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낡은 흑요석 목걸이

이진우는 텅 빈 편의점 창밖을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불 꺼진 도로 위로 가끔 택시 한 대만이 미끄러지듯 지나갈 뿐이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이 도시의 약속은, 그에게만은 예외였다. 진우의 안에서는 오래전부터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무언가 뜨겁게 끓어오르던 시절은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목에는 낡은 흑요석 목걸이가 감겨 있었다. 조부께서 물려주신 유품이었다. 언제나 차갑고 매끄러웠던 그 돌은, 어린 시절 진우에게 신비로운 힘의 상징이었다. 조부는 늘 말씀하셨다. “이 돌은 네 안에 잠든 것을 일깨워줄 게다.” 하지만 그 ‘잠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진우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카운터 옆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던 진우의 시선이 문득 목걸이에 닿았다. 흑요석 표면이 아주 희미하게,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착각인가? 진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손목을 들어 올렸다. 흑요석은 다시 차가운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진우는 피식 웃었다. 한때는 무림의 신동이라 불리며 ‘천마신공’을 익히던 아이였다. 열 살 때 이미 고수들의 초식을 흉내 내고 열두 살에 문파의 비기를 깨쳤다. 하지만 가족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후, 그의 세계는 더 이상 무림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퍽퍽한 현실만이 존재했다.

“진우 씨, 벌써 교대 시간이에요?”

야간 알바생, 여대생 민서가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대에서 일어섰다.

“어. 수고해.”
“아니, 이 시간에 이렇게 힘든 표정으로 퇴근하는 사람 처음 봐요.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예요?”
“별거 없어. 그냥 좀… 지쳐서.”

진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편의점 문을 나섰다. 싸늘한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 그는 주머니 속 흑요석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다시 한번, 미묘한 온기가 손끝에 닿는 것 같았다. 그는 무심코 목걸이 표면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 순간, 흑요석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검은 돌이 붉은 불꽃을 토해내며 이글거렸다. 진우는 놀라 손을 놓치려 했지만, 목걸이는 마치 그의 피부에 들러붙기라도 한 듯 떨어지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전신을 덮쳤다.

“이게… 뭐야?!”

사방이 온통 새빨간 빛으로 물들었다. 마치 거대한 용광로 속에 갇힌 듯, 뜨겁고 아찔한 열기가 그를 휘감았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바닥이 뒤틀렸다. 진우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귓가에는 거대한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는 저항할 틈도 없이 거대한 힘에 휩쓸려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다.

***

차가웠다.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한기가 그를 감쌌다.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과 풀잎 향기, 그리고… 비릿한 피 냄새.
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빽빽하게 우거진 거대한 나무들의 잎사귀였다. 달빛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와 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여기… 어디지?’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숲이었다. 키 큰 고목들과 얽히고설킨 넝쿨,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가득한 곳. 분명 퇴근길 골목이 아니었다. 꿈인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진우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입고 있던 편의점 유니폼이 찢겨 너덜거렸다. 손목의 흑요석 목걸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빛을 잃고 다시 차가운 돌로 돌아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의 귓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목소리. 싸우는 소리?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 격렬하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금속이 부딪히는 쨍한 소리, 사람들의 비명과 신음.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몸이 가벼웠다.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어릴 적, 천마신공을 수련하며 느끼던 그 전성기의 육체와 흡사했다. 잊고 지냈던 감각들이 마치 오래된 서랍 속 물건처럼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숲의 장막을 뚫고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발소리를 죽이고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낡고 해진 무복을 입은 자들, 그리고 갑옷 비스무리한 것을 걸친 자들. 그들은 칼과 창, 그리고 맨손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는 검기, 땅을 뒤흔드는 장풍.

이건… 영화가 아니었다. 뿜어져 나오는 피 냄새와,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 그리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크아악!”

한 남자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의 등에는 꽂힌 비수가 섬뜩하게 빛났다. 진우는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저들을 막아라! 저들이 ‘혈마종’의 본거지에 당도하면 천하의 운명이 위태로워진다!”

한 무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천하의 운명?”

진우는 혼란스러웠다. 혈마종? 무림? 이 모든 것이 대체…

바로 그때, 한 인영이 진우가 숨어있는 풀숲으로 튕겨져 나왔다. 낡은 무복을 입은 청년이었다. 그는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청년의 눈에 진우가 들어왔다.

“누, 누구냐…?”

청년의 눈빛은 경계심과 동시에 절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우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자신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타임슬립 해왔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흥, 숨어있던 잔당이냐?”

싸움터에서 한 남자가 비웃듯이 진우와 청년을 향해 다가왔다. 검은 비단옷을 입고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한 남자였다. 그의 눈빛은 사악하게 빛났다. 남자의 손에는 검붉은 기운이 서린 장검이 들려 있었다.

