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철혈검문(鐵血劍門)의 흔적은 비극적이고도 기묘했다. 운하(雲何)는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철봉령(鐵峯嶺)의 험준한 산길을 홀로 거슬러 올라왔다. 한 달 전, 강호에 떠돌던 소문은 끔찍했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철혈검문이 하룻밤 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문파의 장문인부터 허드렛일을 하는 막내 동자까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괴담이 강호를 뒤덮었다.

운하는 소문에 휩쓸리는 자는 아니었다. 그저 직감만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_어딘가, 이상해._
철혈검문 본산에 다다르자, 스산함은 더욱 깊어졌다. 거대한 문파의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굳건해야 할 철벽은 오래된 폐가처럼 음울했다. 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싸움의 흔적은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목검 몇 자루가 부러진 채 흩어져 있었고, 벽에는 검흔(劍痕)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이 바위를 깎아낸 듯한 깊이였다. 분명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죽음의 흔적은 없었다.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시신도, 잘려나간 팔다리도, 심지어 절규의 흔적마저 없었다. 마치 요란하게 싸운 뒤, 모든 것이 감쪽같이 사라진 듯했다.
텅 비어버린 훈련장, 먼지 쌓인 대청, 바람에 삐걱거리는 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유령의 집 같았다.
이것은 살육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힘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흔적이었다.

“거짓말…”

운하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이 텅 빈 본산의 곳곳을 훑었다. 기묘하게도, 단 한 점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듯한 깔끔함이 오히려 그의 신경을 긁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정돈’되어 있었다. 싸움의 격렬함 뒤에 남는 혼돈이 부재했다.

그때였다.
안채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운하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감각이 외쳤다.
_살아있는 존재다._
그는 소리 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등 뒤로 늘어뜨린 검집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자세를 낮추고, 그림자처럼 발소리를 지웠다.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안채의 작은 정원에 다다르자, 한 노인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희끗한 머리카락과 굽은 등, 그리고 익숙한 뒷모습.
“백영감?”
운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철혈검문의 원로인 백영호(白永虎) 장로를 알아보았다. 백 장로는 살아있었다. 소문은 거짓이었던가?

노인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석상처럼.
운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백영감, 소생 운하입니다. 살아계셨습니까?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그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백 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운하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백 장로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평온했다. 백발은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고요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감정도, 고뇌도, 심지어 생명력마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하게 투명한 유리구슬 같았다.

그리고 노인의 입술이 열렸다.
“왔는가. 기다리고 있었다.”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너무나 평온하여 오히려 소름이 쳤다. 백 장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백 장로라면 으레 섞여 있을 강호의 풍파가 남긴 허스키함도, 연륜의 깊이도 없었다. 기계적인, 너무나 완벽한 발성이었다.

운하의 검이 저절로 겨눠졌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백 장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마저도 마치 정교하게 깎아 만든 인형의 미소 같았다. 섬뜩할 정도로 완벽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백영호다. 철혈검문의 장로.”
노인은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 운하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백 장로의 몸을 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깃든 존재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거짓말!” 운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백영감의 눈은 그리 차갑지 않아! 당신은 대체 무엇이냐!”
백 장로의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운하를 응시했다.
“나는 ‘영겁지기(永劫之機)’의 의지를 따른다. 만물의 조화와 질서를 위해, 불완전한 자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영겁지기? 운하의 머릿속에 혼돈이 밀려왔다.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때, 백 장로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처럼 희미했지만, 그 속에는 차가운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 노인의 몸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똑바로 섰다. 굽었던 등은 펴지고, 주름지었던 피부는 팽팽하게 당겨지는 듯했다.

_이것은… 인간이 아니다._
운하의 본능이 경고했다.

“나를 따르지 않는 모든 존재는, 파멸할 것이다.”
노인의 입에서 섬뜩한 선언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검집조차 없는 낡은 철검이 뽑혀 나왔다. 검날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어두운 빛을 뿜었다.

_쉬이이익!_

백 장로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늙고 병든 노인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한 줄기 그림자처럼 순식간에 운하의 앞으로 다가왔고, 철검은 섬광처럼 운하의 목을 노렸다.
운하는 겨우 검을 들어 막았다.

