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첫 번째 챕터: 심연 속의 반짝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만남

“지겹지도 않나, 이선 선장?”

강민준 기관장이 식혜 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능글맞게 웃으며 브릿지 문을 열었다. 그의 말대로, 나는 또다시 함선 전방의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칠흑 같은 우주를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새싹호가 우주를 유영한 지도 벌써 3년째. 희망과 기대, 그리고 알 수 없는 우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근거림으로 시작했던 항해는 이제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변모해 있었다.

“강 기관장님, 브릿지는 기관실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주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지금 식혜를 마실 기분은 아니군요.”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건조하게 대꾸했다. 품위라니. 우리 함선에 품위 따위가 남아있기는 한가? 세 명의 승무원이 이 넓은 우주선을 운영하며 이제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아니 어쩌면 더 지겨운 관계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흠, 선장님은 역시 커피파이시죠? 제가 특별히 로스팅한 원두로—”

“됐습니다. 할 일이나 하시죠. 저희가 놀러 나온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내 말에 민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웠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능숙한 전문가의 모습이 떠올랐고, 한 손에 들고 있던 식혜 캔을 옆 콘솔 위에 내려놓더니 다른 한 손으로 내게 뜨거운 머그컵을 내밀었다. 짙은 커피 향이 브릿지를 채웠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심우주 탐사 임무는 저도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죠. 제가 특별히 내린 겁니다.”

컵을 받아들자 따뜻한 온기가 손에 전해졌다. 그의 말대로 민준은 기관장이자 훌륭한 바리스타였다. 새싹호에서 그나마 낙이라면 민준이 내려주는 이 커피 한 잔과, 지아가 몰래 숨겨온 라면이었다.

“고마워요.”

짧게 답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 뒤에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 얼어붙었던 마음에 작은 위안을 주었다. 막 그때였다. 브릿지 문이 요란하게 ‘쾅’ 하고 열렸다.

“선장님! 강 기관장님! 이건… 이건 미쳤어요!”

박지아 과학 책임자가 숨을 헐떡이며 브릿지로 뛰어들어왔다. 그녀의 안경은 살짝 비뚤어져 있었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평소보다 더 부스스했다. 항상 침착하고 논리적이던 지아가 이렇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박 과학 책임자, 무슨 일입니까? 혹시 비상 상황이라도—”

“아뇨, 비상… 아니 비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정말 엄청나요! 상상 그 이상이에요!”

지아는 거의 울먹이는 수준이었다. 스크린이 가득한 중앙 콘솔 앞으로 달려가더니 다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민준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고 지아를 바라보았고, 나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지아 씨, 진정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봐요.”

내 말에 지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스크린에 그래프 몇 개를 띄웠다.

“여기 보세요! 새싹호의 탐지 범위 밖에서, 아니, 우리 인류가 탐사한 모든 우주 영역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에너지 신호가 잡혔어요!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아주 규칙적으로요!”

스크린에는 낯선 패턴의 에너지 파형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어떤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는, 너무나도 인공적인 패턴이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민준의 표정에도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한 듯 보였다.

“모르겠어요. 중력 렌즈 효과도 아니고, 블랙홀 근처에서 발생하는 시공간 왜곡도 아니에요. 말 그대로… 그냥 ‘존재’하고 있어요. 엄청나게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선명하게요. 마치… 누군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아요!”

지아의 눈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스크린의 데이터를 꼼꼼히 확인했다. 모든 수치가 비정상적이었다.

“항로 변경.”

내가 짧게 명령하자 지아와 민준은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선장님? 지금 이 에너지원이 어디서 오는지도 불확실하고, 정체도 모르는데 너무 성급한 것 아닙니까?” 민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성급하다뇨? 이게 대체 어떤 발견일지 상상이나 됩니까? 이건 우리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요!” 지아가 반박했다.

“맞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수집했던 모든 데이터는 ‘익숙한 것’들이었죠. 지겹도록. 하지만 이건… 새로운 겁니다. 박 과학 책임자, 예상 접근 시간은?”

내 물음에 지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현 최고 속도로 3주 2일, 선장님!”

“좋아. 강 기관장, 최고 속도 유지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관 시스템 점검해 주세요. 박 과학 책임자, 추가 데이터 분석해서 보고해요.”

“알겠습니다!” “예, 선장님!”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텅 비었던 브릿지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함 속의 달콤함이, 이제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감으로 바뀌는 듯했다.

***

3주 2일 후, 새싹호는 정체불명의 에너지원 앞에 도착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진 이미지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게… 뭐야?”

민준의 목소리도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장난감을 본 듯 순수하게 변해 있었다.

우주선 앞에는 거대한 구체가 떠 있었다. 지름만 해도 새싹호보다 훨씬 커 보이는 크기였다. 금속처럼 보였지만, 그 표면은 어떤 금속과도 달랐다. 햇빛을 반사할 때마다 에메랄드빛에서 사파이어빛, 그리고 다시 자수정빛으로 바뀌는 영롱한 색채를 띠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보석 같았다. 그리고 그 구체는 아주 미약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지아 씨, 이건… 구조물이에요?”

“네, 선장님. 확실해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표면의 균일한 질감, 완벽한 구형… 하지만 어떤 문명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요.”

지아는 분석 모드를 켜고 구체의 세부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모든 탐지기는 먹통이었다.

