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하제일이라는 허명이 지겹지도 않은지, 강호의 무인들은 오늘도 구름 위를 날아다니며 저마다의 이름을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청운은 그런 세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삭막한 황토 고원 깊숙한 곳, 바람이 깎아 만든 암벽 아래에 작은 동굴을 거처 삼아 살고 있었다. 그의 일과는 단순했다. 동이 트기 전 일어나 차가운 기운을 흡수하며 심법을 운용하고, 해가 중천에 뜨면 약초를 캐거나 오래된 비석을 찾아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을 연구했다.

“또 한 해가 저무는구나. 세월은 이리도 무정하게 흘러가는데, 깨달음은 멀기만 하니…”

청운은 한숨을 쉬며 손에 든 낡은 책자를 넘겼다. 고대 신선의 유적이 사라진 지 수천 년, 세상은 새로운 도법으로 가득했지만, 청운은 잊혀진 과거에 더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그가 오랫동안 파고든 것은 바로 ‘고대 영력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었다. 황혼이 짙어지자 동굴 입구에 쳐놓은 결계가 붉은빛을 띠며 희미하게 빛났다. 결계는 외부의 사악한 기운뿐 아니라, 세상의 불필요한 소음마저 차단해주었다. 그에게는 완벽한 은신처이자 수련장이었다.

그날 밤, 모든 것이 평온했다. 깊은 적막 속에서 청운은 좌정하여 내단(內丹)을 연마하고 있었다. 오색영롱한 영기가 그의 몸을 휘감았고, 희미한 빛이 동굴 내부를 가득 채웠다. 정신은 고요한 호수와 같았고, 감각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바깥에서 나뭇가지 하나 부러지는 소리조차 놓치지 않을 정도였다.

콰아아앙!

그때였다. 귓속에서 천둥이 터진 듯한 굉음이 울렸다. 청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좌정하고 있던 그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움찔했다. 동굴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고,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내단이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영기가 역류할 뻔했다.

“크윽…! 무슨 일이지? 지진인가?”

청운은 급히 자세를 가다듬고 영기를 안정시켰다. 단순한 지진이라기엔 뭔가 달랐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 사이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거대하면서도 차갑고, 동시에 오래된 듯한… 잊혀진 과거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기운이었다.

청운은 지체 없이 동굴 밖으로 나섰다. 결계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지만,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고원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저 멀리 하늘에는 오색찬란한 영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이내 핏빛처럼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거대한 봉인이 깨지는 듯한 불길한 조짐이었다.

“이 기운은… 고대 영력의 파동? 그것도 이렇게 강렬하게!”

청운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그가 연구해온 고문헌 속에서만 존재하던 기운이었다. 그것이 지금, 그의 눈앞에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허리춤에 찬 낡은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은 평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지금은 바늘이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내 한 곳을 가리키더니, 맹렬하게 붉은빛을 뿜어냈다.

붉은빛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동굴에서 불과 수리(數里) 떨어진 곳에 위치한 거대한 싱크홀이었다. 수백 년 전, 갑작스러운 지반 침하로 생겨난 곳이었으나, 워낙 깊고 위험하여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버려진 장소였다. 청운은 그곳에서 이상한 영력의 파동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표를 뚫고 올라오는 그 기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이럴 수가… 저 깊은 곳에 무언가 잠들어 있었단 말인가? 어째서 지금에서야…!”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잊혀졌던 진실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순간이라는 직감이 그의 온몸을 전율시켰다. 그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이끌림에 사로잡혔다.

청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즉시 싱크홀로 향했다. 고원 전체를 뒤흔들던 진동은 잦아들었지만, 싱크홀 주변에서는 여전히 기묘한 영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싱크홀 가장자리에 섰다.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심연. 그 속에서 잊혀진 고대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대체… 무엇이 날 부르는 거지?”

청운은 허리춤에서 백옥으로 만든 작은 단도를 뽑아 들었다. 단도 끝에서 푸른 영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도를 심연 속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단도 끝의 영기가 더욱 밝게 타오르며 아래로 향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길을 인도하려는 듯이.

그 순간, 싱크홀 바닥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눈을 찔러오는 강렬한 빛은 잠시 시야를 빼앗을 정도였다. 빛이 걷히자, 청운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심연의 바닥에 거대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했고, 그 중앙에서는 거대한 석문(石門)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고대… 지하 유적의 입구인가…!”

청운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은 불타는 듯한 열망으로 빛났다.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비밀이 마침내 그에게로 손짓하고 있었다. 위험하리란 것을 알았지만, 그는 그 유혹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는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의 파동은 그 어떤 금기보다도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청운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결심했다.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든, 이 고대의 부름에 응할 것이라고.

새롭게 열린 길은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과연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파멸일까, 아니면 세상의 근원을 뒤흔들 진실일까. 청운은 한 걸음, 한 걸음,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미지의 세계이자, 그가 찾아 헤매던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