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산골짜기를 울리는 바람 소리가 유난히 차갑던 날이었다. 핏빛 노을이 스러지는 서쪽 하늘 아래, 거대한 암석 봉우리들이 그림자처럼 솟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이 치솟은 ‘천마봉’ 정상은 흡사 심장이 뽑혀 나간 듯, 뻥 뚫린 거대한 구덩이를 품고 있었다. 그 구덩이가 바로 ‘천마대회’의 결전장이었다.

무영은 차가운 바위 틈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백, 수천의 무인들이 봉우리를 뒤덮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했다. 웅성거림은 기이할 정도로 억눌려 있었고, 모두의 시선은 구덩이 한가운데 박힌 검은 비석으로 향해 있었다. 검은 비석은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어둠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무영 도련님.”

나직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한월루의 장로, 월향이었다. 백발에 가까운 은발을 드리운 그녀의 눈은 언제나처럼 깊은 슬픔을 담고 있었다.

“월향 장로님.”

무영은 고개를 숙였다. 월향은 검은 비석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저 비석이… 천 년 전, 저승의 문을 봉인했던 열쇠라는 것을 아십니까.”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강호에 파다했지만, 대부분은 전설로 치부했다. 그러나 월향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었다.

“아무도 그 문이 완전히 닫혔다고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저 잠시 잠들었을 뿐이라고….” 월향의 목소리가 떨렸다. “천마대회는 표면적으로는 강호 제일인을 가리는 무림대회이지만… 실상은 저 문을 다시금 봉인할 최강의 그릇을 찾는 의식입니다. 허나… 혹 그 그릇이 탐욕으로 물들거나, 문을 열려는 사악한 의도를 품는다면….”

말을 잇지 못하는 월향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무영은 검은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단순히 차갑고 강렬한 기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명을 갉아먹고, 영혼을 좀먹는 듯한 사악한 기운이었다.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섬뜩함.

그때였다.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천마봉을 뒤흔들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서 있던 한 인물이 검은 비석 위로 솟구쳐 올랐다.

“강호의 모든 영웅들이여! 이 천마대회에 모인 것을 환영한다!”

낮게 깔린 목소리였지만, 천지를 울리는 듯한 기세였다. 검은 도포를 입은 중년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섬뜩한 붉은 눈이 모든 무인들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바로 이 대회를 주최한 ‘명부문’의 문주, 흑천이었다.

“이번 대회의 승자는 단순한 영광만을 얻는 것이 아니다. 천마봉에 깃든… 고대의 힘을 다룰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그 힘으로 천하를 구원할지, 아니면 파멸로 이끌지는… 오로지 승자의 손에 달려 있다!”

흑천의 말에 무인들 사이에서 낮게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구원과 파멸. 그 양극단의 선택지 앞에서 누군가는 환호했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떨었다.

“첫 번째 대결! 호북 무위문의 ‘벽력장’, 단호맹!”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한 거구의 무사가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철퇴가 들려 있었고,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압도적이었다.

“그에 맞설 자는! ‘칠흑의 낫’, 흑뢰!”

흑천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구덩이 반대편에서 어둠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날카로운 낫을 든 그림자 같은 인물이 나타났다. 그의 주변은 마치 한겨울 새벽 공기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 흑뢰. 그의 이름은 이미 강호에 피바람을 몰고 온 살인귀의 대명사였다.

무영의 눈이 가늘어졌다. 흑뢰는 다른 무사들과는 달랐다. 그의 기운은 명부의 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악한 기운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대결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단호맹이 뿜어낸 벽력장은 바위를 부수는 듯한 기세였으나, 흑뢰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철퇴를 피했다.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움직임. 칠흑의 낫이 섬광처럼 번뜩이더니, 단호맹의 목을 스쳤다.

“크… 윽…!”

단호맹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목에는 실금 같은 붉은 선이 그어졌고, 이내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부릅뜬 채 쓰러졌다.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이 통째로 뽑혀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무인들 사이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공포와 경외심이 뒤섞인 소리였다. 흑뢰는 아무 말 없이 쓰러진 단호맹을 지나쳐 검은 비석 옆에 섰다. 그의 낫 끝에서는 검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월향이 무영에게 속삭였다. “저 자는 이미… 저승의 힘에 오염된 듯합니다. 저런 자가 고대의 힘을 얻게 된다면…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무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이 저도 모르게 검자루로 향했다. 그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스승의 유언과, 마음속 깊이 느껴지는 어떤 이끌림이 그를 이곳까지 오게 했다. 이 대회가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대결! 낙화문의 ‘환영수’, 유설아!”

흑천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천마봉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무영은 그의 다음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그림자 없는 검’ 무영. 그는 과연 저 흑암 같은 어둠을 뚫고, 숨겨진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까.

무영은 천천히 일어섰다. 구덩이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검은 비석이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비석의 그림자 아래,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쌍검을 든 여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미 패배를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죽음의 무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