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7화: 고요 속의 신호

강호는 폐허가 된 도시의 핏빛 노을 아래에서 숨을 죽였다. 잿빛 빌딩들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었지만, 그건 한때의 영광이었다. 지금은 부서진 콘크리트와 뒤틀린 철골들이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흉물일 뿐이었다. 먼지 섞인 바람이 으스스한 소리를 내며 폐허 사이를 휘감아 돌았다. 그의 손에 들린 탐사 단말기의 전력 게이지는 위태롭게 깜빡이고 있었다. 붉은색 경고등이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젠장, 이대로라면 한 시간도 못 버티겠군.”

강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보급 기지에서 출발한 지 나흘째. 물과 건조 식량은 간신히 버틸 만큼 남았지만, 탐사 단말기의 전력은 가장 큰 문제였다. 이 단말기가 없으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밤의 포식자들로부터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도를 확인할 수도, 주변의 위험을 감지할 수도 없었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도시 북동쪽 섹터에 위치한 옛 ‘정보 보관소’를 향하고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곳은 대격변 이전의 기술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물론,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콘크리트 잔해 더미를 조심스럽게 뛰어넘었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돌멩이 소리가 크게 들릴까 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 근방은 ‘쉬커’들의 주 서식지였다. 빛에 민감하고 소리에 극도로 반응하는 변종 생물들. 그들은 주로 어둠 속에서 움직이며, 먹잇감을 향해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려 동료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강호는 허리춤의 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무너진 건물들의 실루엣뿐이었다. 저 멀리 부서진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것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일까? 아니면… 다른 생존자들일까? 하지만 이곳에 다른 인간이 있을 리 없었다. 혹여 있다고 해도, 동족을 반가워하기보다는 경계부터 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그때였다.
미세한 진동이 발밑에서부터 전해졌다. 강호는 즉시 몸을 웅크려 폐기된 차량의 잔해 뒤로 숨었다. 진동은 점점 커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걸어오는 듯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폐허 사이를 울렸다. 쉬커는 아니었다. 쉬커는 저렇게 육중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체 뭐지?

강호는 허리춤에 매달린 ‘적외선 감지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희미한 붉은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앙상한 다리, 마치 낫처럼 휘어진 앞발, 그리고 중앙에 박힌 하나의 붉은 눈. ‘스토커’였다. 옛 군수 공장에서 만들어진 정찰 및 제거용 기계 병기. 대격변 이후에도 남아 인간들을 사냥하는 잔혹한 존재였다. 쉬커보다 훨씬 위험하고, 훨씬 강력했다.

“젠장, 이런 곳에 스토커가 있을 줄이야!”

강호의 심장이 발광하듯 뛰었다. 스토커는 느릿하게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했다. 붉은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어 잔해들을 훑었다. 강호가 숨어있는 차량의 잔해로 레이저가 다가왔다. 차가운 금속성 소음이 귀청을 때렸다.

쉬이이이잉… 틱! 틱!

강호는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의 눈앞을 스치는 레이저가 지나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스토커는 느릿하게 그 지점을 지나쳤다. 살았다. 잠시 안도하는 것도 잠시, 스토커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붉은 눈이 고정된 채, 차량 잔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삐빅-! 이상 감지.*
스토커의 기계음이 고요한 폐허에 울려 퍼졌다. 강호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걸렸다.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스토커의 낫 같은 앞발이 차량 잔해를 내리쳤다. 콰앙! 찌그러진 금속 조각들이 폭우처럼 쏟아졌다. 강호는 간신히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부서진 잔해 아래에서 기어나온 그의 눈에 스토커의 붉은 눈동자가 똑똑히 박혔다.

“어디 한 번 해보자!”

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었다. 스토커는 속도도 빨랐다.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이놈을 상대해야 했다. 그는 배낭에서 ‘EMP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딱 한 개 남은 비장의 카드였다. 스토커의 붉은 눈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강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강호는 거대한 기계 병기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굴렸다. 간발의 차로 낫이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최대한 거리를 좁혀 스토커의 몸 아래로 파고들었다. 스토커의 시야는 주로 전방에 있었다. 몸 아래는 사각 지대였다. 강호는 온몸의 힘을 실어 EMP 수류탄을 스토커의 다리 관절부에 던졌다.

콰앙!
귀청을 찢는 폭발음과 함께 강력한 전자기 펄스가 주변을 강타했다. 스토커의 육중한 몸체가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붉은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고, 기계음이 불안정하게 지지직거렸다. 잠시 동안, 스토커는 움직임을 멈추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강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스토커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완전히 파괴한 것은 아니었다. EMP는 잠시 동안 시스템을 마비시킬 뿐이었다. 그는 정보 보관소의 입구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거대한 강철 문이 육중하게 닫힌 입구였다. 주변에는 부서진 감시 카메라와 녹슨 경고 표지판이 나뒹굴었다.

강호는 문 옆의 지문 인식 패널을 찾아냈다. 여전히 전력이 공급되는 듯 희미한 불빛이 깜빡였다. 물론, 그의 지문으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부 전력 시스템이 살아있다면, ‘정보 보관소’ 내부에는 분명 전력 공급 장치나 예비 셀이 있을 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패널을 살펴보았다. 단말기 연결 포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라면….”

그는 자신의 탐사 단말기를 꺼내 포트에 연결했다. 삐빅- 단말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연결을 확인했다. 곧이어 단말기 화면에 익숙한 인터페이스가 나타났다. 암호화된 데이터를 해독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강호는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다. 스토커는 여전히 멈춰 있었지만, 붉은 눈동자의 불꽃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이 보였다. 시간은 없었다.

단말기 화면에는 복잡한 해독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프로그래밍 언어와 데이터 스트림이 미친 듯이 흘러갔다. 10%, 20%… 숫자가 올라갈수록 강호의 심장은 더욱 격렬하게 뛰었다. 그때, 단말기가 갑자기 삐비빅! 하는 경고음을 울렸다. 화면에 알 수 없는 데이터가 플래시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순한 출입문 해킹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정보가 감지된 것이다.

‘외부 시스템 침입 감지. 알 수 없는 데이터 패킷 수신 중.’
‘수신원: [알 수 없음]’
‘내용: [암호화됨]’

강호는 혼란에 빠졌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누가 이 옛 데이터 보관소 시스템에 접근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신과 동시에? 그리고 ‘알 수 없음’이라니. 그 순간, 화면 하단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딩동.*

‘새로운 메시지 수신.’
강호는 망설였다. 스토커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는… 그가 잊고 있던,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떤 가능성을 상기시켰다.
그는 서둘러 메시지를 열었다.

화면 가득 알 수 없는 기호와 데이터가 빠르게 흘러가다, 이내 하나의 문장으로 정렬되었다.

***

\[…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쪽 ‘시리우스’ 관측소로 오십시오. 희망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 강호의 뒤에서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스토커의 붉은 눈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거대한 몸체가 그의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철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강호의 손에 들린 단말기는 여전히 해독 중이었다. 그리고 메시지의 마지막 단어는…

**남아 있습니다.**

그는 과연 희망을 택할 수 있을까? 혹은 이 문 앞에서 스토커의 낫에 스러질까? 그의 눈은 메시지와 다가오는 스토커를 번갈아 응시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