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깊어진 천라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 무영봉. 그 위로 치솟은 웅장한 백옥궁은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아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은 바로 혁련이 ‘청명영근’을 완전히 흡수하고, 실질적으로 천라산맥의 패권을 장악했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성대한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백옥궁 깊숙한 곳, 연회의 시끄러운 환호성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그림자 속. 한 남자가 고요히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련화. 과거에는 빛나는 천재였으나, 지금은 온몸에 깊은 상흔을 감추고 밤의 그림자처럼 스며든 존재. 그의 눈은 핏빛으로 물든 듯 붉게 빛났고, 차가운 살기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번졌다.

“혁련… 네놈이 나의 청명영근을 강탈하고, 흑영신검을 훔쳐 내 종문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려 했을 때, 나는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련화의 입술 사이로 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뇌리에는 3년 전의 악몽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함께 피와 땀을 나누며 수련했던 벗, 형제처럼 믿었던 혁련의 서늘한 미소. 그리고 등 뒤를 파고들던 칼날의 감촉. 영근이 뿌리째 뽑히는 듯한 끔찍한 고통과 함께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던 순간. 마지막으로 보았던 혁련의 눈빛은 마치 자신을 벌레 보듯 차가웠다.

그때, 련화는 모든 것을 잃었다. 종문은 폐허가 되었고, 영근은 강탈당했으며,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다.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기연을 만나 새로운 길을 걸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연화처럼, 그의 새로운 영근은 과거의 청명함과는 다른 맹렬하고 파괴적인 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네놈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악몽이 되어 돌아왔다. 이 련화가 네놈의 자랑스러운 영광을 피로 물들여 줄 것이다.”

련화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연회장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섰다. 복도를 가득 메운 호위 무사들은 그의 존재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그의 신법은 이미 그림자 그 자체였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이어졌고, 그의 몸은 공간의 틈새를 유영하는 듯했다.

연회장 안은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흥겨운 음악 소리로 가득했다. 중앙에는 빛나는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혁련이 화려한 금사포를 걸친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검고 은은한 광채를 뿜어내는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바로 련화의 종문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 흑영신검이었다.

혁련의 얼굴에는 오만함과 만족감이 가득했다.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종문 사파의 수장들이 모여 아첨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은 혁련의 영근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의 무위가 얼마나 하늘을 찌르는지 끊임없이 찬양했다.

“하하하! 제군들의 과찬이 너무나도 영광스럽소!” 혁련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잔을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천라산맥의 평화를 위한 것이니, 앞으로도 나 혁련은 제군들과 함께 영원한 번영을 누릴 것이오!”

련화는 숨죽인 채 연회장의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의 시선은 오직 혁련에게, 그리고 혁련의 손이 닿아 더럽혀진 흑영신검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분노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저 검은 내 아버지가 쓰시던 검이었다. 네놈 같은 역적의 손에 더럽혀질 성물이 아니다.’

오늘 밤 혁련은 흑영신검을 공개하고, 자신의 청명영근의 힘으로 검에 새로운 혼을 불어넣는 의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이는 혁련의 권위를 하늘 끝까지 치솟게 할 중요한 행사였다.

련화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서는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얻어낸 새로운 힘, ‘흑련마강(黑蓮魔罡)’이었다. 이 힘은 과거 련화의 영근이 지녔던 청명한 영기(靈氣)와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위력은 비할 데 없이 강력했다.

혁련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으로 향했다. 군중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혁련은 흑영신검을 집어 들었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어둠의 기운이 그의 손아귀에 감돌았다.

“오늘, 이 혁련은 흑영신검에 나의 청명영근의 힘을 주입하여, 천라산맥의 수호신병으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나의 힘으로 이 검은 더욱 강력해지고, 천라산맥은 영원히 내 품 안에서 번성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웠다. 련화는 기다렸다. 혁련이 검에 자신의 영기를 주입하기 시작하는 순간을. 혁련이 두 눈을 감고 온 신경을 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푸른빛의 영기가 뿜어져 나와 흑영신검을 휘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련화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흑련마강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처럼 연회장의 천장을 타고 흘러, 흑영신검 아래에 미리 설치된 거대한 영진(靈陣)을 향해 뻗어갔다.

영진은 흑영신검에 혁련의 영기를 안정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핵심이었다. 련화는 이 영진의 가장 중요한 핵심부를 흑련마강으로 오염시키고 있었다. 흑련마강은 청명한 영기와는 상극인 탁하고 파괴적인 기운이었다.

혁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흑영신검이 그의 영기를 흡수하며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영진의 한가운데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푸른빛으로 빛나던 영진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식당했고, 이내 격렬한 혼란 속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영진을 구성하던 영석들이 폭발하며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크악!”

혁련의 입에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검에 주입되던 그의 영기가 불안정해지면서 역류한 것이다. 그의 몸을 감싸던 푸른빛 영기가 혼란에 빠져 휘몰아쳤고, 흑영신검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한 채 둔탁한 금속 조각처럼 변해 버렸다. 검에 새겨져 있던 정교한 문양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검은 연기를 토해냈다.

혁련은 영기가 역류하는 고통에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입가에는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이… 이건 대체 무슨 짓이냐! 누가 감히!”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고관대작들은 경악한 얼굴로 혁련을 바라보았고, 호위 무사들은 황급히 단상으로 달려왔다. 혁련은 떨리는 손으로 흑영신검을 들어 올렸다. 과거의 찬란했던 검은 이미 검은 재앙을 뿜어내는 듯한 흉물로 변해 있었다. 영기의 역류와 함께 흑련마강이 검에 스며들어 검의 정기를 모조리 흡수해 버린 것이다.

련화는 그림자 속에서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혁련의 고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련화는 그의 발치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연화잎 하나를 떨어뜨렸다. 그것은 흑련마강으로 빚어진, 생명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커먼 연화잎이었다. 과거 련화의 종문을 상징하던 순백의 연화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련화는 그림자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혼돈에 빠진 연회장 뒤편으로 혁련의 격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것은… 이 기운은… 설마… 련화… 네놈이 아직 살아있단 말이냐!”

그의 절규는 련화에게 닿지 않았다. 련화는 이미 무영봉의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의 심장은 차갑게 고동쳤고, 그의 눈은 깊은 밤하늘처럼 검고 싸늘했다.

‘이제부터 네 모든 꿈은 악몽이 될 것이다. 혁련. 네가 내게 안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여 줄 것이니… 기대해라.’

어둠 속에서 련화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바람 같은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그는 피로 물든 복수의 서막을 올린 채, 다음 계획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