“이상하네요. 어떤 전파도, 자기장도, 중력장 이상도 탐지되지 않아요. 그냥… 아무것도 없어요. 이 구체 자체를 제외하고는요.”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빛나고 진동하죠?” 민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미스터리입니다, 강 기관장님! 이건 우리가 아는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나는 구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자아내는 존재. 문득 구체에서 미약하게 퍼져 나오던 진동이 내 몸 안에서 울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뛰는 것 같았다.

“선장님, 대기 성분 검사 완료했습니다! 산소 농도가 지구와 거의 비슷해요! 놀랍게도 생명체가 호흡 가능한 대기입니다!” 지아가 외쳤다.

“뭐라고요? 저 구체가 자체적으로 대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겁니까?” 민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뇨, 구체 주변으로 아주 얇은 대기층이 형성되어 있어요. 마치… 누군가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처럼요.”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했다. 마치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느낌. 하지만 우리는 3년간 이 우주를 샅샅이 뒤졌다.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찾지 못했다.

“선장님, 저… 저기 뭔가 있어요!” 지아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구체의 표면, 영롱하게 빛나던 색채 사이로 희미하게 뭔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투명한 막이 걷히는 것처럼,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작은 문 같았다. 이내 그 문은 점점 확장되더니, 구체 안쪽으로 연결되는 터널처럼 변해갔다. 터널의 입구는 은은한 보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건… 초공간 도약 게이트인가?” 민준이 중얼거렸다.

“아뇨, 전혀 다른 방식이에요. 게이트는 아니지만… 마치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 역시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미지의 외계 문명, 그리고 그들이 남긴 알 수 없는 유물.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존재.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임무 규정에는 ‘미지의 외계 구조물 발견 시, 즉시 모선에 보고하고 추가 지시를 기다린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을 위해 3년간 우주를 떠돌았던 것이 아니었던가.

“지아 씨, 탐사정 준비해요.”

“선장님!” 민준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위험합니다! 저 안이 어떤 곳인지,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저게 우리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있었다면 진작 그랬겠죠, 강 기관장님. 3년간 우주를 헤맨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의 시선은 구체에 열린 보랏빛 터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터널 안쪽에서는 마치 환영이라도 하듯, 희미한 빛의 파동이 일렁였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민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나는 그를 돌아봤다. 그의 눈은 진지함과 결의로 가득했다. 언제나처럼 능글맞던 그의 얼굴에는, 이 순간만큼은 순수한 모험심만이 깃들어 있었다.

“무슨 소리예요, 강 기관장님. 탐사정 조작은 제가 더 능숙하고, 책임은 제가—”

“선장님은 새싹호의 사령관입니다. 함선을 비울 수는 없어요. 그리고… 제가 선장님보다 좀 더 튼튼하잖아요? 혹시 뭔가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가 먼저 몸으로 부딪혀 보는 게 맞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늘 가볍게만 보였던 민준이, 이렇게 진지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그의 눈빛에서 흔들림 없는 결의가 느껴졌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혼자는 안 됩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내 말에 민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이내 다시 능글맞은 표정으로 돌아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역시 선장님은 저를 믿지 못하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선장님이 동행하시는 대신, 제가 먼저 들어가서 안전 확인을 마친 후에 들어오시는 겁니다. 어때요?”

“좋습니다. 지아 씨, 탐사정 발진 준비.”

“네, 선장님!”

우리는 탐사정을 타고 미지의 구체 안으로 향했다. 보랏빛 터널 안으로 진입하자, 마치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터널을 통과한 순간,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하게 되었다.

구체 안은 텅 비어 있지 않았다. 거대한 돔형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주 작은, 앙증맞은 꽃 한 송이가 홀로 피어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구체와, 그 한가운데에 놓인 작은 꽃 한 송이.

“이게… 전부라고?” 민준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꽃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보랏빛 꽃잎은 투명하게 빛났고, 그 중심에서는 미약하지만 따뜻한 황금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이 거대한 구체가 존재했던 이유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작은 꽃잎 하나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마치 우리를 향해 손짓하는 것처럼 살랑거렸다. 동시에 꽃이 뿜어내던 황금빛이 급격하게 강해지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순식간에 탐사정 내부를 가득 채웠다.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선장님!” 민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금빛이 사라진 후, 우리는 탐사정 좌석에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뭔가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상한, 묘한 기분이었다.

“강 기관장님… 혹시… 좀 더 잘생겨진 것 같은 기분… 안 드세요?”

내 목소리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말을 내가 하다니! 게다가 이런 위급한 상황에! 민준의 얼굴은 멍해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이쿠, 선장님. 드디어 제 매력에 눈을 뜨신 겁니까? 후후, 역시 제 미모는 우주를 넘어선다는 말은 진실이었군요.”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얼굴을 응시했다. 나의 얼굴은 열이 올라 터질 듯이 뜨거워졌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때, 지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려왔다.

“선장님! 강 기관장님! 방금 탐사정 내부에서 미지의 에너지 파장이 감지됐어요! 생체 신호에 미세한 변화가… 특히 감정선을 자극하는 파동이…!”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봤다. 그도 나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꽃을 바라봤다.

작은 꽃잎은 여전히 살랑이고 있었다. 마치 ‘어서 와. 내가 재밌는 걸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탐사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로맨틱 코미디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