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숨이 막혔다. 폐부 깊숙이 들이쉬는 공기는 먼지와 흙, 그리고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기어이 힘겹게 들어 올렸다. 시야에 처음 들어온 것은 부서진 천장의 틈새로 쏟아지는 잿빛 햇살이었다. 삐걱이는 고개로 주위를 둘러보자, 내 몸이 누워 있던 곳은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 작은 틈이었다. 녹슨 철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부스러진 벽돌 조각들이 뒹굴었다.

“으윽… 머리야.”

뒤통수를 감싼 손바닥이 축축했다. 끈적한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마지막 기억은 분명 친구들과 퇴근길에 들른 포장마차에서 얼큰하게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가던 길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특히 왼쪽 팔목에서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간신히 상체를 세우고 부서진 잔해를 밟고 일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아니, 서울이었지만 내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저 멀리 한강이 흐르던 곳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 있었고, 그 균열 사이로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유리창은 죄다 깨져 사라진 지 오래고, 건물 외벽은 시커먼 그을음과 함께 기괴한 덩굴 식물들에 뒤덮여 있었다. 도로 위에는 차량들의 잔해가 녹슨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발목을 덮었다.

세상이, 죽어 있었다.

“젠장… 이게 뭐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입안은 바싹 말라붙어 흙먼지를 삼킨 듯했다. 휴대폰을 찾으려 주머니를 더듬었다. 낡은 청바지 주머니 속에서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난 스마트폰이 잡혔다. 화면은 검게 죽어 있었고,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충격에 깨진 것도 아닐 터,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폰이었다.

꿈인가? 악몽? 아니, 이 생생한 흙먼지 냄새와 비릿한 피 냄새, 몸을 짓누르는 현실감은 꿈일 리 없었다.

나는 허망하게 주저앉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던 거지?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다. 포장마차 앞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골목을 걷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터져 나왔다. 마치 거대한 렌즈가 압축된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온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

“시간… 이동? 말도 안 돼.”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당한 생각이었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고? 하지만 이 믿기지 않는 풍경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갈증이 목구멍을 긁었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욕구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당장 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먹을 것.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갔다. 발밑에는 유리 조각과 깨진 콘크리트 파편들이 사그락거렸다. 주변은 소름 끼칠 정도로 고요했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 발소리와 심장 소리만이 거대한 폐허 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따금 벽에 걸려 있던 낡은 간판의 흔적이나, 알아보기 힘들게 변색된 낙서들이 과거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OO 빌딩’, ‘XX 마트’ 같은 문자들이 희미하게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마저도 덩굴에 가려져 있었다. 대체 몇 년이 흐른 거지?

정신없이 걷다 보니 한때 공원이 있던 자리로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 부서진 벤치와 녹슨 철제 구조물들 사이로, 아직 앙상하지만 푸른 잎을 돋운 나무들이 보였다. 그중 한 나무의 뿌리 부근에서 희미하게 물기가 비치는 웅덩이를 발견했다.

“물!”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웅덩이로 달려갔다. 흙탕물이지만,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물을 떠서 마셨다. 차갑고 흙맛이 났지만,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충분했다. 연달아 몇 번 더 물을 마시고 나자, 비로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삭막한 정적을 깨고, 등 뒤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륵….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방금 전까지 물을 마시느라 긴장을 풀었던 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인간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짐승의 소리라고 하기에도 어딘가 이질적이었다. 끈적하고, 쇠를 긁는 듯한 소리.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폐허가 된 공원 건너편,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의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차갑게 빛나는 그 눈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끔찍한 생명체의 것이었다.

그것은 육중한 몸을 꿈틀거리며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뼈가 튀어나온 팔다리, 피부를 뚫고 솟아난 날카로운 뿔들, 그리고 불규칙하게 벌어진 찢어진 입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 같았다.

내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