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드리아 마법 학원 지하, 금지된 심층부.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짓눌렀다. 퀴퀴한 흙냄새와 함께 미세한 쇠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서연은 지팡이 끝에 매단 ‘루모스’ 마법의 빛을 앞으로 쏘아내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현우는 그녀의 등 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벽에는 어설프게 지워진 고대 마법 문자들이 희미하게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 문자들은 흡사 누군가의 절규를 필사적으로 지워낸 것처럼 보였다.
“이게… 정말 학원 지하라고?” 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동공이 확장된 채 어둠 속에 무엇인가 숨어있지 않을까 필사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 연구실 아래에서 발견한 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여기뿐이었어. 교수님들도, 선배들도 아무도 몰랐던 공간.” 서연은 나지막이 대답하며 벽에 손을 짚었다. 차가운 돌벽에는 습기가 맺혀 있었고, 손끝에 닿는 감촉은 미끈거렸다. “여기 마력이… 이상해. 뒤틀려 있어. 마치 억지로 뭉쳐놓은 것처럼.”
그녀의 말대로였다.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마력은 평소 학원 건물에서 느껴지던 맑고 청량한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탁하고 끈적이는, 뱀이 기어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피부를 파고들었다.
수십 미터를 더 나아갔을까. 앞서가던 서연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현우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다 멈칫했다. 전방의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뚜렷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두웅… 두웅…*
규칙적인 심장 박동과도 같은 낮은 울림이었다. 기계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유기적이고, 살아있는 것의 맥박이라고 하기에는 불길한 파동을 담고 있었다.
“뭐… 뭐지?” 현우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서연은 아무 말 없이 빛을 울림의 근원지로 향했다. 길고 좁은 통로의 끝에, 묘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은 마치 물속에 잠긴 듯 아른거렸고, 그 빛을 따라 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결박과 구속, 그리고 흡수를 상징하는 고대 의식 마법진이었다.
“젠장… 이걸 왜 지하에…?” 현우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설마, 이 학원이 세워진 이유가 이거랑 관계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가 아닐지도 몰라.” 서연은 오히려 차분하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보다는 섬뜩한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일기에서, ‘지하의 심장’이라는 단어가 나왔어. 그리고 그 심장이 ‘불을 끄지 않는 한’ 학원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했지.”
그녀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틈새를 찾아냈다. 낡은 철문이었다. 녹슬고 뒤틀린 문은 마치 누군가 필사적으로 닫아걸려 했거나, 혹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려 발버둥 쳤던 것처럼 보였다. 서연은 문틈으로 지팡이를 밀어 넣고 ‘오프닝’ 마법을 시전했다.
*끼이이이이익… 콰앙!*
귀를 찢는 끔찍한 쇳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으로 억지로 밀려 열렸다. 동시에 문 안쪽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공기와 함께 기분 나쁜 습기가 얼굴을 강타했다. 악취가 너무 강렬해서 서연은 저도 모르게 기침을 터트렸다. 현우는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곳은 거대한 원형의 공간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벽에는 고대 마법진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마법진들은 붉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을 내며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중앙에는, 모든 불길한 울림의 근원이 있었다.
거대한 제단이었다.
정확히는, 거대한 크리스털이 박혀 있는 제단.
그 크리스털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크기였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분 나쁜 녹색 빛을 내뿜으며 쿵, 쿵, 하고 규칙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그 녹색 빛은 벽에 새겨진 마법진들을 타고 온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빛이 닿는 곳마다 희미한 망령 같은 형상들이 아른거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형상들은 마치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 같기도 했고, 팔을 뻗어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하기도 했다.
“저게… 뭐야…?” 현우는 공포에 질려 더듬거렸다.
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제단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제단 바닥에는 수많은 균열이 있었고, 그 균열 사이사이에는 마른 핏자국처럼 보이는 검붉은 흔적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흔적들 사이로, 손가락 굵기의 투명한 관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관들은 벽을 타고 올라가 마법진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 관 안으로는 끈적이는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들어 녹색 크리스털로 향하고 있었다.
그 액체는 투명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마치 빛을 머금은 미세한 입자들이 미약하게 빛을 발하며 크리스털로 흡수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정수처럼.
“이건… 마나 흡수 장치야.” 서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아니, 마나가 아니야. 영혼이야. 살아있는 영혼의 정수를 뽑아내서… 저 크리스털에 공급하고 있는 거야.”
크리스털은 다시 한 번 쿵, 하고 강하게 맥동했다. 그 순간, 서연의 귓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살려줘…*
*놓아줘…*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 속삭임은 너무나 희미해서 환청 같았지만, 그 안에 담긴 절규는 너무나 생생했다.
“저게 학원의 심장이라고…?” 현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학원 전체 마력은… 이 영혼들을 착취해서 얻어지는 거였단 말이야?”
그때였다.
*촤아아아악!*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거미줄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동시에 서연의 루모스 빛이 흔들리며 주변이 더욱 깊은 어둠에 잠겼다.
“누구야?!” 현우가 비명을 지르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키는 두 배 이상이었고, 옷차림은 이 학원의 것이 아닌 고대의 의복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눈에서는, 붉은 빛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감히… 금지된 곳을 침범하다니…”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서연과 현우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 학원 지하 심층부에, 살아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그 존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붉은 눈은 녹색 크리스털의 빛을 받아 더욱 기괴하게 빛났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발은 납덩이라도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쿵… 쿵…*
크리스털의 맥동은 점점 더 거세졌다.
그것은 학원의 심장이었고,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는 그 심장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혹은… 이 끔찍한 금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거나.
“뒤를 노려!” 서연이 간신히 외쳤다. 그들의 등 뒤에서, 아까 들어왔던 철문이 *끼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완벽히 갇혔다.
그리고, 그림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의 마력이 두 사람을 집어삼키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