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먼지가 스크린을 긁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헬멧 속 흐릿한 시야는 방금 전까지 겨우 구별되던 폐허의 윤곽마저 집어삼키고 있었다. 놈들이 나타나기 전에, 이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이 망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망할 먼지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했다.
나의 발밑, 한때는 아스팔트였을 지면은 이제 산산조각 난 콘크리트와 녹슨 철근 조각들로 뒤덮여 있었다. 목표는 저기, 거의 땅속으로 파묻히다시피 한 구형의 구조물이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중앙 제어실’이었다고 한다. 한때 이 도시의 심장이었을 곳. 지금은 그저 뼈대만 남은,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이지만, 여전히 그 안에는 부서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갑자기 헬멧 경고음이 울렸다. 삑, 삑, 삑!
[풍속 급상승. 시야 0%. 즉시 대피하십시오.]
빌어먹을. 또 온다. 황사 폭풍이. 아니, 이제는 그냥 ‘회색 죽음’이라고 불러야 할 거다. 숨이 턱 막히는 압력, 시야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흙먼지의 폭주. 폐허의 잔해가 바람에 찢겨 나가며 유리 조각처럼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한때 높이 솟았던 빌딩들은 이제 허물어져 가는 진흙탑처럼 흔들렸다. 나는 그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달리는 미물에 불과했다.
달렸다. 황폐한 지면을 발로 박차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헬멧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를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다. 모래와 자갈이 섞인 강풍이 나를 밀어붙였지만, 쓰러질 수는 없었다. 쓰러지는 순간, 나는 이 회색 죽음 속에 영원히 파묻힐 터였다.
마침내, 거대한 철골 구조물 아래,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육중한 철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끼이이익, 쾅! 육중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친 바람 소리를 잠시 덮었다. 철문이 닫히는 순간, 바깥의 지옥과 단절되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 들어섰다는 긴장감이 동시에 나를 덮쳤다.
헬멧을 벗어 던졌다. 식도까지 파고든 먼지는 역겨운 흙맛을 남겼고,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쇠 비린내가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마다 검붉게 녹슨 철골과 부식된 기계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죽은 듯 고요했다. 살아 숨 쉬는 것은 오직 나, 그리고 내 거친 숨소리뿐.
손전등을 천천히 움직여 내부를 비췄다. 이곳이 정말 중앙 제어실이었을까? 그 어떤 영광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한때 최첨단 기술의 정수였을 기계들은 이제 그저 거대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발밑에 밟히는 부식된 금속 조각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더 깊숙이 들어갔다. 혹시라도 전기가 남아있는 곳이 있을까 하여 벽에 붙은 패널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다 한쪽 벽에 박혀 있는 낡은 단말기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전원은 나갔지만 어쩐지 미약하게 깜빡이는 표시등이 눈에 띄었다. 희망의 빛일까, 아니면 나를 유인하는 함정일까.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단말기의 먼지 쌓인 패널을 쓸었다. 미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손끝을 스쳤다. 이건… 작동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작동 개시’ 버튼을 눌렀다. 희미한 삑 소리와 함께 녹색 빛이 점멸했고, 낡은 화면에 노이즈가 지직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몇 개의 글자와 함께 흐릿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재개 중… 오류 다수 감지.]
[기본 지도 로드 중…]
지직거리는 노이즈 속에서 희미한 지도가 나타났다. 이 일대의 지형도였다. 그리고 그 위에, 내 위치를 나타내는 작은 점이 깜빡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살아있는 기술을 보는 것이 얼마 만인가.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지도 한쪽에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이상한 표시가 떠올랐다. 붉은색의 경고 신호와 함께, 알 수 없는 문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경고: 미확인 생체 신호 감지. 접근 중…]
등골이 오싹했다. 생체 신호? 이 폐허 한복판에서? 그것도 ‘접근 중’이라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대체 저것은 무엇인가? 나 이외의 다른 생존자일까, 아니면… 이 세계를 지옥으로 만든 끔찍한 괴물들 중 하나일까. 화면의 붉은 점은 점점 더 빠르게 내 위치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어붙은 듯, 낡은 단말기의 화면만을 노려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