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붉은 모래바람이 폐허가 된 도시의 뼈대를 할퀴었다. 무너진 마천루의 잔해가 태양 없는 하늘 아래 검은 실루엣으로 늘어서 있었다. 강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갈라진 입술을 씹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굽 소리가 심장을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젠장… 끝까지 쫓아오는군.”
곁을 지키던 소은이 비틀거렸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는 고통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도망친 탓에 그녀의 영력은 거의 바닥나 있었다. 강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맥이 끊어지고 영기가 메마른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한 번 고갈된 영력을 회복하는 것은 산맥을 통째로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오라버니… 더는 못 가겠어요.”
소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의 무릎이 꺾이는 순간, 강휘는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챘다.
“정신 차려, 소은! 여기서 멈추면 죽어! 저 놈은 우리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야!”
그는 다시금 앞을 향해 달렸다. 폐허가 된 고속도로 위, 부서진 차량들이 널브러진 사이를 미친 듯이 헤치고 나아갔다. 발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냥꾼의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쿠구궁! 쿠구궁!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거대한 그림자가 강휘의 시야를 잠식했다. 철각수. 한때 영산의 자락에서 영초를 뜯어먹던 순한 초식 동물이었으나, 영맥이 뒤틀린 재앙 이후 흉포한 육식마수로 변이된 존재. 그 덩치는 작은 집채만 했고, 온몸은 녹슨 강철 같은 갑피로 뒤덮여 있었다. 특히, 지면을 박차고 나서는 그 네 개의 다리는 이름 그대로 단단한 철과 같아, 어떤 바위도 한 번의 발길질로 부숴버릴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놈은 강휘 일행을 며칠째 끈질기게 추격해오고 있었다. 한 번 맛본 영인의 피맛에 완전히 미쳐버린 듯했다.
“쉬이이익—!”
코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스쳤다. 철각수가 거의 턱밑까지 다가온 것이다. 강휘는 순간적으로 몸을 옆으로 던졌다. 놈의 거대한 앞발이 강휘가 서 있던 자리를 으스러뜨렸다. 바스락거리는 금속 파편 소리가 모래바람과 뒤섞여 기괴하게 울렸다.
“젠장…!”
강휘는 몸을 일으키며 겨우 자세를 잡았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힘도 없었다. 소은이 겨우 몸을 일으켜 강휘의 옆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녹이 슬어 푸석해진 검날은 희미한 영력조차 품지 못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제가 시간을 벌게요… 도망치세요.”
소은의 목소리는 절박했지만, 눈빛만은 단호했다. 강휘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헛소리 마! 네 몸으로 저놈을 어떻게 막아?! 우린 같이 살아남거나, 같이 죽는 거야!”
강휘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오른손이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검은 영력이 담긴 보검이 아니었다. 한때는 명문 문파의 수련용 검이었으나, 이제는 그저 조금 더 단단한 쇠붙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휘는 기댈 곳 없는 이 세상에서 이 검 한 자루와 자신 안에 남아있는 미미한 영력으로 버텨왔다.
콰아앙!
철각수가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거대한 뿔이 강휘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겨눠졌다. 강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피할 수 없다. 피한다 해도 소은이 위험했다.
“개자식…!”
그는 남아있던 모든 영력을 끌어모았다. 식도에서부터 끌어올려진 영력이 손바닥에 집중되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피어났다. 비록 한때는 하늘을 가르던 영력장이었으나, 지금은 겨우 작은 불꽃에 불과했다.
“섬광포(閃光砲)!”
강휘는 절규하며 영력을 뿜어냈다. 푸른 영력이 철각수의 뿔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 빛은 놈의 뿔에 닿기도 전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재앙 이전의 영력이었다면 놈의 뿔을 통째로 날려버렸겠지만, 지금의 영력으로는 작은 불꽃에도 미치지 못했다.
쉬이이익—!
빛은 놈의 뿔에 겨우 스치듯 닿았다. 쇠 긁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놈의 거대한 뿔에 작은 흠집 하나 남기지 못하고 영력은 허무하게 흩어졌다.
