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이 벨록 제국의 거대한 그림자처럼 세상을 뒤덮었다. 멀리 떨어진 황도, 오만한 ‘불멸의 궁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마저 이곳, 제국의 최전선 보급 기지에는 닿지 못했다. 오직 칼날처럼 날카로운 달빛만이 녹슨 철조망과 견고한 강철 구조물 위로 차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확실해?”

설아의 목소리는 귓속말처럼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차가운 칼날 같았다. 그녀는 흙먼지 연대의 핵심 정예 요원 다섯 명과 함께 허리까지 오는 덤불 속에 몸을 숨긴 채 거대한 보급창고를 응시했다. 밤바람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흙냄새와 함께 저 멀리서 풍겨오는 기계 기름 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착각일까.

“네, 대장님. 첩보원들의 마지막 보고서가 맞다면, 저곳입니다. ‘강철의 심장부’. 제국의 서부 전선에서 사용될 모든 신형 병기들이 집결하는 곳이죠.”

지혁이 작은 망원경을 내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무 살 초반의 그는 아직 이런 규모의 작전에 익숙지 않았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사이사이를 메우는 수십 대의 중장비들이 거대한 괴물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보급창고 곳곳에 설치된 감시탑에서는 번쩍이는 탐조등이 미로처럼 복잡한 기지 내부를 훑고 지나갔다.

설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이 작전은 실패할 수 없었다. 흙먼지 연대는 이제 더 이상 작은 반란군이 아니었다. 제국의 횡포에 지친 수많은 이들이 그들의 깃발 아래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제국의 압박 또한 거세졌다. 무기 부족은 언제나 그들의 발목을 잡는 문제였다. 이곳의 무기고를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제국에 타격을 주는 것을 넘어, 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안겨줄 터였다.

“좋아. 계획대로, 하수도망을 이용한다. 지혁, 너와 현수(Hyun-su)는 외곽 경비대 동선을 파악하면서 우리 후방을 지원해. 남은 셋은 나와 함께 진입한다.”

“넷, 대장님!”

지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설아와 함께 진입하고 싶어 했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설아는 그의 마음을 모르는 척했다. 지혁의 무모함은 때론 독이 될 수 있었다.

“불복종은 용납하지 않아. 각자 맡은 임무에 집중해.”

설아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 있었다. 지혁은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설아의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그것이 그들의 관계였다.

팀원들은 덤불 속을 조용히 기어 지하 배수로 입구로 향했다. 낡고 녹슨 철제 뚜껑이 어둠 속에 겨우 윤곽을 드러냈다. 현수가 조심스럽게 뚜껑을 들어 올리자, 퀴퀴한 곰팡이와 눅눅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그들의 목적지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가장 몸집이 작은 ‘은아(Eun-a)’가 자원했다. 그녀는 연대에서 가장 뛰어난 잠입 전문가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설아는 그녀를 등 뒤에서 조용히 밀어 넣었다. 철제 계단을 밟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은아는 유령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민준(Min-jun)’이, 그리고 설아가 뒤를 따랐다.

습한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좁고 구불구불한 하수도 터널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공간이었다. 곳곳에서 쥐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울렸다. 설아는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성공만이 있었다. 수많은 동지들의 목숨이 이 작전에 달려 있었다.

터널은 예상보다 길었다. 제국의 보급창고가 얼마나 거대한지, 이 지하 구조물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한 시간가량 터널을 기어간 끝에, 은아가 멈춰 섰다. 그녀의 손짓에 설아와 민준도 멈췄다.

“대장님, 저기… 막다른 길 같습니다.”

은아가 손전등으로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얼핏 보면 견고하게 막힌 벽이었지만, 설아의 눈은 미세한 틈새를 놓치지 않았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 보이는 희미한 간격.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

“여기가 보급창고 내부로 연결되는 통로야. 제국 놈들이 땜질해놓은 거지.”

민준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연대에서 가장 오래된 베테랑 중 한 명으로, 제국의 구조물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는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소형 폭약을 꺼냈다. 극히 낮은 소음을 내도록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소량만 사용해. 붕괴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설아의 지시에 민준은 능숙하게 폭약을 벽의 틈새에 설치했다. 작고 정교한 장치들이 벽면에 착 달라붙었다. 잠시 후,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설아는 벽에서 멀리 떨어져 팀원들에게 엎드릴 것을 지시했다.

*쉬이이이이익…*

폭약이 터지는 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 마치 거친 바람이 잠시 불어닥치는 듯한 소리였다. 하지만 진동은 강렬했다. 콘크리트 벽이 무너지면서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내 그 앞에는 겨우 한 사람이 기어들어갈 만한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설아는 먼저 통로 안을 들여다봤다. 거대한 보급창고의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대로였다. 끝없이 이어진 철골 기둥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선 거대한 수송 컨테이너들. 거대한 기계들이 웅장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서 있었다.

