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챕터 17: 심연의 그림자, 서막을 열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유적의 심장부. 칼리안은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눅진한 공기 속에서 곰팡이 냄새와 핏비린내가 역하게 뒤섞여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발밑에서는 깨진 돌멩이들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메아리쳤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 어떤 존재에게도 감지되지 않았다.

“크으읍…!”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칼리안의 붉은 눈동자가 섬광처럼 빛났다. 마법으로 봉인된 철창 너머, 쇠사슬에 묶인 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녀석의 몸 곳곳에는 마나 억제기가 박혀 있었고, 온몸은 채찍질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서진의 하수인 중 하나, ‘검은 송곳니’ 길드의 척후대장 엘론이었다.

칼리안은 망설임 없이 철창에 손을 댔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각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그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때도 이렇게 차가웠지. 네 손이 내 등을 밀어붙이던 순간처럼.*

아련하고도 끔찍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

“민준아,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야! 우리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전설의 유물이 봉인된 곳이라고!”

서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활기찼고, 눈빛은 탐욕과 흥분으로 번뜩였다. 김민준, 아니, 그때의 나는 그 눈빛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소꿉친구였다. 이세계로 전이된 후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목숨을 걸고 수많은 던전을 헤쳐 나갔다. 나는 강력한 마법사였고, 서진은 날렵한 검사였다. 우리의 조합은 완벽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차원의 심연’ 입구. 그곳에는 고대 신의 유물이 잠들어 있다고 전해졌다. 서진은 불안해하는 나를 안심시키며 먼저 발을 내디뎠다. 내가 그의 뒤를 따랐을 때였다.

*콰아앙!*

등 뒤에서 느껴진 섬뜩한 충격. 온몸의 신경이 비명을 질렀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순간, 나는 서진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내게 미안하다는 듯 일그러진 표정,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잔혹한 미소.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

“미안해, 민준아. 이 유물은… 나 혼자 가져야만 해.”

그 한마디와 함께 나는 마력의 심연 속으로 추락했다. 뼈와 살이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나를 덮친 것은 심연의 어둠이자… 서진을 향한 끝없는 증오였다.

***

기억은 짧았지만, 그 잔상은 칼리안의 심장을 다시금 차갑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쇠창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묵직한 쇠가 서서히 녹아내리듯 녹아내렸다. 마치 한 줌의 재처럼, 쇠는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크윽… 누구냐…?”

엘론이 흐릿한 눈으로 칼리안을 올려다봤다. 고통과 공포에 절어버린 목소리였다.

“네 주인을 찾아온 손님이다.”

칼리안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의 그것처럼 낮고 차가웠다. 그는 엘론의 턱을 움켜쥐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게 했다. 엘론의 눈빛에 공포가 더 짙어졌다.

“네… 네놈은… 그림자… 그림자 마법사…!”

엘론은 칼리안의 이름을 들은 적 없었다. 하지만 그의 압도적인 기운과 그림자처럼 흔적도 없이 나타나는 능력은 이미 암흑가에서 ‘그림자 사냥꾼’ 혹은 ‘심연의 망령’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서진은 어디에 있지?”

칼리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엘론의 영혼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말… 말할 수… 없어…! 주… 죽여도… 맹세했…!”

엘론은 몸부림쳤지만, 칼리안의 손아귀는 강철처럼 단단했다. 칼리안은 피식 비웃었다.

“맹세? 네 주인이 너에게 준 대가는 고작 이런 고통뿐이더냐? 내가 그에게 줄 고통에 비하면, 네 고통은 어린아이의 장난에 불과할 텐데.”

그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엘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칼리안의 능력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림자 마법은 단순히 어둠을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정신을 잠식하고, 가장 깊은 공포를 현실로 끌어내는 능력이었다.

“말해라. 서진이 어디에 있는지. 그러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겠다.”

칼리안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압력이 담겨 있었다. 엘론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주인을 향한 충성과 자신의 생존 본능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결국, 생존 본능이 승리했다. 엘론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그분은… 지금… ‘정령의 성역’으로…! 그곳에서… 고대 정령왕의 힘을… 흡수하려…!”

정령의 성역. 칼리안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빛났다. 그곳은 인간의 접근이 엄격히 금지된, 이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였다. 서진은 도대체 어디까지 손을 뻗치려는 것인가. 고대 정령왕의 힘? 그 힘을 손에 넣으면, 그는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될 터였다.

칼리안은 엘론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엘론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콜록거렸다.

“이제… 됐느냐…?”

엘론이 겨우 말을 잇자, 칼리안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정보는 얻었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은 약속한 적 없다.”

엘론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 무슨…!”

칼리안의 그림자가 엘론을 덮쳤다. 엘론은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미 형체를 잃은 검은 절규로 변해버렸다. 그림자는 엘론의 몸을 서서히 잠식했고, 그의 육체는 마른 낙엽처럼 바스라지며 검은 먼지로 흩어졌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칼리안은 바닥에 흩어진 검은 먼지를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지극히 당연한 일을 처리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정령의 성역이라… 네놈이 또다시 세상을 집어삼키려는구나, 서진.”

칼리안의 눈빛은 섬뜩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네가 버렸던 그림자가, 이제 너의 목을 조를 것이다.”

어둠 속으로 칼리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은 이미 ‘정령의 성역’을 향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새로운 피바람을 예고하며 거대한 톱니바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진의 시대는 끝나고, 심연에서 돌아온 그림자의 복수가 이제 막 서막을 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