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번째 달빛 아래
숲은 침묵으로 질식하고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세 번째 달이 검은 나무 꼭대기 위로 고독하게 떠올랐다. 그 빛은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바닥에 닿아,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드는 기묘한 그림자들을 만들어냈다. 엘리아는 거친 바위 위에 앉아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쉬었다. 심장이 귀청이 터질 듯 울렸다. 매번, 똑같은 불안감이었다.
“너무 늦어지는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기다림은 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목을 겨눴다. 이곳, 두 종족의 경계가 맞닿은 금단의 숲은 언제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전장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인간의 척후병, 혹은 야수족의 사냥꾼. 어느 쪽이든 그녀의 심장을 꿰뚫기에는 충분한 존재들이었다.
바람이 차가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숲은 여전히 고요했다. 너무도 고요해서, 오히려 불길했다. 엘리아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손끝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멈췄다.
익숙하면서도 섬뜩한 기척. 인간이 아니었다. 발소리마저 어둠에 녹아드는 듯한, 사냥꾼의 그림자. 엘리아는 재빨리 몸을 돌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달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불꽃처럼 번뜩였다. 짐승의 털로 뒤덮인 단단한 근육, 예리하게 솟아난 송곳니가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그 존재는 감히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위압감을 뿜어냈다. 그러나 엘리아의 눈에는, 그저 그녀의 세상 전부인 한 남자였다.
“카이렌.”
엘리아의 입술에서 간신히 이름이 흘러나왔다. 안도감과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숲의 모든 생명이 그의 발걸음에 경외심을 표하는 듯 고요했다. 그는 한순간에 그녀 앞에 섰고, 엘리아는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강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뼈마디가 부서질 것 같은 포옹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품이었다. 그의 털가죽에서 피와 숲의 냄새, 그리고 그녀가 너무나도 그리워한 야생의 체취가 났다.
“엘리아. 많이 기다렸나.”
낮고 굵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의 심장 박동이 엘리아의 가슴에 그대로 전해졌다. 강하고, 뜨겁게. 그것은 그녀의 심장과 똑같은 리듬으로 뛰고 있었다.
“매번, 당신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 엘리아는 그의 넓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 끔찍한 만남이 언젠가는 끝날까 봐.”
카이렌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거친 턱수염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았다. 인간의 여인과 야수족의 우두머리. 그것은 신들이 가장 역겨워할 불결한 결합이었다.
“끝나지 않아, 엘리아.” 그는 맹세하듯 말했다. “내가 숨 쉬는 한.”
엘리아는 그의 말에서 위안을 얻었지만, 동시에 슬픔이 밀려들었다. 이 거짓된 평화의 순간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사랑은 양쪽 종족 모두에게 금기였다. 인간들은 야수족을 짐승이라 부르며 도륙했고, 야수족은 인간을 나약한 먹잇감으로 여겨왔다. 그들 사이의 평화는 존재하지 않았고, 사랑은 더더욱 그러했다.
“오늘도 경계가 삼엄해졌어.” 엘리아가 속삭였다. “내 쪽에서 순찰이 강화됐어. 당신 쪽은 어때?”
카이렌의 붉은 눈빛이 잠시 차갑게 빛났다.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북쪽 부족의 늙은 족장이 밤마다 울부짖는다더군. 인간들의 침략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침략이라니… 무슨 소리야?” 엘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찾아오는 차가운 공기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내 첩자들이 전해왔다. 인간 왕국에서 대규모 원정대를 조직 중이라고. 우리 영토를 영구적으로 밀어버릴 계획인 듯해.” 카이렌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어.”
엘리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돼. 내가 아는 한, 그런 계획은 없어. 적어도 최고위층에서 논의된 적은 없어. 혹시… 오해야?”
“오해? 그들의 칼날이 우리 목을 꿰뚫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해가 아닌가?” 카이렌의 목소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아.”
