한 야망도, 눈부신 재능도 없었다. 그저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점 구석에서 먼지를 털고 책을 정리하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더 심한 날이었다. 서점 뒤편, 수십 년간 손길 한 번 닿지 않았을 법한 창고 같은 공간을 정리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어르신은 단지 “거기 뒤에 처박힌 것들 좀 꺼내서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해 두렴”이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민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마스크를 썼다.

“이게 대체 몇 년 된 먼지야…”

그가 손전등을 비춘 곳은 천장까지 닿는 낡은 서가들이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책들은 표지가 해지고 곰팡이가 슬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간혹 비어 있는 선반도 있었는데, 아마 어르신이 간헐적으로 뭘 치운 흔적이리라. 민준은 일단 맨 위 칸부터 손을 대기로 했다. 나무 사다리를 조심스럽게 놓고 올라서서, 거미줄과 함께 엉겨 붙은 책들을 하나하나 끌어내렸다.

오래된 역사서, 닳아빠진 사전, 읽다 만 소설들… 대부분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였다. 한참을 그렇게 작업하던 민준의 손에, 유독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책이 잡혔다. 다른 책들보다 훨씬 두껍고, 종이 재질도 남달라 보였다. 하지만 그 책 역시 먼지투성이였고, 무심히 뒤로 치워둔 다른 책들과 함께 툭 떨어뜨려 놓을 뻔했다.

그때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책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어슴푸레한 공간이 드러났다. 민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얇은 나무판자로 막아둔 가벽이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듯한, 다른 선반과는 이질적인 구조물이었다.

“뭐야, 이런 게 있었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이 낡고 음침한 공간이 왠지 모르게 민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는 손전등을 가벽 틈새에 비췄다. 희미한 빛이 닿자, 안쪽 공간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곳에는 단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민준은 사다리에서 내려와 가벽을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나무판자는 예상보다 쉽게 떨어져 나갔고, 안쪽에 숨겨져 있던 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살아 있는 생명체에 가까웠다. 표지는 검고 질긴 가죽 같았는데, 마치 심장을 덮는 피부처럼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차가운 금속을 만지는 듯한 기묘한 감촉은 소름을 돋게 했다. 제목도, 저자도 없었다. 오직 표면을 덮은 기이한 문양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육각형과 삼각형이 뒤틀린 형태로 얽혀 있고, 그 사이사이에 눈알 같기도 하고 촉수 같기도 한 불쾌한 형상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민준은 책을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의 손이 책에 닿자마자,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섬뜩한 한기가 척추를 타고 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희미한, 하지만 분명한 속삭임이 그의 귓가를 스쳤다.

*…그것은 오래된… 너무나 오래된…*

민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환청인가? 혼자 너무 오래 일해서 피곤한가 보다. 그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손에 든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잡아끄는 듯했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어르신은 대개 오후 늦게나 서점에 나타났다.

결국 민준은 충동적으로 책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버릴 건 버리고, 정리할 건 정리하랬으니… 이런 건 어차피 상품 가치도 없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

퇴근 후, 민준은 좁디좁은 원룸으로 돌아왔다. 낡은 고시원 건물의 냄새와는 또 다른, 그의 방 특유의 미묘한 곰팡이 냄새가 그를 맞았다. 그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 침대맡 작은 탁자에 놓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책은 더더욱 기이하게 보였다.

표지의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듯 시시각각 변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민준은 용기를 내어 책을 펼쳤다.

페이지는 두껍고 누렇게 바래 있었다. 종이의 질감은 매끄러웠으나, 잉크는 피처럼 붉고 검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다. 대신, 표지의 문양과 유사한, 기하학적이고 뒤틀린 그림들이 가득했다. 어떤 것은 마치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존재들이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였고, 어떤 것은 알 수 없는 기계 장치 같기도 했다. 모든 그림은 상식을 벗어나 있었고, 보는 것만으로도 두통이 일어날 것 같은 불쾌감을 주었다.

민준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천천히 훑었다. 그림들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기이한 상형문자 같은 것들. 이 세상의 어떤 언어와도 닮지 않은, 고대의 주술적인 상징들. 그는 한 글자를 짚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손가락 끝에서부터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강렬한 충격이 온몸을 꿰뚫었다.

“으읍!”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혼돈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서 현실의 윤곽이 일그러지는 듯했고, 저 깊은 심연에서 들려오는 듯한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언어도 아니었고, 소리도 아니었다. 단지 ‘개념’이 직접 그의 뇌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너는 보았다… 너는 들었다… 너는 이제…*

환각과 환청이 뒤섞였다. 찰나의 순간, 민준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하늘을 가르고,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들이 우주를 응시하는 광경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건축물들이 아무런 물리법칙 없이 뒤틀린 채 공중에 떠 있었고, 그 사이에서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이 기괴한 움직임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은… 꿈인가?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시야는 흐릿해지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책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책이 바닥에 닿는 순간, 모든 환각과 환청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동공이 풀린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대고 있었다.

“뭐… 뭐야… 대체…”

그의 눈은 바닥에 떨어진 책을 향했다. 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민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방금 그 경험은 단순한 피로감이나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그 책이 무언가를 그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온몸에 기이한 탈력감이 몰려왔다. 마치 영혼이라도 빨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눕혔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방금 보았던 기괴한 우주의 풍경과 알 수 없는 존재들의 형상이 잔상처럼 남아 그를 괴롭혔다.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끌림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그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다시는 펴보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책의 표지를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책의 표면을 수놓은 기이한 문양 중 하나에서, 아주 희미한, 푸르스름한 빛이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가 사라졌다.

민준은 숨을 멈췄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보았다. 그의 손에 든 이 책은, 살아 숨 쉬는 듯한 고대의 힘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이제, 그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밤은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김민준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미지의 심연 속으로 첫발을 내디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