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각된 도시의 그림자
숨 쉬는 것조차 아까운 공기였다. 코를 찌르는 먼지와 썩은 흙내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린 메마른 비린내가 텅 빈 폐부를 자극했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무심했고, 한때 거대한 빌딩 숲이었을 곳은 이제 뼈대만 앙상한 거인들의 무덤처럼 서 있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위로 끈질기게 기생하는 변이된 이끼만이 초록색이라는 색깔의 흔적을 겨우 내비칠 뿐이었다.
카인은 갈라진 땅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낡은 방진 마스크가 그의 입과 코를 가렸지만,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모래바람은 그의 눈을 끊임없이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한 손에는 녹슨 철근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창을 쥐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열 살 남짓한 소녀, 엘라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엘라는 카인만큼이나 낡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 커다란 눈망울은 흔들림 없이 전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비록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입술은 바싹 말라 갈라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제 아침 이후,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했으니까.
“카인 오빠, 저기… 뭔가 보여.”
엘라의 목소리가 마스크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멀리 떨어진 거대 구조물의 그림자 아래였다. 한때는 찬란했을 도시의 중심부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거대한 폐허였다. 빛바랜 간판 조각들이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뼈대만 남은 건물들 사이로 음산한 바람이 휘파람처럼 불어왔다.
“저긴… 위험해. 하지만 다른 곳은 더 이상 찾을 곳이 없어.” 카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그는 엘라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조심해야 해. 놈들이 득실거릴 거야.”
놈들이란, 이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남은 모든 위협을 의미했다. 굶주린 들짐승, 변이된 곤충 떼, 그리고 인간의 형체를 한 채 가장 잔인한 생존 방식을 택한 망자들까지.
그들이 향하는 곳은 ‘고요의 시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재앙이 닥치기 전, 이 도시에서 가장 활기 넘치던 상업 지구였다고 했다. 그 거대한 건물들 아래에는 분명, 놈들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비상 식량 창고 같은 것이 남아 있을 거라는 희미한 희망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폐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부서진 도로 위에는 녹슨 차량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기이하게 변형된 식물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칙칙한 회색 줄기에서 돋아난 검붉은 꽃들은 마치 피를 머금은 듯 섬뜩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저 꽃, 카인 오빠, 독이 있을까?” 엘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저건… 놈들이 배설한 찌꺼기 위에서 자라는 거야.” 카인은 무덤덤하게 답했다. “밟지 마. 놈들의 흔적이니까.”
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인의 뒤를 바싹 따랐다.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철부지 같은 질문 대신, 항상 냉정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법을 배웠다.
두 사람은 건물 잔해를 타고 넘고, 좁은 틈새를 기어 지나갔다. 얼마쯤 나아갔을까, 마침내 그들의 목적지가 눈앞에 드러났다. 한때는 거대했을 상점 건물의 지하 입구가 무너진 벽돌과 철근 틈새로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구 주위에는 찢겨진 천 조각들이 널려 있었고, 희미하게 오래된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이미 왔다 갔을 수도 있어.” 카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래도… 혹시 몰라.” 엘라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
그들의 대화는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절박함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은 희망. 그것이 그들이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다.
카인은 망설임 없이 창을 단단히 쥐고 지하 입구로 향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악취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내려가자, 천천히 지하의 거대한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에 뒤덮인 진열대들이 쓰러져 있었고, 산산조각 난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깔려 빛을 반사했다.
“조심해.” 카인이 속삭였다. 그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이곳은 폐허가 된 지 오래였지만,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찢겨진 포장지, 흐트러진 상자들. 분명 다른 생존자들이 먼저 이곳을 발견했을 터였다.
그들이 실망감을 애써 감추며 안쪽으로 더 나아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슥.*
금속이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카인은 즉시 엘라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의 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구냐!” 카인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둠 속에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끄응… 끄으응…* 하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그때였다. 찢어진 진열대 뒤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것은 한때는 인간이었을 존재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고, 피부는 죽은 나무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두 팔은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나 있었고,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나 있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 얼굴이었다. 눈알은 핏발이 서서 튀어나와 있었고, 턱은 끔찍하게 벌어져 안쪽의 이빨이 섬뜩하게 드러나 있었다.
바로 ‘피골’이었다. 재앙 이후,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어 변이된 인간들. 이성은 사라지고 오직 굶주림과 광기만이 남은 존재들이었다.
피골은 그들의 냄새를 맡았는지, 코를 킁킁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기다란 팔다리로 바닥을 기어 카인과 엘라에게 맹렬히 돌진해왔다.
“엘라, 도망쳐!” 카인이 소리쳤다.
하지만 엘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작은 단검을 뽑아 들고 카인의 옆에 바싹 붙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눈빛만은 굳건했다.
카인은 피골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녹슨 창이 괴물의 가슴팍을 꿰뚫으려 했지만, 피골은 놀라운 속도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카인의 팔을 스쳤다. 찢겨진 옷 아래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젠장…!”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피골은 일반적인 놈들보다 훨씬 빠르고 영리했다. 이곳에 숨어 다른 생존자들을 사냥해왔던 모양이었다.
피골은 다시 한 번 맹렬하게 덮쳐왔다. 카인은 창으로 괴물의 팔을 막아섰지만, 그 충격에 창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그때, 엘라가 재빠르게 피골의 옆구리를 단검으로 찔렀다.
*츠으윽!*
비록 깊지는 않았지만, 괴물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움찔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인은 창을 들어 괴물의 목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콰직!*
금속과 뼈가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피골은 경련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거친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이내 완전히 멈췄다.
카인은 땀범벅이 된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의 팔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엘라는 그의 상처를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오빠… 괜찮아?”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의 말과는 다르게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피골과의 싸움은 예상보다 훨씬 격렬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그들은 주변을 다시 살펴보았다. 피골이 쓰러진 곳 바로 뒤편에, 한때는 잠겨 있었을 문이 부서져 있었다. 그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지만,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카인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된 금속 선반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반 위에는 먼지에 뒤덮인 채 거의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통조림 몇 개가 있었다. 깡통에는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내용물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먹을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실 물도.
“엘라, 봐!” 카인의 목소리에 드물게 희망이 섞여 있었다.
엘라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 선반 위의 통조림을 발견하고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눈가에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몇 년 만에 보는 온전한 식량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카인은 곧바로 주변을 경계했다. 피골의 존재는 이곳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들은 서둘러 통조림을 챙기고, 근처에 남아있던 부서진 물탱크에서 겨우 몇 모금의 흙탕물을 걸러냈다. 오염되지 않은 물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 목을 축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카인은 엘라에게 통조림 하나를 건네주었다. 엘라는 조심스럽게 통조림을 따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도 먹어.”
“너 먼저 먹어. 난 괜찮아.”
엘라는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통조림 속의 음식을 한 조각 떠 입에 넣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래된 통조림이었지만, 그 맛은 천상의 만찬과도 같았을 것이다.
카인은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 번 주위를 경계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피골 한 마리가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다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그들의 생존은 오늘 하루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오늘’을 버텨내야만 했다. 이 황폐해진 세상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 한 줄기를 찾아 헤매는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이었다.
바깥의 잿빛 하늘은 여전히 무심했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속삭이는 듯했다.
“가자, 엘라.” 카인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들은 새로 얻은 양식을 품에 안고, 이 망각된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옮겼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그들의 절박한 생존기는 계속될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