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온 경의 저택은 한밤중의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아니, 잠겨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명과 발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당혹감에 휩싸인 낮은 술렁임으로 가득했다. 기사단복을 입은 세르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택 중앙에 위치한 서재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철갑으로 둘러싸인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류진 님! 정말 어찌 된 일인지…!”
세르반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그의 시선이 문 옆에 기대선 그림자 같은 인물에게 향했다. 류진은 잿빛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고, 이세계에서는 다소 이질적인 차림새—흐르는 듯한 검은색 튜닉과 넉넉한 바지—를 하고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한밤의 푸른 안개처럼 차분했으며, 주변의 혼란과는 동떨어진 고요함을 풍겼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마치 연극을 관람하듯 서재 문을 훑어보고 있었다.
“차분히 말씀해보세요, 세르반. 상황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칼리온 경이 서재 안에서 살해당했고, 문은 안에서 걸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는 것. 창문은 모두 쇠창살로 막혀 있고.”
류진의 말에 세르반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네, 류진 님! 시종장이 매일 밤 직접 칼리온 경의 서재 문을 밖에서 잠그고 열쇠를 받아 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어젯밤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침에 문을 열러 갔더니… 경께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문은 안쪽에서 걸쇠로 걸려 있었다는군요. 열쇠는… 열쇠는 경의 시신 옆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세르반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주변의 다른 기사들과 하인들도 웅성거렸다.
“안에서 걸린 걸쇠라니요! 게다가 열쇠까지 안에 있다니, 대체 누가… 누가 경을 죽이고 밖으로 나갔단 말입니까? 귀신이라도 부른 것인지…!”
류진은 세르반의 혼잣말 같은 탄식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서재 문으로 다가갔다. 검게 칠해진 육중한 나무 문에는 닳고 닳은 놋쇠 걸쇠가 굳게 걸려 있었다. 문틈을 손가락으로 더듬어보고, 손잡이를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굳건했다.
“문은 강제로 부순 흔적도 없고, 틈새로 무언가를 밀어 넣은 자국도 없군요. 완벽한 밀실. 과연.”
류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을 발견한 아이처럼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류진 님… 웃음이 나오십니까? 칼리온 경이 돌아가셨고, 저희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요!”
세르반은 류진의 태도에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기에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다.
“사건 현장은 보존되어 있겠지?”
“네! 경비대장이 칼리온 경의 시신을 옮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류진 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사들에게 문을 열 것을 지시했다. 굳건히 걸려 있던 놋쇠 걸쇠가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풀리고, 육중한 문이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열렸다.
서재 안은 진한 피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푹신한 카펫 위에 칼리온 경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화려하게 세공된 단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주변의 책장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책들로 들어차 있었고, 창문들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틈새로 보이는 쇠창살은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시신 옆에 열쇠가 있다는 것이군요.”
류진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 벽, 그리고 육중한 책장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훑고 지나갔다. 기사들은 방의 한쪽에 모여 류진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불안감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교차했다.
“세르반, 칼리온 경은 어떤 분이셨지? 혹시 특이한 습관이라도 있었나?”
“음… 워낙 괴팍한 분으로 유명하셨습니다. 특히 밤에는 아무도 서재에 들이지 않으셨고, 본인이 직접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즐기셨다고 합니다. 아마… 본인의 은밀한 연구나 거래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은밀한 연구라… 흐음.”
류진은 손끝으로 책장 옆의 벽을 쓸어보았다. 희미하게 쌓인 먼지가 손가락에 묻어났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방 전체를 빠르게 훑었고, 이번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무언가에 멈췄다. 방 구석, 오래된 책장 아래쪽 바닥에 놓인 아주 작은 얼룩. 마치 기름 같기도 하고, 투명한 액체가 말라붙은 흔적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카락 한 올.
“경비대장은 이 방을 얼마나 오랫동안 건드리지 못하게 했지?”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전입니다, 류진 님. 발견된 즉시 아무도 안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흐음. 그렇다면 이 먼지도 그 이전에 쌓인 것이겠군.”
류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분한 안개에서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책장 아래의 바닥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희미한 긁힌 자국. 마치 아주 무거운 무언가가 오랫동안 끌려 다닌 듯한 흔적이었다. 그리고 긁힌 자국 옆, 나무 바닥의 미세한 틈새에 박힌 아주 작은 금속 조각.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류진은 품에서 작은 확대경을 꺼내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놋쇠… 걸쇠와 같은 재질이군요.”