“어린 놈이 숨어있다가 목숨이라도 구걸하려 했더냐? 꼴에 무림인이라고 피 비린내 나는 이 장소를 기웃거리는 꼴이 가련하구나.”

남자의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주저 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검기가 진우의 목덜미를 스쳤다.

‘죽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죽음의 위협이었다. 본능적으로 그의 몸이 반응했다. 발끝에서부터 거대한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흑요석 목걸이가 다시 뜨겁게 타오르는 착각에 빠졌다.

“건방진 놈!”

남자는 비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검은 거대한 뱀처럼 진우의 목을 노렸다.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어릴 적 천마신공을 수련하며 익혔던 ‘환영보법’이었다. 그의 몸은 마치 그림자처럼 일렁이며 남자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옆에서 피를 흘리던 청년도 놀란 표정으로 진우를 바라보았다.

“네, 네놈…! 그건…!”

진우는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뇌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육체가 모든 위협에 반응하고 있었다. 잊고 지냈던 무공의 감각이 핏속에 용해되어 흐르는 듯했다.

“흥미롭군.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이었더냐? 하지만 어림없지.”

남자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훨씬 빠르고 강력한 기세였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는 살을 에는 듯했다. 진우는 다시 한번 몸을 틀어 피했지만, 이번에는 검기가 그의 뺨을 스치며 한 줄기 피를 냈다.

뜨거운 피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벌한 기운이 그를 압박했다. 이 남자… 강하다. 단순한 폭력배가 아니었다. 명백히 죽이려는 의지를 가진 살수였다.

“감히 내 검을 두 번이나 피하다니. 네놈, 보통 놈이 아니었군. 좋아, 네놈의 피로 이 밤을 물들여주마!”

남자는 외치며 전신에 검은 기운을 두르고 돌격했다. 그의 검은 마치 지옥에서 솟아난 마검처럼 섬뜩한 살기를 뿜어냈다.

진우는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잊고 지냈던 열망이 그의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끓어오르는 피, 불타오르는 투지. 그가 이 모든 것을 포기했던 이유와는 상관없이, 그의 몸은 싸우기를 원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남자가 달려들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잊고 지냈던 차가운 기운이 솟아났다.

‘이건…!’

빙결장! 조부가 가르쳐주셨던 천마신공의 일초였다. 진우는 그대로 남자의 검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콰아앙!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얼음 기운이 남자의 검과 격렬하게 부딪혔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검은 사방으로 파편을 튕겨내며 얼어붙었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이, 이런 마공을…! 네, 네놈 대체…!”

진우 역시 놀랐다. 자신의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은 몰랐다. 그는 무의식중에 자신에게 잠들어 있던 ‘힘’을 일깨운 것이었다.

그 순간, 싸움터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그리고 한 인영이 그의 옆으로 순식간에 날아와 남자의 목에 칼을 겨눴다.

“혈마종의 잡배가 감히 건방지게 날뛰는군.”

목에 칼을 겨눈 이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무복을 입었고, 깊은 눈빛에는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었다. 노인은 남자를 한순간에 제압하고는 진우를 돌아보았다.

“어린 친구,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이 비천한 장소에서 이런 심오한 내공을 펼치다니. 그것도 잊혔던 천마신공의 빙결장이라니… 혹, ‘북천무신류’의 후인이더냐?”

노인의 눈빛이 날카롭게 진우를 꿰뚫었다. 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북천무신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천마신공은… 그가 잊고 지냈던, 자신의 가족에게 내려오던 무공이었다.

“천마신공을 익힌 젊은이여… 어째서 이곳에 왔는가?”

노인의 목소리에는 압도적인 기운이 실려 있었다. 진우는 직감했다. 이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전설 속의 무림 고수.

“지금 무림은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 있네. 혈마종이 천하제일무도대회를 통해 혼란을 조장하고, 마교의 부활을 꾀하고 있다. 천하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이때, 자네 같은 무인이 나타나다니… 하늘의 뜻이로구나.”

노인은 진우의 어깨를 굳건히 잡았다. 그의 눈빛은 굳건한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자네의 힘이 필요하네. 젊은 무인. 우리와 함께 천하를 구할 지혜와 용기를 보여주지 않겠는가?”

진우는 혼란에 빠졌다. 천하의 운명? 무림? 마교?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평범한 21세기 대한민국 청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손목에 감긴 흑요석 목걸이가, 그리고 그의 핏속에서 끓어오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힘이,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무림의 밤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그는 서 있었다. 잊고 지냈던 과거의 그림자,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의 운명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대체 어디로 온 거지…?”

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질문은,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노인의 시선만이 그의 내면에 숨겨진 거대한 잠재력을 꿰뚫어 보듯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