“카이렌…” 엘리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거친 손은 그녀의 손을 완전히 감쌌다. “제발, 진실을 확인해야 해. 무모하게 나서면 안 돼. 내가 알아보겠어. 내 영향력을 써서라도…”
“그대는 이미 충분히 위험해, 엘리아.” 카이렌이 그녀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인간들에게 알려지면 그대는 화형당할 테고, 우리에게 알려지면 그대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엘리아는 알고 있었다. 야수족에게 발견되면, 그녀는 그들의 분노와 증오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난 괜찮아.” 엘리아는 그의 붉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수 있어.”
정적이 흘렀다. 숲은 그들의 맹세에 응답하듯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잠겼다. 그때였다.
저 멀리, 숲의 동쪽에서 작게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
엘리아의 심장이 다시 한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인간의… 순찰대 뿔피리 소리야.”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여기까지 온 건가? 이런 깊숙한 곳까지?”
카이렌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온몸의 근육이 경직됐다. 맹수가 사냥감을 포착했을 때의 자세였다. 붉은 눈은 뿔피리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응시했다.
“그들이 우리를 쫓아왔나?” 카이렌의 목소리에 짙은 살기가 서렸다. “아니면 우연인가.”
“우연일 리 없어.” 엘리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경계가 가장 삼엄한 곳이야. 정기 순찰로는 아니야. 누군가… 누군가 우리의 만남을 짐작하고 이쪽으로 유도한 걸지도 몰라.”
카이렌은 으르렁거렸다. “누구지? 어느 쪽이든, 용서치 않을 것이다.”
뿔피리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이제는 여러 개의 뿔피리가 뒤섞여 울렸다. 그들의 대화를 들었을 리는 없지만, 그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달빛 아래, 숲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었다. 이제는 두 연인에게 가장 위험한 함정이 되었다.
“카이렌, 우리는 헤어져야 해.” 엘리아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당신은 숲 속으로, 나는 다른 길로. 서둘러!”
“안 돼.” 카이렌은 단호하게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대를 혼자 보낼 수 없어. 그들이 그대를 잡는다면…”
“그럼 둘 다 잡힐 거야!” 엘리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녀는 그의 붉은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가 함께 있는 걸 들키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야! 내가 인간 쪽을 유인할게. 당신은 도망쳐!”
그녀는 카이렌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의 힘은 너무나도 강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격렬한 고뇌와 분노가 번득였다.
“엘리아, 듣고 있나?”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뿔피리가 아니었다.
‘쉬이이익-!’
날카로운 바람을 가르는 소리. 엘리아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숲의 깊은 곳, 검은 그림자 속에서 섬광처럼 튀어나온 그것은, 뾰족한 은빛 촉을 가진 화살이었다. 화살은 정확히 엘리아의 심장을 겨냥하고 날아왔다.
“엘리아!” 카이렌이 절규하듯 외치며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화살은 그녀의 어깨를 스치는 대신, 그의 단단한 어깨 근육에 깊숙이 박혔다.
‘크윽!’
카이렌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피가 검은 털가죽 위로 번져나갔다. 엘리아는 경악하며 그의 상처를 부여잡았다. 화살촉에서는 희미하게 녹색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독이었다.
“카이렌! 정신 차려!” 엘리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카이렌은 피 묻은 손으로 그녀의 뺨을 감쌌다. 그의 붉은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도망쳐… 엘리아.”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고 갈라졌다.
숲 저편에서 인간들의 발소리가 점차 선명해졌다. 그들은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그리고 그 발소리 사이로, 섬뜩한 어둠의 기운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 숲에, 또 다른 사냥꾼이 온 것을 직감하며 엘리아는 절망에 빠졌다.
그들은 이 숲에 홀로 온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들의 은밀한 만남을 노리고, 사냥감을 몰듯이 자신들을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더욱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엘리아는 예감했다.
이번 밤은, 그들에게 평소와 다른 파멸을 가져올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