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챕터 1: 혼돈의 오렌지 주스

김민준은 퇴근 후 텅 빈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복도, 퀴퀴한 신발장 냄새, 그리고 삐걱이는 현관문 소리까지 완벽하게 일상적인데도 불구하고,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착각이겠지. 피곤해서 예민한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늘 하루 종일 팀장에게 시달린 스트레스 때문일 거야.

“젠장, 피곤해 죽겠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중얼거린 민준은 거실로 향했다. 불을 켜자 익숙한 그의 보금자리가 환하게 드러났다. 깔끔하진 않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키며 살고 있는 그의 공간. 하지만 그 규칙이 오늘 깨졌다.

탁자 위에 놓여 있어야 할 리모컨이 소파 아래에 박혀 있었다. 민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리모컨을 주워 들었다. “내가 어제 여기다 뒀나? 아닐 텐데.” 기억력이 나빠졌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시원한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마시려 냉장고 문을 열었다. 큼지막한 주스 통을 꺼내 컵에 따르는데,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려있던 컵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의 주스는 정확히 그의 발등에 쏟아졌다.

“악! 뭐야?!”

차가운 주스의 습격에 깜짝 놀란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유리컵은 바닥에 부딪히며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마치 민준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 것처럼. 그러나 민준은 확신했다. 분명히 컵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허술했나? 어제 잠을 너무 설쳤나?”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며 깨끗한 컵을 꺼내 다시 주스를 따랐다. 이번엔 두 손으로 컵을 받쳐 들고 조심스럽게 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거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준은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어나갔다. 소파 위 쿠션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단정하게 놓여있던 것들이었다. 누가 들어왔나? 민준은 잠시 숨을 죽이고 집 안을 둘러봤다. 현관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도 닫혀 있었다. 아무도 없다.

“설마… 쥐새끼?”

그는 거실을 빙글빙글 돌며 두리번거렸다.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경악했다. 아까 분명히 깨끗하게 닦아 놓았던 주스 자국 위에, 마치 누군가 주먹으로 내리친 것처럼 새로운 주스 방울들이 여기저기 튀어 있었다. 그것도 이전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손에 들려있던 주스 컵을 싱크대에 놓고,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건 명백히 혼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가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친구들은 모두 바빠 보였고, 가족들은 지방에 살고 있었다.

그때였다. 툭- 툭- 툭-

싱크대 위에 놓여있던 수세미가 혼자서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수세미를 쥐고 싱크대를 닦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처럼. 툭- 툭- 그리고는 싱크대 모서리를 툭 치고는 떨어졌다.

민준은 숨을 헙 들이켰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야! 거기 누구 있어?!”

겁에 질린 목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었다. 소름 끼치는 정적.

그는 용기를 내어 주방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수세미는 바닥에 조용히 떨어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장난치지 마라… 나 이런 거 안 좋아한다…”

민준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바로 그때, 거실 쪽에서 갑자기 텔레비전이 켜졌다. 그것도 최고 음량으로! 으르렁거리는 다큐멘터리 속 맹수의 울음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뒤흔드는 듯했다.

“으악!”

민준은 비명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점프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이건 확실히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를 놀리고 있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찾아 전원을 끄려고 애썼다. 리모컨은 아까 소파 밑에서 주워놨던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있었지만, 손이 닿는 순간, 마치 누군가 채가는 것처럼 휙 날아가더니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플라스틱 케이스가 깨져 나갔다.

“이… 이보세요! 당신 대체 누구세요?! 왜 남의 집에서 이러는 거야?!”

민준은 이제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공포가 분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빌어먹을 무언가가 그의 평화로운 삶을 망치고 있었다.

그가 소리를 지르자, 텔레비전 볼륨이 다시 커졌다. 이번에는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서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음량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아파트 전체가 울리는 듯했다.

“아, 시끄러워! 조용히 해! 제발 좀!”

민준은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미칠 것 같았다. 누가 들어도 오해할 만한 소리였다. 옆집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의심할 법도 했다.

바로 그때, 딩동! 하고 현관 벨이 울렸다.

민준은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걸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엉금엉금 현관으로 기어갔다. 문밖에서는 여전히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통곡 소리가 맹렬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문을 열자, 민준의 눈앞에는 경계심 가득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긴 생머리에 캐주얼한 스웨터를 입은, 꽤나 인상적인 외모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마에는 보기 좋게 주름이 잡혀 있었고, 눈은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녀는 민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저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금 이 시간에 집에서 무슨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 역시 이 기이한 소리에 놀란 모양이었다.

민준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아, 저… 저기… 그게 아니라요…”

그의 말을 끊고, 그녀는 다시 텔레비전 소리가 들리는 거실 쪽을 흘끗 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아니면… 싸우는 거예요? 혹시… 옆집에 남자를 데리고 와서 싸우고 있는 건 아니죠?”

그녀의 눈빛이 마치 ‘경찰에 신고하기 직전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오해는 정말 순식간에 벌어지는 법이다.

“저, 저기요! 저는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여기 1004호에 살고 있어요!”

그녀는 민준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발짝 더 문 안쪽으로 들어서려고 했다. “저는 1005호 이수아예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밤마다 이렇게 소음이 심하면 곤란하죠.”

그녀는 민준의 뒤편, 거실을 향해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아무리 드라마가 재미있어도 그렇지, 새벽에 이렇게 볼륨을 올려놓으면 어떡해요? 게다가…”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울부짖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몸을 숙여 민준의 신발장 쪽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민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설마… 혼자 사시는 거 아니었나요?”

그녀의 질문에 민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등 뒤에서는 텔레비전 속 여주인공의 통곡 소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거실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와 경멸, 그리고 어딘가 모를 짜릿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수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는 듯,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민준은 이제 정말이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누가 믿어줄까?

그는 절박한 눈빛으로 수아를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제가 지금… 귀신이랑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수아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의 뒤편, 유리 깨진 소리가 난 거실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 순간, 텔레비전 화면이 지지직거리더니, 갑자기 화면이 꺼졌다. 그리고 동시에, 민준의 등 뒤에서 차가운 한기가 확 끼쳐왔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수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귀… 귀신이요?”

그리고 또 다시, 거실에서 누군가 큼지막한 접시를 내동댕이치는 듯한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민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 밤은 정말 길고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의 삶에 뜻밖의 파란을 가져올 새로운 이웃이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