강휘의 몸에 힘이 풀렸다. 남아있던 마지막 영력마저 소진했다. 이제 그는 날카로운 뿔 앞에서 무방비 상태였다. 죽음을 예감한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오려 했다. 소은이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강휘를 밀쳐내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강휘의 뇌리를 스치는 번개 같은 깨달음. 그의 시선은 철각수의 뿔 대신, 놈의 두꺼운 다리 사이, 조금은 덜 단단해 보이는 관절 부위에 꽂혔다. 그리고 그 순간, 수련 당시 스승이 농담처럼 던졌던 말이 떠올랐다.
*‘영력이 부족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을 찾아라. 세상에 완벽한 강함은 없으니.’*
완벽한 강함… 놈의 철갑은 완벽에 가까워 보였지만, 분명 틈은 존재했다. 강휘는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몸은 이제 영력을 전혀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대신 오감이 극한으로 날카로워졌다. 놈의 숨소리, 발굽이 땅을 박차는 미세한 진동, 놈의 거대한 몸이 균형을 잡기 위해 움직이는 아주 작은 틈.
철각수의 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쇳내음이 폐부를 찔렀다. 강휘는 본능적으로 몸을 한쪽으로 틀며 낮게 파고들었다. 놈의 뿔이 그의 어깨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 순간적으로 스쳤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강휘의 몸은 이미 놈의 거대한 다리 사이를 파고들고 있었다. 한때 경공술의 달인이었던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영력이 없으면 육체로 돌파하라. 그의 모든 신경은 오직 놈의 관절만을 노리고 있었다.
콰아앙!
강휘는 놈의 다리 옆구리에 거의 달라붙은 채로 검을 휘둘렀다. 영력이 없기에 검은 그저 무거운 쇠붙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강휘는 자신의 모든 체중과 가속도를 실어 검을 휘둘렀다. 검은 놈의 철갑에 부딪혔고,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철갑은 긁혔을 뿐,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강휘는 이미 그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력은 없었지만, 그는 수많은 실전과 수련으로 익힌 검술의 ‘흐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죽어라, 이 빌어먹을 괴물아!”
그는 놈의 몸을 타고 올랐다. 철각수의 갑피는 미끄럽고 단단했지만, 강휘는 손톱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놈의 몸을 기어올랐다. 놈은 그를 떨어뜨리려 몸부림쳤지만, 강휘는 미친 듯이 놈의 움직임을 파고들었다.
마침내, 놈의 등줄기 위. 거대한 몸집 때문에 스스로를 공격하기 힘든 사각지대였다. 그곳에 약점은 없었지만, 강휘의 목표는 그곳이 아니었다.
놈이 몸을 뒤틀며 강휘를 벽에 처박으려 했다. 강휘는 그 순간 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낙하하는 순간, 그의 오른손에 쥔 검이 다시금 번개처럼 움직였다.
이번에는 놈의 목덜미 아래, 두꺼운 갑피 사이를 잇는 미세한 틈이었다. 영력이 끊긴 세상에서, 놈의 육체는 여전히 영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미약한 영력은 갑피의 틈새로 미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휘의 검은 그 틈을 향해 정확히 박혔다.
쩌저적!
마치 단단한 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날이 놈의 갑피를 갈랐다. 녹슨 검날이 철각수의 육체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피비린내가 공기 중에 진동했다.
“크어어어어!”
철각수가 미친 듯이 포효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었다. 놈의 몸이 격렬하게 뒤틀렸다. 강휘는 검을 놓지 않고 놈의 살점을 찢어가며 끌고 내려왔다. 그의 손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고, 어깨의 상처는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놈의 가장 깊은 영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욱!
검이 놈의 육체 깊숙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철각수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놈의 거대한 발톱이 허공을 휘저었고, 뿔은 폐허가 된 건물 잔해를 부숴버렸다. 모래바람과 흙먼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쉬이이… 욱… 크어어…”
철각수의 포효가 점차 사그라들었다. 놈의 거대한 몸이 천천히 균형을 잃고 기울어졌다. 마침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놈의 거대한 몸뚱이가 폐허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지면이 흔들렸고, 먼지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강휘는 무너진 철각수 위에서 겨우 몸을 지탱했다. 그의 온몸은 피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검은 손에서 떨어져 나갔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기 직전, 그는 흐릿한 시야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소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의 절규 섞인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강휘는 모든 힘을 잃었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살아남았다… 하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의 눈은 감겼다. 먼지가 걷히는 폐허 속에서, 철각수의 거대한 시체가 어둠을 드리웠다. 그리고 그 너머, 붉은 모래바람이 지평선 너머로 또 다른 그림자를 데려오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