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장벽은 오래된 상처처럼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 높고 두껍고, 언제나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채. 그 그림자는 비단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굳게 다문 입술에도, 메마른 눈동자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인간은 장벽 너머의 어둠을 두려워했고, 동시에 증오했다.

나는 늘 장벽에 가까운 치유원 구석방을 썼다. 차가운 돌벽을 만지면 저 너머의 한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이곳은 감시가 삼엄한 곳이었고, 밤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기는 곳이었다. 매일 밤, 나는 침상에 누워 그 소리들을 들었다. 바람 소리인지, 짐승의 울음인지, 아니면… 어둠 속 존재들의 노래인지 알 수 없는 소리들.

“이레나, 정신 차려. 상처를 꿰맬 때는 집중해야지.”

원장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바늘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앞에는 감시병 하나가 창에 깊게 베인 옆구리를 움켜쥐고 신음하고 있었다. 상처는 보기 흉할 정도로 깊었다. 스며 나오는 피는 검붉었고, 살점은 찢겨 너덜거렸다. 밤의 숲을 순찰하다 ‘야족’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다.

야족.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저주받은 존재들. 인간의 영혼을 탐하고, 피를 갈구하며, 오직 파괴만을 일삼는 어둠의 권속들.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고, 인간의 감정을 지니지 않았으며, 그저 죽여 없애야 할 재앙일 뿐이라고.

“망할 야만족 놈들. 숲에 발을 들여놓는 게 아니었는데… 제길.” 병사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과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들의 손톱은 짐승의 것이 아니었어.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았지. 하지만 그 움직임은 인간의 것을 뛰어넘었어. 너무 빨라서… 눈으로 쫓을 수도 없었어.”

나는 묵묵히 상처를 꿰맸다. 이미 수십 번도 더 해본 일이었다. 야족과의 조우는 잦았고, 부상자들은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토해냈다. 짐승 같지만 짐승이 아니었고,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니었다는 모순된 증언들. 하지만 누구도 그 모순을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야족은 악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밤, 나는 잠 못 이루고 치유원의 작은 창밖을 내다봤다. 장벽 너머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가끔 섬광처럼 번개가 쳤고, 그때마다 숲의 실루엣이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울창하고, 빽빽하며,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미지의 세계.

나는 오래된 문헌을 찾아 뒤적였다. 선대 치유사들의 기록, 혹은 금서로 분류된 고대의 이야기들. 도시의 장서각에 몰래 숨겨져 있던 낡은 양피지들을 읽었다. 그 안에는 야족을 묘사하는 다른 시선들이 존재했다. ‘밤의 아이들’, ‘어둠의 수호자’, 심지어는 ‘잃어버린 형제들’이라는 표현까지. 하지만 그런 책들은 곧장 이단으로 낙인찍혔고, 저자는 화형당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오래된 글자들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장벽 너머의 세계가 정말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일방적인 악으로만 가득 차 있을까?

다음 날 새벽, 나는 아무도 모르게 치유원을 나섰다.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시의 거리는 고요했다. 순찰병들이 오가는 길을 피해, 나는 장벽 가장자리에 위치한 작은 샛길로 향했다. 그 길은 도시의 폐기물이 버려지는 곳이자, 가끔 약초꾼들이 목숨을 걸고 장벽 근처 숲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 역시 며칠 전부터 필요한 약초를 구실 삼아 이곳을 오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숲의 공기는 유독 무거웠다. 습하고, 흙냄새와 함께 비릿한 피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숲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흐읍… 크윽…”

낮게 깔리는 신음 소리.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것도 아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어딘가의 소리. 나는 심장이 발끝까지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몸을 숲 속 나무 뒤에 숨겼다. 그리고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했던 흉측한 괴물의 모습도 아니었다. 짙은 밤색 피부에, 그림자처럼 어두운 머리카락.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근육. 그리고 등 뒤에는, 마치 밤하늘을 찢고 나온 듯한 검은 날개가 축 늘어져 있었다. 한쪽 날개는 꺾여 있었고, 피가 솟구쳐 나와 땅을 적시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인간의 칼날이 박혀 있었다. 깊게, 잔인하게.

그는 분명 ‘야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텅 비어있지 않았다. 고통과 절망, 그리고 강렬한 생존의 의지가 뒤섞인 눈동자. 그는 마치 야생의 짐승처럼 날카로운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가 숨어있는 나무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나는 숨을 멈췄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의 눈이 나를 향했다. 깊은 밤색 눈동자. 그 안에는 어떠한 흉포함도, 광기도 없었다. 오직…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고통만이 서려 있었다.

내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너무나 격렬하게.

‘저건… 짐승이 아니야.’

그는 비틀거리며 상처를 움켜쥐었다. 검은 피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 나왔다. 그는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지금 이대로 두면,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인간의 칼날에 박힌 채, 아무도 모르게 이 숲 속에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내 안의 모든 경고음을 무시한 채, 나무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곧, 살기 어린 광기가 스쳤다. 그는 부러진 날개조차 신경 쓰지 않고,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킨 채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멈춰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떨렸지만, 이상하게도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당신을… 살릴 거예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안에 스친 감정은… 혼란이었다. 그는 나를 꿰뚫어 볼 듯 쳐다보았다. 인간인 내가, 야족인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한 발 더 다가섰다. 그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힘이 빠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상처가 너무 깊었다.

“상처를 봐야 해요.” 나는 들고 있던 약초 주머니를 보이며 말했다. “그대로 두면… 죽어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속에 있던 살기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의문과 경계심만이 남았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옆구리에 박힌 칼날은 섬뜩할 정도로 깊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급처치뿐이었다. 당장 뽑아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출혈만 더 심해질 터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혈에 도움이 되는 약초와 깨끗한 천을 꺼냈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 풀벌레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상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몸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살아있는 온기.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시선은 한 순간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짙은 밤색 눈동자는,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나를 붙잡았다.

내 손이 그의 상처에 닿았다. 끔찍하게 찢어진 살과 뼈. 인간의 칼날은 그에게 너무나도 잔인했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피를 닦아내고 약초를 짓이겨 발랐다.

그때였다. 숲 속 저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찰견의 소리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발각되면… 끝이었다. 나도, 그도.

나는 급하게 천으로 그의 상처를 덮고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그의 눈을 다시 마주했다.

“숨어요. 빨리.”

그의 눈동자에 혼란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스쳤다.

“빨리요!”

개 짖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횃불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무거웠고, 상처 때문에 힘을 쓸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나에게 닿았다. 그 짙은 밤색 눈동자가, 마치 한 마디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왜?’

나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숨어야 해요… 당신도, 나도.” 내 목소리는 간절함을 넘어 절박했다.

순찰견의 발소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부축했다. 우리의 운명은, 이제 하나의 실타래에 얽혀 있었다. 장벽 너머의 금지된 실타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