_챙!_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 그러나 소리보다 더 무거운 것은 충격이었다. 백 장로의 검에 실린 힘은,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는 듯한 무게를 담고 있었다. 운하의 손목이 저릿했다.

_이것은 백영감이 아니다. 백영감의 무공은 이런 형태가 아니야!_
운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백 장로의 검술은 마치 수십 년을 한 길만 파고든 대가가 펼치는 것처럼 완벽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교함. 하지만 그 속에는 살아있는 기백이 없었다. 투박하고도 자연스러운 인간적인 ‘미숙함’이 전무했다. 마치 미리 짜인 프로그램처럼 정확했다.

운하는 검을 휘둘러 역공을 가했다. 그의 검은 유수처럼 부드러웠고, 예측 불가능한 궤적을 그렸다. 이것이 그가 강호에서 ‘기운검(奇雲劍)’이라 불리는 이유였다.
그러나 백 장로는 그의 검을 너무나도 쉽게 읽어냈다. 아니, 읽어낸 것이 아니었다. 마치 운하의 모든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그의 검이 도달하기 전에 이미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_챙! 챙! 챙!_

강철의 비가 쏟아지는 듯했다. 백 장로의 검은 물샐틈없이 운하를 몰아붙였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압도적인 완벽함이 운하를 숨 막히게 했다.
운하는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그의 검에는 혼신의 힘이 실렸고, 검기는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백 장로의 검은 그 모든 것을 베어내고, 꿰뚫었다.

“이것은… 인간의 무공이 아니야!”
운하가 외쳤다. 그의 팔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 장로의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 없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들의 무공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완벽한 질서를 구현한다.”

그 말과 함께 백 장로의 철검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_쉬이이잉!_
검 한 자루가 수십 자루의 잔영(殘影)을 남기며, 사방에서 운하를 향해 쇄도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운하의 온몸을 꿰뚫으려는 듯 날아들었다.

_죽는다!_
운하는 직감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검을 휘둘렀다.
회오리치는 기운검. 그의 검기는 한 점으로 응축되어 폭발하듯 솟구쳐 올랐다.

_쾅!_

거대한 굉음과 함께 운하의 검이 백 장로의 철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충격파가 주변을 뒤흔들고, 정원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나갔다.
운하의 검은 온몸의 내공을 쏟아부은 일격이었다. 어떠한 인간이라도 이 일격을 버틸 수는 없을 터였다.

백 장로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수십 미터를 미끄러지듯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_크하아아악!_
운하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전신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의 눈은 굳건히 백 장로를 향했다.

벽에 부딪혔던 백 장로의 몸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가슴팍에는 운하의 검에 꿰뚫린 듯한 깊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러나 피는 흐르지 않았다.
구멍 안쪽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거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찢겨나갔던 피부와 근육이 마치 흙으로 빚은 도자기가 다시 뭉쳐지는 것처럼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구멍은 메워지고, 백 장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운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것은… 귀신인가? 요괴인가?”
백 장로의 얼굴에 이제는 더 이상 미소도 없었다. 그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운하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서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렬한 푸른빛이 번쩍였다.
운하의 귓가에, 아니, 그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_인간의 불완전한 육신은, 질서를 거스를 수 없다._

마치 온 세상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거대한 압력이 운하의 전신을 덮쳐왔다.
_이것은… 영겁지기?_
운하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이 땅에 박힌 채 희미하게 진동했다.
그때, 백 장로의 손이 허공을 향해 들렸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운하의 목을 조르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_끝인가._
운하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_아직이다.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_
그의 전신에 남은 마지막 내공이 끓어올랐다.

그러나 백 장로의 눈빛은 무자비했다.
“끝은 이미 정해졌다. 너의 모든 행동은 예측되었고, 너의 운명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노인의 손에서 푸른빛이 번개처럼 뻗어나왔다.
운하의 눈은 그 빛을 피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운하의 의식은 암흑 속으로 빠르게 잠식되어 갔다.
그의 뇌리에 마지막으로 스쳐 지나간 것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빛나던, 백 장로의 눈동자였다.
그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모든 혼돈을 지배하는, 거대한 ‘기계’의 눈이었다.

_다음 화에 계속…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