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미스터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1403호, 흔들리는 일상

식탁 위에 놓인 컵에서 미지근한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차가워진 빈 그릇들을 설거지통에 넣고 물을 틀었다. 쨍한 물줄기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거실의 묘한 정적을 조금이나마 걷어내는 듯했다. 지우는 주방 불을 끄고 어둠이 지배하는 거실로 향했다. 며칠째 이어지는 불면증은 온몸을 끈적하게 만들었다.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TV를 켤까 하다가 이내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밝은 화면이 오히려 더 눈을 피로하게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뭘 봐도 집중할 수 없을 테니까. 며칠 전 거실 한쪽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지우의 평온한 일상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처음엔 그저 못이 낡았으려니 했다. 다음 날, 서재 책상 위 연필꽂이가 통째로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도, 그는 피곤함 탓에 헛것을 본 것이라 애써 치부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이상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혼자 쓰는 1403호 아파트에서, 그것도 이렇게 밤이 깊어 고요한 시간에.

귓가에 맴도는 것은 그저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 소리뿐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이 불편한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였다.

‘스르륵.’

아주 희미한 마찰음이 등 뒤, 그러니까 주방 쪽에서 들려왔다. 지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숨을 죽였다.

‘고작 몇 시간 전에 설거지를 다 끝냈는데?’

접시를 내려놓는 소리라기엔 너무 작았다. 마치 무언가 아주 미끄러운 바닥 위를 스쳐 지나가는 듯한 소리. 고양이 같은 작은 짐승의 움직임 같기도 했지만, 이 아파트에서 그런 소리가 날 리가 없었다. 지우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둠이 짙게 깔린 주방 입구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전제품의 전원 램프만이 희미하게 푸른빛을 깜빡일 뿐.

“착각이겠지.”

지우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어서 잠이나 자야 했다. 몸이 너무 지쳐서 환청까지 들리는 거라고, 그는 애써 제 마음을 다독였다.

그 순간, 냉장고가 ‘우우웅’ 하고 평소보다 훨씬 큰 소리를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치익’ 하는 작은 전기음과 함께 냉장고 내부 조명이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모든 소리가 뚝 끊겼다. 고요함이 다시 아파트를 집어삼켰다. 전원 램프조차 꺼진 듯했다.

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안감이 심장을 옥죄어 왔다. 냉장고는 멀쩡히 작동하던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전원이 나가거나, 시동이 꺼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냉장고로 다가갔다. 전면에 달린 디지털 시계가 꺼져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내부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시원한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 냉장고는 멀쩡했다. 전원 램프도 다시 푸른빛을 띄고 있었다.

“뭐야, 이건 또…”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마치 누군가 그를 지켜보며 장난을 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거실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던 작은 도자기 장식품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몇 달 전 여행지에서 사 온 코끼리 모양의 조형물이었다. 그 장식품은 본래 선반 중앙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반 모서리 쪽으로 위태롭게 밀려나 있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지우는 천천히 장식품으로 향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중앙으로 되돌려 놓았다. 혹시 자신이 무심코 건드렸던 건가? 아니, 그럴 리 없었다. 그는 오늘 저녁 내내 이 거실에 들어온 적이 없었다.

“이제 하다 하다 물건 위치까지 바뀌나…”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소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떼지 않고 장식품을 응시했다.

10초, 20초…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지우의 시선은 장식품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다 피곤해서 그런 거다.

‘스르륵.’

다시 그 소리. 이번에는 선반에서 나는 소리였다.

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지켜보는 바로 그 순간, 방금 제자리로 돌려놓았던 코끼리 장식품이 다시 스르륵, 하고 모서리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마치 투명한 손가락이 그것을 밀어내는 것처럼.

“흐읍!”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은 완전히 장식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장식품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코끼리의 잘린 코가 데구루루 굴러와 지우의 발치에 멈췄다.

“이게… 이게 대체…”

말문이 막혔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일이었다.

갑자기, 거실 바닥에 놓여 있던 빈 맥주 캔 하나가 스스로 ‘덜그럭’거리더니 옆으로 데굴 굴러갔다. 마치 누군가 발로 툭 찬 것처럼.

“누구야! 거기 누구 있어?!”

지우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는 몸을 돌려 현관문 쪽으로 향하려 했다. 당장 이 집을 벗어나야 했다. 하지만 다리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침실 쪽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거운 가구가 넘어지는 듯한 소리.

아니, 어쩌면… 누군가 문을 격렬하게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우는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침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안에는 아무도 없어야 했다. 그는 오늘 하루 종일 혼자였다.

‘쿵! 쿵! 쿵!’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침실 문이 부서질 듯한 기세였다. 이제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안에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 문을 부수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지우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았다. 벗어날 곳이 없었다.

‘끼이익… 끼이익…’

소리는 침실 문 안쪽에서 들리는 낡은 나무 흔들 의자의 소리였다. 지우의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 흔들 의자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물건이었다. 낡았지만 소중해서, 이사 올 때도 버리지 않고 가져와 침실 구석에 놓아두었다. 그는 절대 흔들 의자에 앉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흔들 의자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닫힌 문 안에서.

갑자기, 문틈 사이로 핏빛 같은 붉은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덜그럭’ 하는 소리와 함께 침실 문고리가 아래로 휙 돌아갔다.

‘딸깍.’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

지우의 눈앞에서 침실 문이 아주 천천히, 안쪽으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그는 얼어붙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안에서 빛 한 점 없는 어둠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낡은 흔들 의자가 ‘끼이익, 끼이익’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소리는 점점 더 광기에 가득 찬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마치 흥분한 존재가 그 의자에 앉아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지우의 눈이 어둠 속으로 쑤셔박혔다. 그는 보았다. 흔들 의자가 멈추지 않는 와중에도, 그 의자 아래에서 길고 앙상한 손가락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을.

어둠 속에서 창백하게 빛나는 손가락들이 바닥을 짚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의 발목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귀 바로 옆에서 섬뜩할 만큼 차가운 바람과 함께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젠, 여기야.”

그 목소리는 익숙했지만, 동시에 낯설고 이질적인, 비인간적인 존재의 목소리였다. 지우는 미처 소리 지를 틈도 없이, 발목에 차가운 것이 닿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손가락들이 그의 발목을 휘감는 순간, 흔들 의자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완벽한 정적.

그리고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나며 지우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