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메아리
고요는 무한했고, 침묵은 절대적이었다.
이곳은 은하의 변방, 인류의 발길이 닿은 가장 먼 항로 너머였다. 별들은 얼어붙은 푸른 눈물처럼 아득했고, 무수한 암흑 성운은 거대한 먹물 자국처럼 우주를 수놓고 있었다. 아틀라스호는 그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하나의 점이었다. 오직 한 줌의 인공적인 빛만이 끝없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함교는 낮게 울리는 기계음과 승무원들의 나직한 대화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함장 이정후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펼쳐진 항해 경로를 무심하게 응시했다. 그는 익숙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년간의 임무는 지루함과 단조로움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발견? 미지의 문명? 그런 건 초고해상도 센서가 보여주는 텅 빈 공간만큼이나 막연한 환상일 뿐이었다.
“함장님, 오늘 아침 식사는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단백질 바만으로는 아무래도….”
통신 모니터에 박준영 수석 엔지니어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정후는 피식 웃었다. 준영은 늘 식단에 불평하는 낙으로 살았다.
“준영 씨, 이 광활한 우주에서 뭘 더 바랍니까? 식량 보급선이 코앞에라도 있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만으로는 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이 함선을 유지보수하는 에너지원은 오직 맛있는 식사뿐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강 박사님은 오늘 아침 메뉴에 만족하셨습니까?”
정후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함교의 한쪽 구석, 복잡한 분석 장비에 파묻혀 있던 강지아 박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아틀라스호의 유일한 과학 담당이었다. 잠옷 대신 단정한 근무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에는 새벽부터 이어진 작업의 피로가 엿보였다.
“네, 함장님. 전 괜찮습니다. 식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요.”
지아는 짧게 답하고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일반적인 탐사 데이터가 아닌, 심우주에서 날아오는 희미한 에너지 스펙트럼이었다. 그녀는 이틀 전부터 감지된 이상 신호에 매달려 있었다. 처음에는 센서 오류나 아주 희귀한 우주 현상으로 치부했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뭔가 이상했다.
“강 박사님, 아직도 그… ‘이상한 잡음’에 매달려 있습니까?”
정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아에게 다가갔다.
“잡음이라기엔 너무 규칙적입니다, 함장님. 주파수가 일정치 않은 것이 오히려 더 규칙성을 띠고 있어요.”
“규칙적이지 않은 규칙성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음… 마치 어떤 패턴이 반복되는데, 그 패턴 자체가 매번 조금씩 변형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연 현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형태에요.”
지아는 모니터 화면을 터치했다. 데이터 그래프가 요동쳤다.
“초당 100만 회의 스캔으로도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제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에너지원은 현재 저희 위치에서 약 3.2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고요.”
정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3.2광년. 이 정도 거리에서 명확한 에너지를 감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난 규모를 가졌거나,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의 에너지라는 뜻이었다.
“가까워지고 있다고요? 우리 쪽으로 오는 겁니까?”
“아뇨, 함장님. 저희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항로가 틀어졌어요. 자동 항해 시스템은 여전히 저희가 목표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제 계산으로는 미세한 중력 왜곡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중력 왜곡이요?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행성급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아닌 이상….”
정후의 목소리에 일말의 긴장이 스몄다.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감지된 에너지 스펙트럼만으로는 행성급 질량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너무도 ‘깨끗하고’ ‘단순해서’ 말이죠. 하지만 중력 왜곡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지금 바로 항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정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3년 만에 찾아온 ‘이상 현상’이었다. 그것도 단순한 이상 현상이 아닌, 자신들의 항로마저 뒤트는 미지의 존재.
“항로를 수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계속 지금 속도라면 닷새 뒤쯤, 그 에너지원의 최외곽 영역에 진입하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준영 씨, 들었지? 강 박사님 분석대로 항로 조정해. 미세하지만 분명한 중력 왜곡이 있다고 하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네, 함장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뭔가 있는 겁니까? 오랜만에 긴장되네요. 설마 외계 문명과의 조우인가요? 그럼 드디어 이 징글징글한 단백질 바에서 벗어날 수 있겠군요!”
