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엘룬 숲은 늘 그랬다. 푸른 달빛이 잎사귀 사이를 비집고 내려와 고요히 잠든 대지를 깨울 때, 숲의 심장은 가장 선명하게 맥동했다. 고요함 속에서 생명이 숨 쉬는 소리가 들렸고, 수천 년 묵은 고목들은 침묵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서 있었다.

리라는 그 침묵 속에서 태어났다. 숲의 숨결과 함께 자라났고, 숲의 영혼이 그녀의 눈동자에 깃들었다. 초록빛 눈동자는 낮에는 싱그러운 이끼처럼 빛나고, 밤에는 희미한 인광을 띠며 어둠을 밝혔다. 길게 늘어뜨린 백금발은 허리께에서 작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뾰족한 귀는 바람의 속삭임마저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실바니, 엘룬 숲의 고귀한 수호자 중 하나였다.

오늘 밤도 리라는 숲의 가장자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워 낙엽 한 장 건드리지 않았다. 오래된 나무뿌리들이 얽히고설킨 숲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늘 같은 염려가 맴돌았다. ‘장벽’ 너머의 세상.

엘룬 숲의 동쪽 끝에는 ‘어둠의 장벽’이라 불리는 거대한 마법의 장벽이 있었다. 실바니의 고위 현자들이 수천 년 전에 세운, 숲을 보호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의 침범을 막는 방벽이었다. 그 너머에는 ‘작열의 황무지’가 있었다. 칼라쉬의 땅이었다. 뜨거운 불과 검은 재, 그리고 끝없는 갈증으로 뒤덮인 땅. 그곳에 사는 이들은 실바니에게 있어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들과의 접촉은 금지되었다. 그것은 실바니의 가장 오래된 율법 중 하나였다.

바람이 차가운 콧잔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해야 할 장벽 근처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기척이 느껴졌다. 리라의 심장이 불현듯 차갑게 움츠러들었다.
“…뭐지?”
그녀는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가늘게 눈을 떴다. 숲의 경계선이 희미하게 푸른빛을 뿜어내는 곳, 그곳에 그림자처럼 쓰러져 있는 형체가 있었다.
인간의 형체. 하지만 실바니는 아니었다. 저 거친 옷차림, 붉은 기운이 감도는 피부,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타는 듯한 기척은 분명… 칼라쉬였다.

리라의 온몸에 경계심이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그는 엘룬 숲으로 넘어오려 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장벽 근처에서 쓰러진 것인가? 율법은 명확했다. 그들을 돕지 마라. 그들을 숲으로 들이지 마라. 그들은 숲의 적이다.

하지만 쓰러진 칼라쉬는 미동도 없었다. 한참을 지켜봐도 움직임이 없자, 리라의 머릿속에 혼란이 찾아왔다. 죽은 건가? 아니면… 위험한 덫인가?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다가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조금 더 가까이. 아주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자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묵직한 피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쓰러진 칼라쉬는 젊은 남자로 보였다. 검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얼굴에 들러붙어 있었고, 거친 야생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듯한 옷은 찢겨 너덜거렸다. 오른팔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고, 그곳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숲의 이끼를 더럽히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낡고 거친 단검이 쥐여 있었지만, 힘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활과 화살통이 매여 있었다. 사냥꾼이거나 전사일 터였다.
그는 살아있었다. 그러나 죽음 직전이었다.

리라는 숨을 멈췄다. 율법. 금지된 접촉.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단순한 적이 아니었다. 죽어가는 생명이었다. 숲의 아이들은 모든 생명을 존중하도록 배웠다. 심지어 숲을 해치려는 존재의 생명까지도. 그러나 칼라쉬는 달랐다. 그들은 숲을 파괴하는 자들이었다.

“크윽…”
남자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힘겹게 열렸다. 핏줄이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리라를 향했다. 경계심, 고통, 그리고 짙은 절망이 그 눈동자에 뒤섞여 있었다.
리라는 얼어붙었다. 붉은 눈. 숲의 색이 아닌, 불의 색을 닮은 눈. 낯설고 위험한 색이었다.

남자는 그녀를 보았다. 푸른 달빛 아래서 빛나는 백금발과 초록빛 눈동자. 그는 분명 그녀가 실바니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의 얼굴에 순간적인 경악과 당혹감이 스쳤다.
“…너…는…” 그의 목소리는 끓는 쇠붙이처럼 거칠고 메말라 있었다. “…숲의… 요정인가…”
리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를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초록 눈동자에 닿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경계심 가득했던 눈빛에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 다른 감정이 엿보였다. 마치… 숲의 고요함에 압도된 듯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가지…마라…” 그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부탁이니…카…엘…”

카엘? 그의 이름인가?
리라는 그가 자신을 잡으려 하는지, 아니면 단지 본능적으로 손을 뻗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눈꺼풀이 다시 감겼다. 이번에는 영원히 닫힐 것 같은 기세였다.

그녀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율법? 금지된 접촉? 숲의 적?
하지만 저건, 그냥… 죽어가는 남자였다.
그의 숨결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숲의 경계선에서. 숲의 아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리라는 망설였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는 그녀의 평생보다 길게 느껴졌다.
결국 그녀의 손이 움직였다. 길고 가는 손가락이 남자의 이마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올렸다. 그의 피부는 예상보다 뜨거웠다. 황무지의 열기가 그의 몸에 스며든 듯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엘룬 숲은 늘 고요했고, 밤의 순찰자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그녀만의 비밀이 될 것이다.

“도와줄게…”
나직이 속삭인 그녀의 목소리는 숲의 바람 속에 흩어졌다.
리라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굳어 딱딱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는 재빨리 옷자락을 찢어내 남자의 상처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숲의 영혼에 간절히 빌었다. 제발, 그를 살려달라고. 그녀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은 숲의 율법보다 더 강렬한 무언가에 이끌리고 있었다.
이것은 금지된 시작이었다. 누구도 알지 못할, 오직 숲과 그녀만이 아는 비밀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엘룬 숲의 고요함을 산산이 부술 폭풍의 씨앗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