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앙상한 이빨처럼 솟아오른 폐허 속에서, 지훈은 숨을 죽였다. 무너진 고가도로는 거대한 뼈대처럼 하늘을 가로질렀고, 그 아래로 찌그러진 차량들이 녹슨 망령처럼 늘어서 있었다. 지긋지긋한 보랏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이 세계를 짓누르고 있었다. 해는 없었다. 그저 어스름한 보랏빛 광선만이 모든 것을 음울하게 비출 뿐이었다.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긁었다. 오래된 곰팡이와 썩은 철의 비린내가 뒤섞여 역겨웠다. 지훈은 등에 메인 낡은 배낭의 끈을 고쳐 매며 잔뜩 날이 선 신경으로 주위를 살폈다. 왼쪽 팔뚝에 새겨진 희미한 문신이 흐릿한 통증처럼 느껴졌다. 그건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과거의 표식이었다.
끼이익.
고철이 긁히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지훈은 재빨리 멈춰 서서 부서진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거칠게 울렸다. 놈들인가? 아니면… 다른 생존자?
희망은 늘 절망의 전조였다. 지난 몇 년간 지훈이 겪은 경험은 그러했다.
시야 한구석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거대한 그림자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놈이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몸뚱아리, 수십 개의 눈이 사방으로 번뜩이는, 흡사 모든 재앙을 한데 뭉쳐놓은 듯한 그 기괴한 존재. 사람들은 그것을 ‘뒤틀린 망령’이라 불렀다. 아니, 이제 부를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망령은 천천히 폐허 속을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주변의 부서진 건물 파편들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망령이 지나간 자리에는 콘크리트 바닥에 섬뜩한 점액이 남았다. 지훈은 온몸의 근육을 굳히고 숨을 참았다.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저 망령의 수많은 눈 중 하나라도 자신을 발견하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다행히 망령은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듯, 느릿하게 방향을 틀어 멀어졌다. 그 뒤틀린 그림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훈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망령의 불쾌한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젠장…”
낮게 읊조린 욕설이 무미건조하게 허공에 흩어졌다. 지훈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이곳저곳을 떠돌며 먹을 것을 찾고, 안전한 잠자리를 찾는 것이 일상이었다. 몇 년 전,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때의 혼란은 이제 무감각한 일상이 되었다. 하늘이 찢어지고,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나타나 인류를 학살하던 그날. 아수라장 속에서 가족의 손을 놓쳤다. 그 이후로 그는 홀로 이 지옥을 헤매고 있었다.
낡은 상가 건물의 잔해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창문은 모두 깨져나갔고, 내부의 상품들은 썩거나 먼지에 뒤덮여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진열대 위에는 해골처럼 마른 마네킹만이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쓸 만한 건 없나…”
벽에 붙어있던 오래된 포스터 조각을 떼어내자, 벽면이 무너져 내렸다. 그 뒤에서, 지훈의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낡은 상자. 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분명 누군가 숨겨둔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먼지 앉은 깡통 몇 개와, 바싹 마른 육포 조각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 권의 낡은 수첩. 지훈은 육포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씹으며 수첩을 집어 들었다. 가죽 표지는 닳아 해져 있었고, 종이들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수첩을 펼치자, 펜으로 쓴 듯한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삐뚤빼뚤하지만 또렷한 글씨체. 그리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섬뜩하게 변해가는 그림들. 처음에는 평범한 가족의 스케치였다가, 어느 순간부터 기이한 형상의 괴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모든 페이지에 걸쳐 반복되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끝없이 이어지는 선들이 마치 저주의 주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렀을 때, 지훈의 손이 멈췄다.
거기에는 익숙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다소 어리고 앳된 모습이었지만, 분명 지훈이 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 아래에 쓰여진 이름.
*유진*.
지훈의 여동생 이름이었다.
“유진아…?”
그의 목소리가 낯설게 떨렸다. 수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유진은 이 폐허 속에서 마지막까지 찾아 헤매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전쟁통에 헤어졌을 때, 유진은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이토록 끔찍한 세상에서, 그 어린 동생이 살아남았을 리 없다고, 지훈은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어왔다. 하지만 이 수첩은…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유진의 그림 옆에, 또 다른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대충 그려진 약도였지만, 익숙한 지형 몇 군데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지도의 끝에는 알 수 없는 문자로 쓰인 지명이 있었다. 그 문자를 따라 몇 번의 점이 찍혀 있었는데, 그 점들이 이어져 ‘고요한 숲’ 이라는 글자가 한글로 쓰여져 있었다.
‘유진이 이곳에 왔었다는 건가? 그리고… 고요한 숲으로 갔다고?’
심장이 다시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절망 속에서 빛을 찾았을 때의 아찔함이었다. 그것이 진짜 희망이든,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끄는 환영이든, 지훈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며칠 밤낮을 걸어 지도는 지훈을 도시의 외곽으로 이끌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벗어나자 풍경은 기이하게 변했다. 콘크리트와 철골 대신, 검게 뒤틀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이 나타났다. 나뭇잎은 없었다. 가지들은 마치 저주받은 팔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보랏빛 하늘이 조각조각 부서져 보였다.