“류진 님, 무엇이 보이십니까?” 세르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르반, 이 방의 모든 문과 창문이 완벽하게 봉쇄되어 외부로부터 침입도, 내부로부터 탈출도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네, 류진 님! 모든 기사들이 확인했습니다. 이 저택의 구조를 모르는 이라면 절대로 드나들 수 없습니다!”
류진은 미소 지었다.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이 저택의 구조를 아는 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리고… 칼리온 경이 가진 특별한 ‘취미’를 아는 자라면 더욱 쉬워질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신 옆 탁자 위에 놓인 열쇠를 집어 들었다. 평범한 놋쇠 열쇠였다.
“칼리온 경은 본인이 직접 문을 잠그는 것을 즐겼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 열쇠는 경의 손에 있었다는 뜻이군. 그리고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와 경을 살해한 후, 이 열쇠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류진의 말에 세르반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갔단 말입니까?”
“나간 것이 아니다, 세르반.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인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밀실은… 범인을 위한 밀실이 아니었지.”
류진은 다시 책장 아래 바닥에 난 긁힌 자국과 금속 조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손을 뻗어 책장의 가장 아랫부분, 바닥과 맞닿아 있는 패널을 눌렀다. 낡은 나무 패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밀실도 완벽하지 않아. 이 세계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숨겨진 건축술이나 고대의 지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인간의 손으로 만든 모든 것에는 틈이 있기 마련이지. 다만, 그 틈이 보이지 않을 뿐.”
류진은 아까 손가락에 묻었던 먼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는 책장 옆 벽을 다시 만져보았다. 묘한 감촉. 다른 벽과 달리 아주 미세하게 거친 부분. 그는 그 부분을 따라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세르반, 칼리온 경은 자신의 서재에 ‘비밀 통로’가 없다고 자랑하지 않았던가?”
“네? 그런 말씀을 하셨던가요?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였다. 그는 누구보다 보안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집착이 맹점을 만들었다.”
그는 방금 만졌던 벽의 거친 부분에 다시 손을 얹었다. 그의 눈빛이 한층 더 예리해졌다. 그리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류진은 책장 앞으로 다시 다가갔다. 그리고는 책장 아랫부분에 난 긁힌 자국과 금속 조각을 가리켰다.
“이건 단순한 흔적이 아니다. 범인이 이 방에 들어왔을 때 이미 칼리온 경은 밀실을 만들고 있었다. 아니, 밀실의 ‘환상’을 만들고 있었다. 범인은 그 환상을 깨고 들어와, 그리고… 그 환상을 통해 빠져나갔지.”
세르반은 류진의 말에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말인가? 환상을 통해 빠져나갔다니?
류진은 빙긋 웃으며 책장의 한 부분을 두드렸다. 나무판 속이 비어 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칼리온 경은 이 저택에서 가장 안전한 서재를 원했다. 모든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완벽한 요새를. 그래서 그는 이 방에 가장 오래된 방식의 보안을 적용했지. 하지만 모든 고대 기술에는…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
류진은 책장 앞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그리고는 아까 보았던 작은 긁힌 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건 단순히 끌린 자국이 아니다. 무언가 단단한 것으로 ‘들어 올린’ 흔적이지. 그리고 이 작은 놋쇠 조각은… 바로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의 손이 책장 아래의 나무 패널을 다시 한번, 이번에는 특정 부위를 강하게 눌렀다. ‘달칵’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굳건해 보였던 책장 아래의 패널이 미세하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어둡고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딱 한 사람이 겨우 몸을 웅크리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통로였다. 통로는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봐, 류진 님! 저게 대체…!”
세르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기사들도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밀실? 아니다. 이 방은 처음부터 밀실이 아니었다. 그저 밀실처럼 ‘보였을’ 뿐이다.” 류진은 냉소를 지으며 좁은 통로를 들여다보았다. “칼리온 경은 자신의 서재에 비밀 통로가 없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저택의 오랜 구조가 그 비밀 통로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범인은 그 사실을 알고 이용한 것이지.”
류진은 숨겨진 통로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냉기를 감지했다.
“범인은 서재 안으로 숨어들어 경을 살해한 후, 자신이 만든 완벽한 밀실 속에서 이 통로를 통해 유유히 빠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장 패널은… 밖에서 안으로 밀어 넣으면 다시 잠기는 구조로 되어 있겠지. 칼리온 경이 늘 안에서 문을 잠그는 ‘습관’을 이용한, 완벽하게 계산된 밀실 살인.”
류진은 고개를 들어 세르반을 바라보았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이제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춘 듯한 만족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 비밀 통로의 끝에 누가 있었는지 밝혀내는 것뿐이다, 세르반.”
저택의 깊은 어둠 속으로 뻗어 나가는 류진의 시선은, 마치 저 세계의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로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