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천하제일 비몽사몽
“우오오오오!”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거대한 비무장을 가득 메웠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경기장 중앙에는 고대 유적에서 공수해 온 듯한 거대한 대리석 검 형상의 조형물이 솟아 있었고, 그 주위를 십만 관중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늘 높이 펄럭이는 무림맹의 오색 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추듯 휘날렸고, 웅장한 북소리는 심장 박동과 겹쳐져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오늘이야말로, 천하의 운명을 결정지을 무림 최고수들의 대회가 막을 올리는 날이었다. 수년 전부터 무림 각지에 퍼지기 시작한 음침한 기운, 그리고 이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오직 한 명, 무림 최고수의 힘만이 필요하다는 예언이 있었다. 그 최고수를 가리기 위한 대회가 바로 ‘천하제일 무도대회’였다.
“첫 번째 경기! 북천문의 맹주, 냉철한 검 한태풍 고수와… 청운파의 신성, 비뢰검 강민혁 고수입니다!”
우렁찬 해설자의 목소리가 마법처럼 증폭되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북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열광적인 시선 속에서, 두 명의 고수가 경기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한태풍은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강민혁은 번개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노려봤다. 팽팽한 기운이 경기장 전체를 무겁게 짓눌렀다.
VIP 좌석,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창문 너머로 한소월은 팔짱을 낀 채 경기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새까만 눈동자는 차갑게 빛났고, 단정하게 올려 묶은 머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 또한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자, 무림맹 맹주의 자리를 이어받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였다.
“음, 북천문의 검법은 여전히 단조롭군. 힘에만 의존하는군.”
소월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비단 부채를 나른하게 흔들던 노인이 껄껄 웃었다.
“아직 젊은 친구들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니냐, 소월아? 네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할아버지, 저는 저들보다 일각 안에 상대를 제압했을 겁니다.” 소월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노인은 다시 한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오만함이 아닌, 순수한 실력에 기반한 자신감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에서는 격렬한 검풍이 몰아쳤다. 강민혁의 비뢰검은 마치 천 개의 번개가 춤추는 듯 현란했지만, 한태풍의 검은 거대한 폭풍처럼 모든 공격을 집어삼켰다. 결국 한태풍의 검 끝이 강민혁의 목덜미에 닿는 순간, 경기가 끝났다.
“승리! 북천문의 맹주, 한태풍 고수입니다!”
경기장은 다시 함성으로 뒤덮였다.
소월은 만족스러운 듯 옅게 미소 지었다.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무림 최고수의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다.
“다음 경기! 백룡문의 고수, 위평 고수와… 흑혈문의 숨겨진 비검, 강진혁 고수입니다!”
해설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강진혁’이라는 이름에 소월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흑혈문? 오랫동안 쇠락하여 무림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문파가 아니던가? 게다가 ‘숨겨진 비검’이라니, 이런 중요한 대회에 그런 어설픈 수식어를 붙이다니.
“뭐야, 저 사람은 어디 있어?”
관중석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위평 고수는 이미 경기장에 올라 우뚝 서 있었지만, 흑혈문의 강진혁이라는 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해설자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스쳤다.
“강진혁 고수! 강진혁 고수, 어서 경기장으로 입장해주십시오!”
몇 번의 호출에도 응답이 없자, 경기장은 술렁임을 넘어 야유와 조롱으로 변해갔다.
“저런 자가 무림 최고수? 기권이나 해라!”
“흑혈문은 역시 끝났군!”
소월은 혀를 찼다. “꼴사납군. 이런 식으로 천하제일 무도대회의 위상을 떨어뜨리다니.”
바로 그때였다.
경기장 한쪽 구석, 선수 대기석에서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길고 지저분한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쳐 있었고, 겉옷은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어딘가에 홀린 듯한 몽롱한 표정이었다.
“어이쿠, 젠장… 내 차례였나? 방금 꿈에서 용이랑 싸웠는데, 아쉽게 결판을 못 냈네.”
강진혁이었다.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웅장한 경기장을 한번 훑어보더니, 큰 소리로 하품을 했다.
“푸하암~ 뭐, 이 정도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좀 너무한 거 아니냐?”
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월 역시 순간적으로 말이 막혔다. 저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저런 한심한 자가 무림 최고수를 가리는 대회에 참가하다니!
“강진혁 고수! 지금 당장 경기장으로 올라가십시오! 지각입니다!” 해설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 네네. 알았어요.” 진혁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느릿느릿 경기장으로 향했다. 위평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서 온 놈팽이인지 모르겠으나, 감히 천하제일 무도대회를 모욕하는군. 흑혈문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런 오합지졸을 내보내다니.”
진혁은 위평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경기장도, 상대도, 자신을 둘러싼 시선도 모두 투명인간인 것처럼 말이다.
“시작!”
해설자의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위평은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며 진혁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무공은 백룡문의 이름처럼 거침없고 맹렬했다.
“크하하하! 이거나 받아라! 백룡파쇄권!”
위평의 철퇴는 강진혁의 머리를 향해 맹렬하게 내리찍혔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대리석 바닥이 박살 났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진혁이 없었다.
“어… 어디 갔지?” 위평이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때, 진혁이 위평의 등 뒤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흙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
“아, 젠장. 늦잠 자서 아침도 못 먹었는데, 갑자기 움직이니까 배고프네.”
진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게슴츠레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 소월의 눈에 그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무척이나 빠르고, 전혀 불필요한 동작이 없는, 지극히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뭐, 뭐냐! 언제 뒤로 간 거지?” 위평이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려 했다.
“아, 이제 끝낼까요? 저 진짜 피곤해서.”
진혁의 손이 위평의 어깨에 가볍게 닿았다. 그 순간, 위평의 몸은 마치 거대한 폭풍을 맞은 나무처럼 휘청이더니, 그대로 경기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대자로 뻗어버렸다.
“승리! 흑혈문의 강진혁 고수입니다!” 해설자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외쳤다.
경기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수십 초 전만 해도 야유를 퍼붓던 관중들은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불과 일각 전만 해도 천하제일 고수라고 불리던 위평이, 저렇게 허무하게 패배하다니. 그것도 늦잠 자서 비몽사몽 한 사람에게!
소월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저 움직임… 저건 단순히 빠르다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공간을 읽고, 상대의 흐름을 역이용하는 극상의 경지… 흑혈문에 저런 자가 숨어 있었다니.’
진혁은 자신의 승리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다시 큰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경기장을 걸어 나왔다.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은 방금 전의 압도적인 강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아, 진짜 졸리네. 다음은 언제지? 빨리 끝내고 쉬고 싶다.”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소월의 귀에 쨍하게 박혔다. 소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무림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대회를 저런 태도로 임하다니. 오만하고, 불성실하며, 경박하기 짝이 없는 사내.
진혁은 경기장 출구를 향해 걷다가, 문득 소월이 앉아있는 VIP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마치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비웃음인지, 아니면 그저 피곤해서 힘이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소월은 그 미소를 보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저건 명백한 도발이었다.
‘강진혁… 반드시 저 오만한 자를 내 손으로 꺾어야만 해. 천하의 운명을 저런 한심한 자에게 맡길 수는 없어!’
그녀의 주먹이 저절로 꽉 쥐어졌다. 이번 대회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강진혁이라는 저 이름은, 꽤 오랫동안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