“진입한다. 소리 내지 마.”

설아의 명령에 따라 은아가 먼저 좁은 통로를 통해 기어들어갔다. 이어서 민준, 그리고 설아도 몸을 밀어 넣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기생충 같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습한 공기 대신 기계와 금속의 차가운 냄새가 진동했다.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수십 겹으로 쌓여 있었고, 그 사이로 자율형 운반 로봇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쁘게 움직였다. 이 모든 것이 제국의 무자비한 힘을 상징하고 있었다.

“저기, 대장님. 저쪽입니다.”

은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보급창고 가장 안쪽에 위치한, 유독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모여 있는 구역이었다. 첩보원들의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 제국이 새로 개발한 ‘강철 거미’라 불리는 최신형 다족 보행 병기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이 병기는 단 한 대로도 작은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고 전해졌다.

그들은 그림자처럼 컨테이너 사이를 움직였다. 자율형 로봇들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했지만, 가끔씩 순찰하는 제국 병사들의 발소리는 심장을 죄어오게 만들었다. 한 번은 병사 한 명이 바로 그들이 숨어 있는 컨테이너 옆을 지나쳤다. 설아는 숨조차 쉬지 않고 벽에 몸을 바싹 붙였다. 병사의 군화 소리가 멀어지는 순간까지, 온몸의 감각이 곤두섰다.

마침내, 그들은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거대한 검은색 컨테이너들이 거대한 벽처럼 서 있었다. 그 위에는 제국의 상징인 붉은 독수리 문양이 섬뜩하게 그려져 있었다. 설아는 컨테이너의 잠금장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복잡한 전자식 잠금장치였다.

“은아, 해제할 수 있겠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제국 최신형이네요.”

은아가 작은 공구들을 꺼내 들고 잠금장치에 달라붙었다. 그녀의 섬세한 손놀림은 마치 예술가의 붓질 같았다. 틱, 틱, 하는 미세한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설아는 주위를 경계하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했다.

그때였다.

“대장님! 저, 저기 좀 보세요!”

민준의 목소리에 설아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강철 거미 컨테이너들 뒤편,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작고 낡은 컨테이너였다. 주황색으로 녹슨 외벽에는 아무런 제국 문양도 없었다. 마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물질처럼 보였다.

“저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첩보 보고에는 없던 겁니다.”

설아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본능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은아에게 잠금장치를 잠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민준, 저 컨테이너를 열어봐.”

민준은 주저했지만, 설아의 단호한 눈빛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공구로 낡은 컨테이너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끽 소리를 내며 육중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 너머로, 충격적인 광경이 설아의 눈앞에 펼쳐졌다.

컨테이너 안에는 ‘강철 거미’가 아닌, 수십 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얼굴은 피폐하고, 손목과 발목은 족쇄에 묶인 채였다. 그들은 놀란 눈으로 설아 일행을 바라봤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다. 흙먼지로 뒤덮인 옷차림, 굶주림에 지친 눈빛… 그들은 분명 제국에 의해 끌려온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게… 대체….”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설아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 제국은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와 무엇을 하려 했을까? 이 보급창고에? 설마, 인간을 연료로 삼는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신형 병기의 실험체로?

그녀의 머릿속에서 혼란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임무는 ‘강철 거미’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제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 하지만 눈앞의 이들은… 그들은 분명 살아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들을 외면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그때였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순찰 로봇의 기계음이 아니었다. 규칙적이고 묵직한, 수십 명의 발소리가 컨테이너들이 쌓인 미로 속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제국 병사들이다! 수가 많아!”

지혁의 다급한 무전이 설아의 귀를 찢었다. 외부에서 순찰대를 놓쳤거나, 예상치 못한 지원 병력이 도착한 것이 틀림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설아는 족쇄에 묶인 사람들과, 거대한 ‘강철 거미’ 컨테이너, 그리고 다가오는 제국 병사들의 발소리 사이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선택해야만 했다. 이들을 버리고 임무를 완수할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순간, 한 어린아이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아이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이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임무를 완수할 방법이 있을까?

그녀의 손이 허리춤에 찬 폭약 꾸러미로 향했다. 다가오는 발소리는 이제 숨소리마저 집어삼킬 듯 가까워져 있었다.

“은아! 민준! 문 닫아! 그리고 이들을…. 풀어!”

설아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혼돈 속으로, 그녀는 한 발짝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