준영은 능청스럽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닷새는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다. 아틀라스호는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갔고, 그 존재는 침묵 속에서 점점 더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 번째 시각적 접촉은 항해사 ‘김민준’의 다급한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함장님! 전방 0-0-5-알파 지점에서 미확인 물체 포착! 크기 측정 불가! 현재 거리 10만 킬로미터!”
함교의 모든 시선이 전면 스크린으로 향했다. 광학 센서와 다중 스펙트럼 영상이 조합된 화면 속에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암흑 성운의 일부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틀라스호가 더욱 가까워지자, 그 검은 형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기둥 같았다.
매끄럽고,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어떤 접합면이나 이음새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깎아낸 조각상 같았다. 빛을 흡수하는 듯, 어떠한 반사도 없이 심연 그 자체의 색을 띠고 있었다.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가장자리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웠고, 모든 각도가 정확히 90도를 이루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준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스크린에 표시된 물체의 추정 크기는 행성급이었다. 그러나 그 형태는 행성도, 위성도, 소행성도 아니었다. 자연적인 형성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완벽한 인공 구조물이었다.
“강 박사님, 센서 분석 결과는 어떻습니까?” 정후가 침착하게 물었다.
지아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데이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석 불가입니다, 함장님. 아니… 분석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구성 물질을 알 수 없습니다. 알려진 어떤 원소 스펙트럼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적인 데이터에요.”
지아는 손을 들어 화면을 가리켰다.
“질량은 측정되지만, 구성 물질은 미지수입니다. 게다가… 전자기장 간섭이 너무 심해서 근접 스캔 자체가 어렵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함교의 조명이 일순간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음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보조 전원 시스템에 이상 감지! 함선 내부 전력 흐름 불안정!”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준영 씨, 확인해 봐!”
“확인 중입니다! 주 전력 계통은 이상이 없는데… 보조 시스템에 과부하 신호가 잡힙니다! 마치 뭔가가 전력을 ‘빨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저 미확인 물체가 저희 함선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럴 리가… 아직 물리적인 접촉도 없는데!”
정후는 스크린 속의 거대한 검은 기둥을 응시했다. 무한한 침묵 속에 떠 있는 그 존재는,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한 오싹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단순한 물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살아있지 않더라도, 분명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강 박사님, 저 물체에서 어떤 종류의 신호라도 감지되는 게 있습니까? 통신 신호든, 에너지 방출 신호든!”
“아뇨, 함장님. 여전히 완벽한 침묵입니다. 어떠한 방출 신호도 없어요. 다만….”
지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다만, 제 미약한 뇌파 감지기에… 아주 희미한 ‘메아리’ 같은 것이 잡히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파장인데, 마치…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 같기도 하고, 아니면….”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검은 기둥의 표면에 미세한 파동이 일었다. 아주 미세했지만, 스크린을 통해 똑똑히 보였다. 검은 표면이 물결치듯 흔들리더니, 이내 중앙부에서 희미한 푸른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심연의 눈이 막 뜨이는 것처럼.
아틀라스호의 모든 승무원은 숨을 멈췄다. 미지의 존재가, 그들 앞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정후는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전 승무원, 비상 태세 돌입. 무장 해제 위치 대기. 경계를 늦추지 마라. 그리고… 강 박사, 저 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어떤 위험 신호라도 잡히는 즉시 보고해.”
푸른 빛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 빛은 우주의 심연을 가르고, 아틀라스호의 함교 내부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 순간, 지아의 뇌파 감지기에서 믿을 수 없는 수치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경악으로 가득 찬 눈으로 정후를 올려다보았다.
“함장님! 이건… 이건 불가능해요! 저 빛은… 저 빛은 우리 함선 내부의 모든 승무원의 뇌파 패턴과 동일한 주파수를 가지고 있어요! 마치… 우리를 ‘읽고’ 있는 것 같아요!”
고요하던 우주에, 심연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메아리는, 아틀라스호 승무원들의 존재 그 자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