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메아리
고요한 항해자호, 아니, 이제는 ‘별빛 탐사선 아레스 호’라고 불러야 했다. 선체 전체를 감싸는 은빛 장갑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우주 방사선을 막아내고 있었고, 두텁게 강화된 전면 유리창 너머로는 무수한 별들이 영원의 침묵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강지훈 함장은 함교 중앙의 조종석에 앉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째 심우주 탐사를 해왔지만, 이런 지루함은 여전했다. 드넓은 우주에서 행성 하나, 성운 하나를 지나치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 일은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물론 그 끝에 새로운 발견의 짜릿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아주 특별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
“함장님, 순항 고도 유지 중입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은 없습니다.”
부함장 최민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짙은 갈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레스 호의 핵심 임무는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 행성을 찾아 정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인류의 영토를 확장할 만한 자원 행성이라도 발견하면 금상첨화였다.
“수고 많네, 최 부함장.” 강지훈은 짧게 대답했다. “식사 시간은 됐나?”
“네, 곧 교대입니다. 박선우 일등 항해사가 오면 쉬셔도 됩니다.”
그때였다. 함교 한쪽에서 늘 과도한 열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 서예나 과학 담당관의 자리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어? 이게 뭐지?” 서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함장님, 잠시만요. 비정상적인 중력파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지속적입니다.”
“중력파 신호? 근처에 블랙홀이라도 있나?” 최민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 너무 멀어서 그럴 리 없습니다. 게다가 패턴이… 너무 규칙적입니다.” 서예나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동시에 미묘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방출하는 신호 같아요.”
강지훈은 몸을 일으켜 서예나의 자리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옅은 녹색 파형이 일정한 간격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는 심우주에서 수많은 자연 현상을 목격했지만, 이런 식의 ‘규칙적인’ 중력파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위치는? 우리 항로에 영향을 미 줄 정도인가?”
“아뇨, 현재 항로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약 5광년 떨어진 곳인데… 이 정도 거리에서 잡힐 신호가 아니에요. 뭔가 증폭된 것 같습니다.” 서예나는 손가락으로 가상 키보드를 빠르게 움직이며 추가 데이터를 요청했다. “에너지 수준도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인공적인 발생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인공적인 발생원. 그것은 곧 미지의 존재를 의미했다. 인류가 심우주에 발을 내디딘 이래, 수많은 탐사선이 발사되었지만, 지적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분석해봐, 서 박사. 오작동일 가능성은 없나?” 강지훈은 신중하게 말했다. 희망적인 추측은 언제나 허무하게 깨지기 마련이었다.
“아닙니다, 함장님. 모든 필터를 거쳤습니다. 오작동이라면 이런 식으로 지속될 수 없어요. 파형의 형태도 일반적인 천체 현상과는 다릅니다. 이… 이 정도라면, 거대한 구조물에서 방출되는 신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물. 그 단어가 강지훈의 뇌리를 스치자, 잊었던 과거의 보고서들이 떠올랐다. 수백 년 전, 태양계 외곽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암석 구덩이, ‘심연의 눈물’이라 불렸던 그것은 인공물이라는 의심만 남긴 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5광년 너머에서 아레스 호의 센서에 잡힐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것이란 말인가.
“함장님, 선우 씨 도착했습니다.” 박선우 일등 항해사가 함교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아레스 호의 모든 기계를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는, 명실상부한 기계 전문가였다. 그의 뒤에는 작은 로봇 팔이 달린 이동식 공구함이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선우 씨, 마침 잘 왔군.” 강지훈은 서예나의 화면을 가리켰다. “이 신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선우는 화면을 훑어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음…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데요. 우리 탐사선 엔진에서 나오는 출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정적이고 강력합니다. 마치 항성 엔진의 노이즈를 걸러낸 것처럼 깨끗해요.”
“만약 이게 인공물이라면, 어떤 종류의 물체에서 나올 수 있을까?” 최민준이 물었다.
박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혀를 찼다. “글쎄요. 적어도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아는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런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력원이라면… 행성급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함교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행성급 인공물. 그것은 인류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개념이었다.
강지훈은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와 심사숙고에 잠겼다. 아레스 호의 임무는 탐사였다. 미지의 것을 찾아 나서는 것.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미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항로를 이탈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 가치가 없을 리 없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었다.
“서 박사, 목표까지 최단 항로를 계산해. 예상 소요 시간은?”
서예나의 눈이 빛났다. “네, 함장님! 즉시 계산하겠습니다. 중력파 신호는 아직 유효합니다.”
“최 부함장, 항로 이탈에 따른 연료 소모량과 비상 대비책을 점검해. 통신은 계속 본부에 보내지만, 회신이 오기 전까지는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최민준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선우 씨,” 강지훈은 박선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만일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직접 탐사를 해야 한다면, 어떤 장비가 필요할 것 같나?”
박선우는 자신의 로봇 팔 공구함을 한 번 쓰다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장 강력한 보호막과 무장을 갖춘 탐사 유닛이 필요할 겁니다, 함장님. 대기권 돌입은 물론, 심각한 중력장이나 알 수 없는 에너지장에 대비할 수 있는… **가디언 유닛**을 출격 준비시켜야 할 겁니다.”
가디언 유닛. 아레스 호에 탑재된 대형 전투/탐사 메카닉이었다. 인류가 조우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개발된 병기이자 탐사 도구. 그것을 꺼낼 상황이 올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강지훈은 침묵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교 모니터에는 가디언 유닛의 거대한 실루엣이 떠올랐다. 마치 심연의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레스 호는 새로운 항로로 기수를 돌렸다. 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에서, 조그만 탐사선 한 척이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중력파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레스 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장을 맞이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