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금속 복도를 가르는 것은 오직 그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강화 유리벽 너머로 깜빡이는 비상등의 붉은 섬광이 류진혁의 얼굴 위로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손목의 신경 단말기가 삐빅거리는 경고음을 토해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오히려 더욱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강민준. 네가 앉아있는 그 자리가, 내가 너에게 선물했던 지옥이었다는 걸 잊지 않았겠지.’
수많은 레이저 그리드와 생체 인식 스캐너,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보안망들이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진혁에게는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이 모든 시스템의 원형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었으니까.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의 창조물을 파괴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디지털 락을 뚫고, 감시 카메라의 시야를 왜곡시키고, 동력 흐름을 조작하는 그의 손길은 춤을 추듯 유려했다. 그의 뇌 속에 깊이 박힌 코어 칩이 주파수를 발산하며 복잡한 시스템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목표 지점까지 100미터. 경계 레벨 4로 상승했습니다, 보스.”
귀엣말처럼 뇌로 직접 전달되는 음성. 미약한 노이즈가 섞여 있었지만, 진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메시지를 이해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자처럼 움직이는 ‘그림자’ 요원들 중 한 명, ‘카오스’의 목소리였다.
“예상했어. 이제부터는 직접 처리한다.”
진혁은 답하며 한 손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천장의 환풍구 덮개가 스르륵 미끄러지며 어두운 통로를 드러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욱여넣었다. 좁고 답답한 통로는 그의 과거를 상징하는 듯했다. 한때 빛나는 재능으로 모든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천재 개발자. 그러나 단 한 순간의 배신으로 나락에 떨어져 어둠 속을 기어 다녀야만 했던, 그 시절의 자신.
그때였다. 귓가에 차갑게 울리던 민준의 목소리.
*“미안하다, 진혁아. 하지만 이건…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욕심부리지 마. 네 이름은… 사라지는 게 맞는 거야.”*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제 몸을 짓밟고 일어서던 친구의 섬뜩한 미소. 심장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었다. 뼈에 새겨진 고통이자, 그의 존재 이유가 된 증오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환풍구 통로를 기어 나온 곳은 예상대로 핵심 보안 구역의 뒷편, 직원 전용 통로였다. 이 구역은 민준이 외부인의 접근을 극도로 꺼리던 곳이었다. 그의 과거가 묻혀있는, 혹은 그의 추악한 비밀이 봉인된 곳. 진혁은 확신했다. 이곳에, 그의 모든 것을 되찾을 단서가 있었다.
“류진혁. 대체 이 지옥 속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나 했더니, 역시나 이런 식으로 기어들어 올 줄은 몰랐군.”
차가운 비웃음 섞인 목소리.
진혁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듯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너무나도 익숙하고도 혐오스러운 그 음성. 천천히 몸을 돌렸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는 통로 끝, 한 인영이 서 있었다. 새까만 수트를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이제는 숙적이 된 남자. 강민준.
그의 눈은 진혁을 향한 경멸과 함께, 알 수 없는 비릿한 조소를 담고 있었다. 민준의 한쪽 손에는 넥타이핀처럼 보이는 작은 장치가 쥐어져 있었다. 그 장치 끝에서 푸른 빛이 섬뜩하게 반짝였다.
“정말 대단해. 하지만 여기까지다, 진혁아. 네가 잊은 모양인데, 이곳의 모든 시스템은 이제 나의 명령 아래에 있어. 네 손으로 직접 만든 심장이라고 해도, 주인은 나란 말이지.”
민준이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네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뒀거든. 네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거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혁의 등 뒤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육중한 강철 셔터가 거대한 포효를 내며 진혁이 들어온 통로를 완벽하게 봉쇄했다. 동시에, 민준이 서 있는 통로 쪽에서도 또 다른 셔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간, 오직 진혁만이 갇혀버린 좁은 통로의 벽면에서 묵직한 소음과 함께 강렬한 푸른색 불꽃이 튀었다. 벽이 갈라지고, 섬뜩한 기계 장치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진혁이 과거에 고안했던, 특정 구역의 접근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어 시스템. ‘절멸 프로토콜’. 내부의 모든 유기체를 완벽하게 소멸시키는, 잔혹한 살상 병기였다.
“어때? 이 모든 게 다 네가 만들었던 것들이야. 네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으로, 네 목숨을 거둬가는 심정은 어떤 기분일까?”
강민준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좁은 통로를 가득 채웠다. 그는 넥타이핀처럼 생긴 장치를 진혁에게 던져주었다. 진혁이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자, 작은 화면에 타이머가 깜빡였다.
*00:00:10*
*00:00:09*
그리고 그 아래에는, 민준의 냉혹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신을 죽인 자의 이름을 기억해.’*
진혁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 모든 분노와 증오가 한순간에 뒤섞여 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갈라지는 벽면에서 솟아나는 날카로운 칼날들이 빛을 반사하며 섬뜩하게 번뜩였다. 통로 전체가 굉음을 토해내며 좁아지고 있었다.
민준은 멀어지는 셔터 사이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
“기억나? 네가 그렇게나 믿었던 ‘우리’의 미래 말이야. 그 미래는, 나에게나 필요한 거였어.”
진혁은 피할 곳 없는 살육의 감옥에 갇혔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귓가에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작은 장치, 타이머가 *00:00:05*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졌다. 그것은 절망의 미소가 아니었다.
광기 어린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 피 묻은 서막이었다.
“민준아. 이 지옥에서, 살아남는 자가 누구인지… 이제부터 내가 똑똑히 보여주지.”
그의 손에서 튀어나온 신경 블레이드가 푸른 섬광을 뿌리며 허공을 갈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