‘고요한 숲.’
이곳이 과연 ‘고요’라는 이름에 걸맞을까. 공기 중에는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새소리도,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지훈의 발소리와 제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모든 소리의 전부였다.
숲으로 들어선 순간, 지훈은 뭔가에 홀린 듯 걸음을 멈췄다. 땅바닥에 떨어진 낡은 천 조각. 빛바랜 빨간색이었다. 분명 유진의 스웨터 조각이었다. 어린 시절, 유진이 가장 좋아했던 스웨터.
“유진아!”
지훈은 저도 모르게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숲의 정적에 흡수되어 메아리조차 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외침이 마치 신호라도 된 듯, 숲의 풍경이 미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무의 형상이 흐려지고, 검은 나뭇가지들이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착각이 들었다.
순간, 숲의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번뜩였다. 푸른색, 아니,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기묘한 색의 빛이었다. 홀린 듯 그 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수첩에 그려진 약도의 끝, 그 ‘고요한 숲’의 중심이었다.
숲이 점점 더 기괴해졌다. 나무들은 점액질의 줄기를 드러냈고, 그 줄기 사이에서 셀 수 없는 눈알들이 지훈을 응시하는 듯했다. 땅은 울퉁불퉁하게 융기되어 있었고, 그 위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맥박처럼 깜빡이는 섬광을 뿜어냈다.
마침내, 지훈은 숲의 중심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건물이 있었다. 아니, 건물의 잔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온전했다. 차라리 ‘구조물’이라고 불러야 할 터였다. 높이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검은색 석탑. 매끄러운 표면에는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탑의 맨 위에는 보랏빛 하늘을 향해 거대한 눈동자가 꿰뚫어져 있었다. 살아있는 듯, 그 눈동자는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탑의 한쪽 면에는 녹슨 철문이 박혀 있었다.
그 문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로브를 걸치고 있었고, 핏기 없는 얼굴에는 기묘한 황홀경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석탑의 눈동자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의 한가운데에…
“유진…?”
지훈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바싹 말랐다. 로브를 걸친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소녀. 어릴 적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유진이었다.
소녀는 로브를 입고 있지 않았다. 낡고 헤진 옷차림, 여전히 어린아이의 티를 벗지 못한 몸.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지훈이 알던 유진의 눈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는 석탑의 눈동자처럼 푸른색,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유진의 손에는 낡은 수첩이 들려 있었다. 지훈이 발견했던 그 수첩과 똑같은. 그리고 그 수첩을 든 채, 유진은 공허한 눈으로 석탑의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직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바닷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수많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윙윙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한 남자가 유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로브를 입은 남자였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그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아이여.”
남자의 목소리가 숲의 정적을 갈랐다.
“그분께서 너를 통해 말씀하시리라.”
유진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시선이 지훈에게 닿았다. 그러나 그 눈에는 아무런 인식도, 감정의 흔적도 없었다. 마치 지훈이 풍경의 일부인 것처럼, 그저 텅 비어 있었다.
“유진아! 나야, 오빠!”
지훈은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찢어진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흠칫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텅 빈 눈동자들이 일제히 지훈에게 향하자, 지훈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멈춰라, 어리석은 자여.”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이미 그분의 품에 안겼다. 너는 그저… 어둠 속으로 돌아갈 존재일 뿐.”
남자의 손이 허공을 향해 들렸다. 그러자 주변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지훈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섬뜩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유진은 여전히 석탑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고 있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석탑의 거대한 눈동자도 같은 색으로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유진아!”
지훈은 다시 한번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 그 순간, 지훈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유진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껍데기만 남은 소녀는… 그저 거대한 존재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부서진 돌멩이 조각이나 녹슨 철조각들이 들려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인간의 감정이 없었다. 그저 어떤 거대한 존재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지훈은 주저앉았다. 희망을 쫓아 달려왔던 길의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더 깊은 절망이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모든 순간이 한순간에 부질없어졌다.
‘유진아…’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비명은 그저 가슴 속에서 맴돌 뿐이었다.
유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가 점점 더 커졌다. 석탑의 눈동자는 마치 심장처럼 격렬하게 박동했다. 그리고 보랏빛 하늘이 석탑의 눈동자와 같은 푸른색으로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하늘이 열리는 듯,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며 그 너머의 심연이 드러났다.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지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푸른색으로 빛나는 유진의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지훈은 자신이 발 딛고 선 이 세상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인지, 그리고 저 거대한 심연의 존재가 얼마나 오래되고 막강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절규는, 그 거대한 존재에게는 한낱 하찮은 잡음에 불과했다. 인류의 생존은 이미 정해진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훈은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었다.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설령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이 모든 절망 속에서 단 하나라도…
그의 손에 들린 녹슨 파이프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유진아!”
그는 다시 외쳤다. 이번에는 절규였다.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유진의 껍데기를 향한,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리고 그 비명은, 거대한 심연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요한 숲을 집어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