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울림
창성호의 함교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는 그 어떤 단어로도 형언할 수 없는 검푸른 심연이었다. 저 먼 은하의 팔을 벗어나, 인류의 발자국이 닿은 가장 깊은 심연. 이곳에서 시간은 의미를 잃었고, 별들은 얼어붙은 눈물처럼 아득하게 빛났다.
“함장님, 여섯 번째 우주 주기 스캔 완료했습니다. 특이사항 없습니다.”
항해사 박민준 중위의 건조한 보고에 김하준 함장은 고개만 까딱였다. 지난 5년간, 그들은 수없이 많은 ‘특이사항 없음’을 들었고, 그만큼 실망에 익숙해졌다. 미지의 존재를 찾아, 혹은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난 여정은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절망적이었다. 낡은 커피잔을 든 그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함교 의자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수진은 아직도 기관실에 박혀있나?”
“네, 기관 상태 최적화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늘 그렇듯.”
민준이 살짝 웃었다. 이수진 기관장. 그녀의 고집과 실력 덕분에 창성호는 이 머나먼 우주에서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민준의 모니터에서 섬광처럼 붉은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함장님! 미확인 에너지 신호 포착!”
김하준의 손놀림이 재빨라졌다. 커피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스크린 앞으로 다가섰다. “자세히 보고해.”
“감지 거리 1.2 천문단위. 유형 분류 불가능한 고밀도 에너지원입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패턴이 없습니다. 자연 현상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이 섞였다. 희박하다는 것은, 존재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하준의 심장이 오랜만에 고동치기 시작했다. 5년 만의 일이었다.
“궤도 분석.”
“분석 중… 중력 렌즈 효과가 관측됩니다. 상당한 질량체입니다. 하지만…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투명하다는 건가?”
“아니요, 흡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모든 스펙트럼의 전자기파를 흡수합니다. 마치… 우주에 구멍이 뚫린 것 같습니다.”
그때 통신이 열렸다. “여기는 기관실, 이수진입니다. 함장님, 갑자기 주 전력의 미세한 맥동이 감지됩니다. 외부에 강력한 간섭원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방금 발견된 미확인 에너지원 때문일 겁니다, 이 기관장. 어떤 형태의 맥동이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기계적인… 하지만 생명체와도 같은 미묘한 주기성입니다. 배 전체가 왠지 모르게…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김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생명체와 같은 주기성이라니.
“항해사, 접근 경로 설정. 속도는 최저로. 모든 함포 에너지 축적. 방어막 최대 출력으로.”
“함장님! 위험합니다! 미지의 존재입니다!”
민준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들의 임무는 탐사지만, 무모한 자살 행위는 아니었다.
김하준은 창밖의 검은 심연을 응시했다.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를 잊었나, 박 중위? 인류가 두려워 움츠리고만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동굴 속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을 거다. 이 심연까지 온 이유는… 미지를 마주하기 위해서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민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명령에 따랐다. 창성호의 거대한 선체가 검은 우주를 가르며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면 스크린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센서들은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두 시간 후, 창성호는 마침내 미지의 존재에 0.1 천문단위까지 접근했다.
“함장님, 전면 스크린 최대 확대입니다.”
민준의 말에 김하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체는 마치 거대한 심장 옆에 선 것처럼 미세하게 울리고 있었다. 함내의 공기는 끈적이는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가시광선 파장, 자외선, 적외선, 모든 스펙트럼으로 바꿔봐.”
민준이 시키는 대로 조작했다. 그때, 스크린 한가운데에 아주 희미한 윤곽이 떠올랐다. 마치 우주 공간 자체를 도려낸 듯한, 완벽한 검은색이었다. 별빛조차 삼켜버린 듯한 그 존재는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냈다.
거대했다. 창성호의 세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육면체였다. 매끈하고 완벽하게 검은 표면은 주변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했다. 아무런 무늬도, 돌출된 부분도, 동력원도 보이지 않았다. 수십억 년을 떠돌았을 법한 고대의 유물이자, 동시에 방금 만들어진 듯한 완벽한 형태.
“세상에…” 민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뭐야?” 김하준의 목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그의 탐사 인생에서 이런 경외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이수진 기관장의 목소리가 다시 통신을 통해 들려왔다. “함장님! 저 물체에서… 알 수 없는 신호가 발산됩니다! 우리 함선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있습니다!”
“간섭? 어떤 식의 간섭이지?”
“정보입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강제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함선 AI가 과부하되기 직전입니다!”
김하준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아무런 보호막도, 송신 장치도 보이지 않는 저 검은 큐브가 그들에게 데이터를 쏘아 보내고 있다고? 공격인가?
“데이터를 막아! 차단벽 올려!”
“불가능합니다! 침투율 99%입니다! 마치… 우리 시스템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고 있어요!”
스크린 속 검은 육면체가 갑자기 묘한 울림을 시작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창성호의 함교 바닥이, 의자가, 모든 금속 부분이 공명하는 듯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함장님, 전방 감지기로부터… 구조 분석 결과입니다.” 민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물체의 표면은 단일 물질입니다. 하지만… 그 분자 구조가 이 우주의 어떤 알려진 원소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하준은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섰다. 육면체의 한가운데, 아주 미세하게, 검은 표면 위에 흐릿한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어둠 속의 어둠이 살짝 열리는 듯한 착각이었다.
“확대!”
스크린이 확대되자, 그 빛은 균열처럼 길게 이어진 틈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주 가늘고 섬세한, 인위적인 선. 그 틈새 안쪽에서 짙은 보랏빛이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저 육면체가 입을 벌리는 것 같았다.
“함장님, 에너지 간섭이 더 심해집니다! 함선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이수진의 절박한 외침이 이어졌다.
“저 틈새에서… 뭔가 나오고 있습니다!” 민준이 외쳤다.
보랏빛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 틈새 사이로, 무언가 길고 가느다란 것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촉수 같기도, 섬뜩한 기계 팔 같기도 한 그것은 창성호를 향해 마치 손짓하듯 미세하게 움직였다.
김하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동자에 불안과 호기심이 동시에 번뜩였다. 저 검은 육면체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살아있었다. 혹은, 살아있는 무언가를 품고 있었다.
“함장님! 우리 항법 시스템이 외부로부터 제어되고 있습니다! 함선이… 저 물체 쪽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민준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창성호의 거대한 선체가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천천히, 하지만 멈출 수 없는 속도로 검은 육면체의 틈새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랏빛은 이제 창성호 전체를 감싸는 듯했다.
“이런… 제기랄.”
김하준은 육면체의 벌어진 틈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응시했다. 인류의 역사가, 그리고 그들의 운명이, 지금 이 순간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손아귀에 붙들린 채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