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4: 붉은 열쇠의 수수께끼
희미한 새벽빛이 낡은 마차 창을 비집고 들어왔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세인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육체를 바꾼 지 벌써 삼 년. 이 세계의 질서와 상식에 적응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타고난 지성과 전생의 경험은 그를 이 차가운 땅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활기 넘치는 엘리아가 앉아 바깥 풍경을 연신 구경하고 있었다.
“세인님, 저기 보세요! 저택이 보여요! 소문으로만 듣던 엘란 경의 영지, 아리스테아 저택이에요!”
엘리아의 목소리에는 어린아이 같은 설렘이 가득했다. 엘란 경의 저택은 영지 외곽에 숨겨진 보석처럼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웅장함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흥분하지 마, 엘리아. 그곳은 지금 기쁨보다는 죽음의 냄새로 가득할 테니까.”
세인의 나직한 목소리에 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후, 그는 수많은 기묘한 사건들을 해결하며 ‘천재 탐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그 별칭은 언제나 새로운 죽음을 불러오는 전조와 같았다.
마차가 저택의 낡은 철문 앞에 멈춰 섰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어수선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경비대장 론이 직접 세인 일행을 맞이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함께 피곤함과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세인 탐정님,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론은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엘란 경이… 서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밀실에서 말입니다.”
“밀실이라… 흥미롭군.” 세인의 눈빛이 차갑게 번득였다.
엘리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현장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았다.
서재 앞에는 이미 몇 명의 하인들과 집사 휴이가 초조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집사 휴이는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복장이었으나,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세인 탐정님, 안녕하십니까. 엘란 경의 집사 휴이입니다.” 휴이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비극적인 일로 뵙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세인은 고개짓으로 인사하며 곧장 서재 문으로 향했다. 육중한 오크나무 문에는 굵은 쇠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지만, 이미 경비대장 론에 의해 부서진 상태였다. 부서진 자물쇠 아래, 문고리 옆으로는 옛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황동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것도 *안쪽*에서 말이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론이 설명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쇠창살까지 박혀 있습니다. 굴뚝은 성인 남자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고요.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영주님은… 칼에 찔려 돌아가셨습니다.”
세인은 침묵 속에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눅눅하고 퀴퀴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서재 안은 오래된 책들과 낡은 가구들로 가득했다. 방 한가운데, 거대한 책상 앞에는 엘란 경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날카로운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핏자국은 카펫 위로 섬뜩하게 번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죽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엘리아는 숨을 멈췄다. 세인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방 안을 훑어봤다. 그의 눈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스캐너 같았다.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습니까?” 세인이 물었다.
“제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엘란 경을 깨우러 갔습니다.” 집사 휴이가 대답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잠겨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경비대장께 알렸고… 결국 문을 부수게 된 겁니다.”
“시신에는 손대지 않았겠지.”
“네, 절대로.”
세인은 엘란 경의 시신 가까이 다가갔다. 박힌 단검은 흔하디흔한 장식용 단검처럼 보였다. 탁상 위에는 잉크병과 깃펜, 그리고 방금 작성된 듯한 양피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는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글씨가 선명했다.
「알렉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겠다. 나의 모든 유산은…」
거기까지 쓰여 있었다. 새로운 유언장이었다. 세인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알렉스라면, 엘란 경의 조카를 말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대기실에 있습니다. 부인께서도 함께 계십니다.” 휴이가 씁쓸하게 말했다.
탐정 소설의 클리셰. 유산 상속을 둘러싼 살인. 하지만 밀실은 여전히 미스터리였다. 세인은 방 안을 더욱 면밀히 살펴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했고, 어딘가 흐트러진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빗장도 안쪽에서 굳건히 걸려 있었다. 벽난로의 재는 깨끗했고, 굴뚝을 통해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세인은 다시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고리 옆에 박혀 있던 그 황동 열쇠. 그는 손을 뻗어 열쇠를 만져보았다.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열쇠는 안쪽으로 깊숙이 박혀 있었다.
“엘리아, 이 주변에 돋보기가 있으면 가져와라.”
엘리아는 서둘러 서재 한쪽에 놓인 독서용 돋보기를 찾아왔다. 세인은 돋보기를 들고 열쇠와 열쇠 구멍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세인님, 뭐가 이상한가요?” 엘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인은 대답 대신 한참을 묵묵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열쇠 구멍의 안쪽 가장자리에 멈춰 있었다. 아주 미세한, 인간의 눈으로는 거의 식별할 수 없는 흠집. 긁힌 자국이라기보다는 무언가 얇고 단단한 것이 통과하면서 생긴 마찰의 흔적 같았다. 그리고 열쇠의 방향. 열쇠는 똑바로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어떤 도구를 통해 억지로 돌린 것처럼.
세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뇌리에서는 수많은 가설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있었다.
“휴이 집사님, 이 방의 열쇠는 이것뿐입니까? 그리고 이 열쇠의 모양은 원래 이랬습니까?”
“네, 이 서재는 늘 이 열쇠 하나로 잠가왔습니다. 보시는 대로 특별히 개조된 부분은 없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 하지만 모양은 늘 저랬습니다.”
세인은 다시 한번 열쇠 구멍과 열쇠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 경과 클라우디스 부인을 부르도록.”
