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크리스탈 첨탑이 하늘을 꿰뚫고 솟아 있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상징이자, 동시에 이 모든 마법 문명의 심장부라 불리는 곳이었다. 유진은 그 첨탑 아래, 웅장한 도서관의 낡은 책상에 앉아 푹 한숨을 쉬었다. 찢어질 듯한 머리통을 부여잡고 눈앞의 마법 역사서를 노려봤지만, 글자들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릴 뿐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또 낙제점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낡은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희미한 마법의 기운이 섞인 도서관 공기에 스며들어 사라질 뿐이었다. 유진은 아르카나 학원 최고의 수재들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그의 마력은 늘 간당간당했고, 실전 마법 수업에서는 늘 사고를 쳤다. 오늘도 변이 마법 수업에서 연금술 가마를 터뜨리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미스터 로젠 교수의 불호령과 함께 특별 봉사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고대 자료실 정리라는 끔찍한 형벌이 떨어졌다.
“이게 봉사냐, 고문이지.”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바로 잊힌 지식과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욕,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이었다. 덕분에 실전은 젬병이어도 이론 과목에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대 마법의 역사나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자료를 파고드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어쩌면, 그 특이한 재능이 그를 이 ‘특별 봉사 활동’으로 이끈 것인지도 몰랐다.
로젠 교수는 낡은 자료실의 문을 열어주며 으스스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유진, 네가 맡을 곳은 제2 서고의 가장 깊은 곳이다. 다른 자료들은 건드리지 말고, 오직 ‘봉인된 시간의 기록’ 카테고리만 정리하도록 해. 그리고… 절대, 벽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라. 이곳은 역사가 깊은 곳이니,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만 해라.”
유진은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로젠 교수의 눈빛에 잠시 몸을 움츠렸다. 그의 경고는 단순한 주의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벽 너머의 소리’라니. 고작 낡은 자료실에 무슨 귀신이라도 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의 호기심은 이미 발동된 후였다.
먼지 가득한 제2 서고는 학원의 여느 화려한 공간과는 달리, 오래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져 있고, 책들은 제멋대로 꽂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진은 건네받은 목록을 들고 ‘봉인된 시간의 기록’이라는 표지가 붙은 책장을 찾아 깊숙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벽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히 들려오는 소리.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낮고 불규칙한 박동음이었다.
유진은 순간 몸을 굳혔다. 로젠 교수의 경고가 뇌리를 스쳤지만, 그의 호기심은 두려움을 압도했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서고의 가장 안쪽, 낡은 책장들 뒤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을 따라 가자,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 다른 책장들보다 훨씬 낡고 거대한, 하지만 아무런 책도 꽂혀 있지 않은 거대한 벽장이 서 있었다.
그 벽장 뒤의 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벽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두꺼웠고, 고대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래 전에 기능을 상실한 듯, 문양의 색은 바래고 일부는 깨져 있었다. 유진은 벽에 귀를 대었다.
**쿵… 쿵… 쿵…**
소리는 이제 훨씬 선명하게 들렸다. 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박동이었다. 단순히 벽 너머의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벽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진은 손을 뻗어 벽의 문양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차갑고 거칠었다. 그때, 그의 손끝에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봉인.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 오래된 봉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했다. 균열이 있었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홀린 듯, 벽장 뒤에 가려져 있던 낡은 마법 서적 한 권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표지에는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겨우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크로노스 레퀴엠: 금지된 시간의 제단’이라는 문구였다.
유진은 책을 펼쳤다. 안에는 삐뚤빼뚤한 필체로 기록된 경고와 함께, 아르카나 학원 지하에 숨겨진 ‘시간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학교는 영원히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시간의 조각들을 먹어치워야만 한다. 금지된 제단이, 금지된 문이 열리면,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혼돈에 빠질 것이니, 절대… 그곳을 건드리지 마라.*
그는 손에 땀을 쥐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학원의 눈부신 번영 뒤에 이런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말인가? 시간의 조각?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크로노스 레퀴엠’의 필자는 공포에 질린 채 경고하고 있었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벽을 바라봤다. 그 경고가 이 벽을 가리키는 것임을 직감했다. ‘시간의 심장’이 이곳 벽 너머에, 바로 이 봉인 아래에 있었다. 봉인은 이미 오래 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불길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쿵… 쿵… 쿵-!**
박동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벽에 새겨진 고대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지만, 발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호기심, 아니, 어쩌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그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
그는 홀린 듯 벽에 손을 다시 대었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그의 손끝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롭고, 동시에 기묘하게 이끌리는 감각이었다. 그때, 벽에 새겨진 마법 문양들이 갑자기 눈부시게 폭발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서고 전체가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벽의 균열이 순식간에 확장되었고, 유진이 손을 댄 바로 그 지점에서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구멍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 그 자체의 격렬한 흐름 같았다. 색과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조각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유진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몸이 순간적으로 무중력 상태가 된 것처럼 떠올랐고, 그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의 파편들은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틀어버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마법 방어막을 소환하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의식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의 몸은 뚫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그는 간신히 눈을 뜨려 애썼다. 그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구멍 너머에 있는 거대한 장치였다. 낡고 거대한, 하지만 활성화된 마법 장치. 그리고 그 장치의 중심에서 흐느적거리는, 인간의 형상과 흡사하지만 섬뜩하게 뒤틀린 **무언가**였다.
**파앗-!**
마지막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유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여전히 벽에 뚫린 구멍 앞에 서 있었다. 장소는 똑같았다. 낡은 서고, 벽의 구멍, 그리고 그 너머의 기이한 장치. 하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공기.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곰팡이 냄새는 여전했지만, 어딘가 희미하게 타는 듯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장치. 장치는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 있던 뒤틀린 무언가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훨씬 더 끔찍하게 변이된, 뼈와 살이 뒤엉킨 괴생명체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유진은 눈을 비볐다. 구멍 가장자리를 살펴보자, 낡은 마법 문양 대신 전혀 다른, 하지만 역시 고대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구멍 옆에 놓인 작은 석판이었다. 그 위에는 이 시대의 달력과 같은 형태로, 분명히 쓰여 있었다.
**[아르카나 성력 742년 11월 12일]**
유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아르카나 성력 1072년이 아니었다. 무려 330년 전의 과거였다. 벽 너머의 금기가 그를 삼켰고, 시간마저 뒤틀어버린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그의 목소리는 미약한 떨림과 함께 공중에 흩어졌다. 끔찍한 금기가 숨겨진 곳. 그곳은 단순한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먹어치우고, 모든 것을 뒤틀어버리는 존재였다. 유진은 꼼짝없이, 금지된 과거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