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금속성 알림음이 가상현실 다이브 헬멧 속으로 울려 퍼졌다. [미궁의 서재] 공식 알림: “길드 ‘황금 가지’의 남작 발레리우스가 자신의 서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현재 서재는 외부인 출입 금지 상태이며, 밀실 살인으로 추정됩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코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흥미로운데. 이 지루한 연금술 레시피 탐색 와중에 이런 자극적인 사건이라니. 그는 시스템 메시지를 닫고, 현재 위치인 [어둠골 공동 묘지]의 스산한 분위기를 뒤로한 채 [발레리우스 남작 저택]으로 향하는 전이 마법을 시전했다.
“젠장, 대체 누가 이럴 수 있어? 이 방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저택의 거대한 강철 문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플레이어와 NPC 경비병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현장 보존이라는 명목 아래, 아무도 서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코드의 시선은 곧장 굳게 닫힌 서재의 육중한 문에 박혔다. 낡았지만 견고한 참나무 문은 두꺼운 강철 볼트로 단단히 걸쇠 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볼트들은 모두 안에서 걸린 상태였다.
“코드님, 오셨군요!”
경비대장 NPC인 ‘엘런’이 코드를 발견하고 안도하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말 끔찍합니다. 남작님은 늘 저택을 삼엄하게 관리하셨는데…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문은 안에서 잠겼고, 창문은 모조리 쇠창살로 막혀 있습니다. 환기구도, 비밀 통로도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코드는 아무 말 없이 엘런의 말을 들으며 문 주변을 훑었다. 문틀에는 미세한 먼지조차 없이 깨끗했지만, 코드의 예리한 시선은 문 아래쪽 틈새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은색 가루 한두 개를 놓치지 않았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마치 잘게 부서진 별빛 같은 조각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코드의 말에 엘런은 당황했다. “하지만… 밀실이라… 어떻게 들어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사건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수사를 하겠습니까?” 코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열쇠가 필요하겠군요. 이 문의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남작님 본인과… 집사 카셀 뿐입니다.”
“카셀을 불러오세요. 그리고 방에 들어갈 모든 인원은 맨손으로 아무것도 만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발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천 조각을 덧댈 것.”
잠시 후, 땀에 젖은 얼굴의 집사 카셀이 도착했고, 코드는 그에게서 마스터 키를 건네받았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참나무 문이 마침내 열리고, 서재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레리우스 남작은 서재 중앙의 앤티크 책상 위, 수많은 책 더미에 파묻힌 채 쓰러져 있었다. 가슴팍에는 거대한 칼이 박혀 있었고, 그의 눈은 공포에 질린 채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맙소사…!” 여기저기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코드는 천천히 서재 내부로 걸어 들어갔다. 게임 속 그래픽은 현실보다 더 섬세하고 생생하게 범죄 현장을 구현해냈다.
우선 시신을 살폈다. 살해 시각은 대략 2시간 전. 치명상은 가슴에 박힌 칼에 의한 것. 사망 당시 남작은 자신의 가장 아끼는 유물 중 하나인 ‘별의 비망록’을 양손에 꼭 쥐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혹은 누군가에게 주려는 듯.
그는 천천히 서재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고서적과 희귀 유물들이 즐비한 방.
“남작님은… 문을 잠그고 혼자 글을 쓰거나 유물을 감상하셨습니다. 평소에도 외부인의 침입을 극도로 경계하셨죠.” 집사 카셀이 침통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무도 남작님 허락 없이 이 방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코드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모든 창문은 두꺼운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안쪽에는 굳게 닫힌 덧문까지 있었다. 잠금쇠 역시 안에서 걸려 있었다.
“완벽한 밀실이군.” 코드가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문으로 돌아왔다. 문 안쪽에는 육중한 강철 볼트들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그런데, 코드의 눈에 문 상단, 볼트와 문틀 사이에 아주 희미하게 긁힌 자국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금속이 다른 금속에 마찰되어 생긴 것처럼 보였으나, 위치가 너무 높고 애매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서재의 중앙으로 돌아왔다. 남작의 시신이 있는 책상에서 시선을 돌려, 그는 방을 가로질러 벽에 걸린 거대한 거울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거울은 [미궁의 서재]에서 희귀한 유물로 통하는 ‘공간 왜곡의 거울’이었다. 착시 현상을 일으키거나, 멀리 있는 풍경을 비추는 등 다양한 마법적 기능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남작은 이 거울을 특히 아꼈다고 알려져 있었다.
코드는 거울 가까이 다가갔다. 거울 주변의 벽지는 다른 곳과 달리 미묘하게 들떠 있었다. 마치 거울이 최근에 살짝 움직였던 것처럼. 그리고 그 거울의 뒷면, 벽과 거울 사이에 미세한 틈새로 아까 문 아래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은색 가루, ‘공간의 잔향’이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이게 단서로군.”
