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열두 시의 서곡

해가 저물고, 도시의 불빛이 아파트 창문을 물들일 때마다 민서의 어깨는 잔뜩 웅크러들었다. 스물여덟 살의 그녀에게 퇴근 후의 고요는 일상이자 안식이었지만, 최근 들어 그 고요는 낯선 침묵으로 변해버렸다. 십오 층, 복도 제일 안쪽에 자리한 이 작은 아파트는 한때 그녀의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더 이상은 아니었다.

민서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습관적으로 손잡이를 두 번 더 흔들어 잠금 상태를 확인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둔 열쇠가 다음 날 아침이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침대 옆 스탠드 조명은 멀쩡히 꽂아두어도 새벽녘이면 저 혼자 깜빡거리다 꺼지곤 했다. 처음에는 피로 탓이려니, 낡은 아파트의 흔한 현상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밤의 일은 더 이상 그렇게 치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방을 소파 위에 던져놓았다. 주방으로 향하며 물 한 컵을 따르려는데, 씽크대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유리컵이 툭, 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민서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뭐야… 왜 이래, 요즘.”

떨리는 손으로 컵을 주워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분명 아까는 가장자리에 가까이 있지 않았다. 컵이 놓여있던 자리로부터 한 뼘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

TV를 켜자 익숙한 연속극의 시끄러운 배경음이 적막을 깨트렸다. 민서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친구와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시시껄렁한 농담들이 오가는 대화창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의 섬뜩함이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래, 피곤해서 헛것이 보인 거겠지. 모든 게 다 과로 때문이다.

그때였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을 민서는 똑똑히 보았다. 아니, 착각일 리가 없었다. 액자의 모서리가 벽에 부딪히며 아주 미세한, 그러나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민서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TV 소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들려서 볼륨을 낮추려는데, 리모컨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분명 소파 위에 두었던 리모컨이 사라졌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소파 틈새를 뒤졌다. 없었다.

“어디 갔지…?”

그 순간, 주방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더 크게, 날카롭게. 민서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삼키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씽크대 위, 조금 전 그녀가 다시 올려놓았던 유리컵이 이번에는 깨진 채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파편들이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까 사라졌던 TV 리모컨이 나뒹굴고 있었다.

민서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누가, 누가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는가? 이 아파트에는 민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열쇠는 그녀의 주머니에 있었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목소리가 한없이 떨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하게,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문이 닫힌 방 안에서, 벽 안에서, 아니면 바로 그녀의 귓가에서.

그 소리는 마치 수많은 작고 딱딱한 것들이 긁히는 듯한 소리였다. 마치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벽 속을 기어 다니는 것 같기도 했고, 오래된 건물의 뼈대가 뒤틀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민서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제발… 제발 사라져!”

그녀의 울먹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실의 TV가 다시 저 혼자 켜졌다. 이번에는 드라마가 아니었다. 텅 빈 회색 화면. 그리고 그 화면 위로, 검은 점들이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작은 점들이 무질서하게 움직이다가, 이내 한데 모여 희미한 형상을 이루는 듯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 없는 패턴이었지만, 묘하게도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치 그것이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것처럼.

그때, 등 뒤에서 싸늘한 한기가 몰려왔다. 민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텅 비어있던 현관 복도 저편에서, 아주 작게, 그러나 섬뜩하게,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벽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림자가 아닌데, 마치 그 자체로 살아있는 듯한 어둠의 덩어리.

그 덩어리는 명확한 형태가 없었다. 불분명하고, 일렁이고, 때로는 어딘가 모르게 왜곡된 기하학적 형상을 띠는 것 같았다. 마치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것이 잠시 이 세계로 비쳐 들어온 것처럼. 민서의 눈에 비친 그것은, 시야의 가장자리를 벗어나면 다시 사라지는 듯했으나, 그녀가 시선을 고정하면 흐릿하게나마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둠의 덩어리 안에서, 아주 잠깐, 무수히 많은 눈동자가 깜빡이는 환영을 보았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고, 어떤 것은 수직으로 서 있었으며, 또 어떤 것은 도저히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들이 동시에 그녀를 향하는 순간, 민서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이 울리는 듯한 환청이 들렸다.

그것은 공포였다. 단순한 유령이나 귀신의 장난이 아니었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적이고 근원적인 존재가 이 작은 아파트의 벽을 비집고 들어오려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심장이 목구멍으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끼이이익- 퍽!

갑자기 거실의 창문이 스스로 열리더니 맹렬한 기세로 다시 닫혔다. 유리창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 충격으로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마침내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민서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이건 현실이었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아파트의 모든 불이, 동시에 꺼졌다.

짙은 어둠 속에서, 민서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둠은 그녀의 눈꺼풀 안까지 스며들어와 춤을 추는 듯했다. 어딘가에서, 아주 낮고 깊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어가 아닌, 형용할 수 없는 울림. 마치 벽과 바닥, 천장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그녀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녀의 이성이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는 더 이상 그녀의 집이 아니었다. 이곳은, 어떤 거대한 존재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 갇혀버린 가련한 희생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