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은 숨 막힐 듯 완벽한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은은한 마법등이 교정을 비추고, 저택처럼 우아한 기숙사 창문 너머로는 학생들이 잠든 듯 고요했다. 그러나 카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어둠 속에서 오직 제 심장이 내는 소리만이 그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
그는 지금, 그 완벽한 가면 뒤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의 문턱을 넘어섰다. 어제 발견한 비밀 통로. 낡은 마법 서고 깊은 곳, 지하로 이어진다는, 이 아르카디아 학원에서는 존재조차 언급되지 않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공기가 그의 뺨을 시리게 스쳤다. 코끝을 찌르는 퀴퀴한 곰팡이와 눅진한 흙냄새가 오래도록 닫혀있던 공간의 침묵을 대변하는 듯했다. 낡은 돌계단은 습기로 미끄러웠고, 간간이 벽에서 떨어져 나간 석재 조각들이 발에 밟히며 불길한 소리를 냈다. 손에 든 간이 마법등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은 발밑을 간신히 비췄을 뿐, 빛이 닿는 곳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세계로 전생한 지 10년. 남들처럼 마법에 비범한 재능을 보여 엘리트 학원에 입학했지만, 카인은 늘 이 학원의 ‘완벽함’에 이질감을 느껴왔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히려 속이 비어 보이는 가면 같은. 그리고 그 가면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지하의 어둠이 바로 그 실체일 것이라는 불길한 확신이 그를 이끌었다.
계단이 끝나고 좁고 긴 복도가 이어졌다. 복도 양쪽 벽은 매끄럽게 다듬은 검은 돌로 되어 있었는데, 곳곳에 기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마법 문양 같기도 했지만, 카인이 지금껏 배운 어떤 마법 체계에서도 본 적 없는 낯선 형태였다. 흡사 오래된 주술 의식에 쓰이는 상형문자 같기도,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생명체의 기록 같기도 했다. 그의 마법등이 불안하게 깜빡였다.
“뭐지… 이 느낌은.”
저 멀리 복도 끝의 농밀한 어둠 속에서, 마치 거대한 짐승이 발톱을 갈아대는 듯한 둔탁한 마찰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이따금 멈칫하다 다시 시작하는 그 불규칙한 소리는 카인의 신경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단순한 소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음산하고, 어딘가 살아있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다.
카인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움에 굴복해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는 이 학원의 어둠을 파헤쳐야 할 운명을 느꼈다. 어쩌면 그게 자신이 이 세계에 온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었다. 공기 중에는 퀴퀴한 냄새 외에도 희미하게… 피 비린내가 섞여 있는 듯했다. 그의 코끝이 찡했다. 착각일까? 아니, 분명했다. 아주 희미하지만, 비릿한 쇠 냄새. 누군가의 피가 이곳에 말라붙어 있다는 증거였다.
마침내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이중 철문이었다. 문에는 아무런 손잡이나 틈도 없었다. 그저 굳게 닫힌 채로, 낡은 쇠사슬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봉인되어 있었다. 쇠사슬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녹이 시뻘겋게 슬어 있었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붉은 자국들이 보였다. 얼룩덜룩하게 묻어 말라붙은 그 자국들은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건… 피인가?” 카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도, 끌리는 소리도. 오직 침묵만이 공간을 압도했다. 그 침묵은 전보다 훨씬 더 소름 끼쳤다. 마치 문 너머의 존재가 자신의 침입을 알아챈 듯, 숨을 죽인 채 그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안 돼…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카인은 마법등을 들어 거대한 철문을 비췄다. 쇠사슬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문틈. 그 틈새로 아주 미약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붉은 빛. 마치 먼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불길하면서도 어딘가 유혹적인 그 붉은 기운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때였다.
문틈 사이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어가 아닌, 그저 의미를 알 수 없는 음절의 나열. 하지만 그 소리는 카인의 뇌리를 파고들어 불쾌한 전율을 일으켰다. 그의 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도망쳐!*
“저 안에서… 대체 뭘…”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문에 귀를 대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문에 닿기 직전,
*콰아앙!*
거대한 굉음이 지하 공간을 뒤흔들었다. 문 너머에서 터져 나온 듯한 강력한 충격파. 카인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뒤로 나자빠졌다. 돌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면서도, 귓가에는 아찔한 이명이 울렸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그의 손에서 미끄러진 마법등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크윽…!”
온몸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고통보다 더 강렬한 것은 공포였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진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방금 전까지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중앙에서부터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며 쩍- 하고 벌어지고 있는 것을.
벌어진 문틈 사이로, 아까보다 훨씬 더 강렬한 붉은빛이 마치 용암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섬뜩한 비명 소리가 그의 귓가를 찢어발겼다.
그것은 사람의 비명 같았지만, 어떤 인간도 낼 수 없는 극도의 고통과 광기가 뒤섞인 소리였다. 마치 수많은 영혼들이 한꺼번에 고통받는 듯한.
“아아아아아아아악!”
카인은 굳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벌어진 문틈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실루엣.
수많은 촉수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는 형상. 그것들은 피로 얼룩진 살덩이 같기도, 끈적이는 어둠의 그림자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핏빛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거대한 눈동자.
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정확히 카인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끔찍한 공포에 질린 채, 카인은 그 끔찍한 진실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 눈동자에 의해 잠식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