코드는 거울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공간의 잔향’은 [공간 조작의 팔찌]라는 희귀한 유물에서만 나오는 마력 잔류물이다. 이 팔찌는 사용자가 아주 작은 공간 균열을 만들거나, 제한적으로 물체를 텔레키네시스로 조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때, 저택의 또 다른 플레이어인 ‘어둠의 사냥꾼’ 길드의 길드장인 ‘레오나르도’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코드를 믿지 마십시오! 저자는 단지 흥미를 위해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갈 겁니다!” 레오나르도는 남작과 사업적으로 깊이 얽혀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어둠의 사냥꾼 길드는 황금 가지 길드의 숙적이었다.
코드는 레오나르도를 쳐다보지도 않고 천천히 거울을 벽에서 떼어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벽일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레오나르도가 비웃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죠.” 코드는 거울을 원래 자리에 다시 걸어두었다. “만약 범인이 [공간 조작의 팔찌]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 밀실은 더 이상 밀실이 아니게 됩니다.”
주변의 시선이 코드에게 집중되었다.
“범인은 남작을 살해했습니다.” 코드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후, 이 방의 모든 문과 창문을 안에서 잠갔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죠.”
“말도 안 돼! 어떻게 나갔다는 겁니까?” 엘런이 소리쳤다.
“이 ‘공간 왜곡의 거울’을 이용했습니다.” 코드는 거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공간 조작의 팔찌]도 함께 사용했죠. 이 거울은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아주 미세하게, 주변의 공간을 휘게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찌로 만들어진 공간 균열은 평소에는 극도로 작아 아무것도 통과할 수 없지만, 이 거울의 왜곡과 중첩되면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특정 지점에 ‘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코드는 시선을 문 상단의 긁힌 자국으로 옮겼다.
“범인은 [공간 조작의 팔찌]를 이용해 이 거울 뒤에 아주 작은 공간 균열을 만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균열을 통해 손에 쥔 ‘문걸쇠 조작 도구’ 같은 것을 밖으로 내밀어 문 상단의 외부 볼트를 잠갔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문 상단으로 향했다. 그들은 코드가 짚어낸 긁힌 자국을 보았고, 그제야 그 자국이 왜 그렇게 높은 곳에, 그리고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생긴 것 같은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갔다면… 안의 볼트는 여전히 걸려 있는 상태로 남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 플레이어가 질문했다.
“그렇습니다.” 코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범인이 이 공간 균열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면, 안쪽 볼트를 먼저 잠근 뒤, 다시 팔찌를 이용해 밖에서 외부 볼트를 잠가야 합니다. 그리고 문 아래쪽 틈새와 거울 뒤에서 발견된 ‘공간의 잔향’은 범인이 여러 번 공간 균열을 열고 닫았다는 증거입니다. 아마도 문을 나가기 전, 안쪽에서 외부 볼트를 잠그고 나가는 데 팔찌의 마력을 많이 소모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간 뒤에는 다시 문이 안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 볼트를 다시 건드려 최종적으로 잠갔을 테죠.”
엘런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간 뒤에 다시 안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게 바로 밀실 트릭의 핵심이죠.” 코드가 말했다. “범인은 문이 닫히기 직전, 거울 뒤 공간 균열을 통해 문 바깥으로 손을 내밀어 문을 닫는 동시에 외부 잠금쇠를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이 완벽하게 닫히고, 안쪽 볼트가 잠긴 것처럼 보이도록 밖에서 팔찌를 이용해 조작했을 겁니다. 이 방의 문은 외부에서도 특정한 방식으로 힘을 가하면 내부 볼트가 작동하는 구조로 되어 있죠. 물론, 아주 복잡하고 미세한 조작이 필요해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요. [공간 조작의 팔찌]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코드는 모든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레오나르도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공간 조작의 팔찌]는 이 게임에서 단 두 개만 존재하는 유물입니다. 하나는 이미 죽은 남작 발레리우스가 가지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사냥꾼 길드장, 당신의 수집품 중 하나죠.”
정적이 흘렀다. 레오나르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무슨 헛소리야!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정말입니까?” 코드가 팔짱을 끼며 비웃었다. “그럼 남작의 손에 쥐여 있던 ‘별의 비망록’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그 비망록은 당신의 길드만이 가지고 있는 암호로 적혀 있지 않습니까? 남작이 당신을 만나러 갔다가, 혹은 당신에게 무언가에 대해 경고하려고 했지만… 결국 살해당하고, 그 증거를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코드가 말을 이었다. “남작의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칼은, [어둠의 사냥꾼] 길드의 문양이 새겨진 단검입니다. 당신의 길드원이라면 누구나 소지하는 기본 장비 중 하나죠. 아무리 시뮬레이션이라 해도, 이렇게나 많은 증거를 남기고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레오나르도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좌절감으로 일그러졌고, 이내 온몸에서 시스템의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플레이어 레오나르도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심판의 방으로 이송됩니다.]
코드의 입가에 다시금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역시 이 게임은 지루할 틈이 없다. 탐색 퀘스트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머리 쓰는 일이 더 짜릿하다. 그는 어지러이 흩어진 책들 사이를 지나쳐 서재를 나섰다. 밖은 여전히 웅성거리는 플레이어들과 경비병들로 가득했다. 오늘 밤, [미궁의 서재]의 세계는 잠시 동안 떠들썩할 것이다. 천재 탐정 코드의 이름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