경비대장이 나가고, 잠시 후 알렉스와 클라우디스 부인이 서재로 들어섰다. 알렉스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클라우디스 부인은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감정의 동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세인 탐정님, 이 끔찍한 일은 도대체… 누가 감히 이런 짓을!” 알렉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 세인이 냉정하게 대꾸했다. “알렉스 경, 엘란 경과 최근에 어떤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특별한 대화는… 없었습니다. 그저 늘 그랬듯 영지 업무에 대해 논했을 뿐입니다.” 알렉스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그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새 유언장에 대해 알고 있었나?” 세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알렉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 유언장이라니요? 제가요?” 그는 시신 옆에 놓인 양피지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말도 안 됩니다! 저는 어제 저녁 내내 제 방에 있었고, 잠시 산책을 나간 것 외에는 저택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클라우디스 부인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차분함은 오히려 기이할 정도였다.
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문 옆의 열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안에서 잠긴 문, 외부 침입의 흔적 없음. 그리고 살해된 엘란 경. 자살이라고 보기엔 칼이 너무 깊숙이 박혀있고, 본인의 손으로 돌려 잠근 열쇠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세인에게로 집중됐다. 엘리아는 숨조차 쉬지 않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범인은 이 열쇠를 이용해 문을 잠갔습니다. 하지만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말입니다.”
모두가 경악한 얼굴로 세인을 바라보았다. 론 경비대장이 말했다. “하지만 세인 탐정님, 열쇠는 안쪽에 박혀 있었습니다! 어떻게 밖에서 잠글 수 있단 말입니까?”
세인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간단한 트릭입니다. 이 열쇠는 보시다시피 비교적 단순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열쇠 구멍 역시 오래되고 닳아 있었습니다. 범인은 살해를 저지른 후,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얇고, 길고,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도구를 이용해 열쇠 구멍을 통해 안쪽의 열쇠 머리를 조작해 문을 잠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도구를 조심스럽게 빼내어 흔적을 지운 것이지요.”
엘리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맙소사! 그런 방법이!”
“하지만 그런 도구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알렉스가 반문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전보다는 약간의 냉기를 띠고 있었다. “무슨 마법의 도구라도 쓴 겁니까?”
세인은 알렉스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법이 아닙니다. 이 저택에는 엘란 경이 수집한 기묘한 도구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서재 한쪽에는 정교한 기계 장치와 복잡한 퍼즐들이 가득했지요.” 세인은 고개를 돌려 서재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엘란 경의 수집품들을 가리켰다. 그 중에는 온갖 형태의 톱니바퀴와 쇠붙이, 그리고 복잡한 장신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에는 분명, 아주 섬세한 작업을 위한 기다란 금속 막대나 유연한 철사, 혹은 얇고 단단한 판과 같은 도구가 있었을 겁니다. 아니면, 범인이 직접 그런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을 수도 있겠지요. 이 열쇠 구멍 안쪽의 미세한 긁힌 자국과, 열쇠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꽂혀 있는 각도가 그 증거입니다.”
세인의 설명에 론 경비대장과 집사 휴이는 납득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렉스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다. 클라우디스 부인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럼 범인은 어떻게 그 트릭을 알고 있었고, 그런 도구를 미리 준비했을까요?” 엘리아가 물었다.
세인은 다시 알렉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 트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서재의 열쇠 구멍과 열쇠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저택, 특히 엘란 경의 취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어야 가능하겠지요.”
“저는… 저는 결백합니다! 저는 어젯밤 제 방에 있었다니까요!” 알렉스가 소리쳤다.
“알렉스 경.” 세인은 그의 말을 끊었다. “엘란 경의 유언장에는 자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자네는 어제 저녁 내내 방에 있었지만, ‘잠시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그 산책 시간에 엘란 경의 서재를 방문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인은 서재 한쪽에 놓인,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은 기계 퍼즐 상자를 가리켰다. 그것은 엘란 경이 아끼던 장치 중 하나였다. “저 퍼즐 상자의 밑부분을 보라. 퍼즐을 풀기 위해 사용되던 가늘고 긴 금속 도구가 보이지 않는군. 그 도구는 퍼즐의 틈새를 통해 복잡한 내부 기어를 조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우 얇고, 길고, 튼튼하며 유연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지. 그 도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렉스 경은 알고 있나?”
알렉스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굳어 있었다. 그의 시선은 퍼즐 상자에서 서재 문으로, 그리고 다시 세인에게로 향했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클라우디스 부인은 그제야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알렉스… 제발.”
세인은 냉정하게 선언했다. “범인은 알렉스 경이다. 엘란 경의 새로운 유언장을 보고 분노하여 살해를 저질렀고, 서재에 드나들며 익숙했던 열쇠와 열쇠 구멍의 특성을 이용해 밀실 트릭을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엘란 경의 수집품 중 하나인 퍼즐 도구를 이용해 열쇠를 조작했겠지. 그 도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알렉스 경?”
알렉스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과 공포, 그리고 모든 것이 드러났다는 허무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엘란 경은… 저에게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는데… 그 노인이 제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어요!”
그의 처절한 외침이 눅눅한 서재 안에 메아리쳤다. 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다. 그리고 그 뒤에는 늘 그랬듯,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다. 엘리아는 세인의 옆에서 그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이 세계의 어떤 미스터리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느꼈다. 그 지성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얼마나 깊은지.
세인은 붉은 핏자국이 선명한 서재를 뒤로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또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미스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이세계로 넘어온 천재 탐정의 운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