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고요한 침묵 속의 균열
김현우는 텅 빈 엘리베이터가 뱉어내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비척거렸다. 새벽 한 시, 그의 몸은 늘어붙은 껌처럼 끈적거리는 피로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열두 시간 넘게 컴퓨터 화면 앞에서 씨름한 대가는 어깨와 목을 짓누르는 돌덩이와 번쩍이는 편두통이었다. 삑, 삑, 삑. 아파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조차 지쳐 느릿했다. 낡은 복도등 아래, 1403호라는 숫자가 어쩐지 오늘따라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철컥.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어둠이 그를 맞았다. 언제나처럼 정적만이 가득한 공간. 홀로 사는 30대 미혼 남성의 자취방은 언제나 그랬다. 현우는 몸을 숙여 신발을 벗어 던지고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내 거실 불을 켰다. 형광등이 한참을 삐걱거린 후에야 겨우 제 색을 찾았다. 너무 오래된 건가. 이 아파트도, 내 인생도. 그는 피식 웃었다. 실없는 농담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며칠 전 사다 놓은 맥주 캔을 꺼냈다. 시원한 캔이 손에 닿자 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차갑게 식은 밥에 반찬 몇 가지를 늘어놓고 대충 끼니를 때웠다. 식사를 마친 현우는 설거지통에 그릇을 던져 넣고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유일한 낙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시트는 눅눅했고, 베개는 어쩐지 축축한 느낌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 했다. 그때였다.
따닥.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오는 소리. 현우는 눈을 번쩍 떴다. 어디서 들린 거지? 마치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그는 귀를 기울였다.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다. 위층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면 옆집? 이 시간까지 소음을 낼 이웃은 아마 없을 텐데. 그는 피곤함에 이 모든 것을 망상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시 눈을 감으려 하자, 이번엔 거실 쪽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게 보였다. 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거실 불을 끄고 왔는데? 그는 몸을 일으켜 침실 문을 열었다. 거실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러나 분명히, 주방 쪽에 설치된 센서등이 아주 짧게, 마치 맥박처럼 희미하게 깜빡였다 사라졌다.
“뭐야… 고장 났나?”
그는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센서등은 이제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 안으로 몇 걸음 더 들어섰다. 쨍한 정적 속에서 문득, 손등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몸을 움찔거렸다. 에어컨을 켜지도 않았는데, 마치 얼음장 같은 냉기가 그의 손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소름이 돋았다.
그때였다. 씽크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머그컵 하나가, 아주 느릿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옆으로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낸 것처럼.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현우의 눈은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숨을 들이켰다.
“이게… 뭐야…?”
현우는 머그컵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가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걸까? 아니면 너무 지쳐서 시각에 일시적인 착란이 온 걸까? 그는 손을 뻗어 머그컵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컵 바닥에 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손을 떼자마자, 컵은 다시 몇 밀리미터 정도 옆으로 미끄러졌다.
쿵.
현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아찔함.
그때 거실 쪽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주방을 벗어나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아까와 다름없이 어두웠다. 그러나 바닥을 비추는 희미한 달빛 아래, 그가 분명히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TV 리모컨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현우는 리모컨을 주워 들었다. 건전지 덮개가 열려 있었고, 건전지 두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리모컨을 던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장난해? 대체 누가…?”
현우는 혼잣말을 했다. 이 집엔 자신 말고 아무도 없었다. 도둑? 그럴 리가. 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발끝까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낡은 나무 바닥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휘어지는 듯한 소리. 현우는 몸을 굳혔다. 복도 끝, 현관문과 연결된 통로. 그곳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그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것 같은 끈적거리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언어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음절들이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분명히, 그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현우는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복도 쪽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복도 벽에 걸려 있던 액자 하나가, 그가 아끼던 도시 풍경화 액자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액자를 바로잡았다. 그때, 그의 손가락 끝에 닿는 차가운 벽의 감촉.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미끄러웠다.
그리고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콰아앙!**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거실 벽에 붙어 있던 높은 책장에서 두꺼운 양장본 책 한 권이 떨어져 있었다. 그가 즐겨 읽던 고대 문명 관련 서적이었다. 책은 바닥에 엎어진 채 활짝 펼쳐져 있었고, 그 속의 한 페이지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페이지 속에는 기괴한 문양들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비틀리고 얽힌 선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그림 속 중앙에는 기이한 형체가 그려져 있었다. 어떤 신성모독적인 생물인지, 아니면 상상 속의 괴물인지 알 수 없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은 그를, 현우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눈알이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그를 꿰뚫었다.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정전된 듯, 모든 불빛이 일제히 꺼졌다.
어둠이 덮쳤다. 절대적인, 시야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칠흑 같은 어둠.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는 아직도 책 속의 기괴한 문양과 형체가 잔상으로 아른거렸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바로 그의 등 뒤에서, 아까 들었던 그 끈적거리는 속삭임이 이번에는 훨씬 더 또렷하게, 마치 그의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흐으… 흐으으…”**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피 섞인 침묵이 엉겨 붙은 듯한, 세상의 모든 불쾌함이 농축된, 심해의 바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소리. 그 소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현우의 등 뒤에서 그의 어깨로, 그리고 목덜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은 공포에 질려 굳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숨결이 그의 목덜미를 스쳤다.
그것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숨 쉬는 소리가. 끈적거리는, 이질적인 숨결이. 바로 그의 등 뒤에서.
아니, 그것은 숨결이 아니었다.
그것은 *웃음소리*였다.
인간이 아닌, 고대하고, 이질적인 존재의, 섬뜩한 웃음소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