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제국의 아가리**
강혁은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멀리서 희미하게 풍겨오는 시큼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찔렀다. 발밑은 부서진 벽돌과 깨진 유리 조각,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물질들로 가득했다. 그의 낡은 전투화가 밟을 때마다 불쾌한 소리를 냈다.
“움직여.” 강혁이 짧게 명령했다. 목소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은 자동 소총의 개머리판을 꽉 쥐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진우는 이미 앞서 나가 있었다. 그는 어둠 속의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의 시선은 낡고 녹슨 건물들의 그림자 속을 꿰뚫고 있었다.
이곳은 제국 수도의 가장자리, 과거에는 빈민들이 모여 살던 구역이었다. 지금은 ‘감염자’들이 들끓는 버려진 땅이 되었지만, 제국은 이곳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저 아래, 지하 깊숙이 제국의 비축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우리의 목표였다.
“진우, 이상 없어?” 강혁이 속삭였다.
앞서가던 진우가 손을 들어 멈춰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바닥에 귀를 댔다. 낡은 하수구 뚜껑이 삐걱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눈빛은 심각했다.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세 마리.”
강혁의 미간이 좁아졌다. “제국 병사는?”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감염자 치고는 움직임이… 규칙적입니다.”
유나가 총을 고쳐 쥐었다. “제국이 감염자들을 훈련시키나요?”
“그럴 리가.” 강혁이 일축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제국은 늘 상상 이상의 잔학함을 보여왔다.
“저기, 저 건물 뒤편입니다.” 진우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이동했다. 낡은 상점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끔찍한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강혁은 한때 이곳이 번화했을 거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죽음과 절망만이 가득한 폐허였다.
모퉁이를 돌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 마리의 감염자가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갇힌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벽에 설치된 낡은 투광등의 빛을 받으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어떤 실험의 피실험체처럼. 그리고 그 앞에는… 제국 병사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은 장갑을 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작은 유리병이었다.
“젠장.” 유나가 읊조렸다. “미쳤어, 저것들.”
강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병사들은 감염자들에게 유리병 안의 액체를 억지로 먹이고 있었다. 액체를 마신 감염자들은 더욱 거칠게 날뛰기 시작했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끔찍한 울음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진우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통제 불가능한 존재들을 통제하려는 시도겠지.” 강혁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니면… 더 강력하게 만들거나.”
병사 중 하나가 다른 병사에게 손짓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보고서에는 ‘실험 성공, 개체 강화’로 기록해. 제독께서 흡족해하실 거다.”
다른 병사가 역겹다는 듯 코를 찡그렸다. “이런 더러운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차라리 전방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게 낫겠습니다.”
“닥쳐.” 첫 번째 병사가 냉랭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와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영광이다. 너 같은 하급 병사가 감히 불평할 자격이 있느냐?”
두 병사가 철창 앞에서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감염자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섬뜩하게 들렸다.
강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저 멀리, 창고 입구로 향하는 어둠 속의 길이 보였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했다. 저 제국 병사들을 처리하더라도, 또 다른 감염자들이 몰려올 것이다.
“진우, 유나.” 강혁이 명령했다. “우린 이 길로 간다.”
유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저 병사들은요? 그냥 두고 갑니까?”
“지금은 저들을 처리할 때가 아니야. 우리의 목표는 창고다. 그리고 저 병사들이 저지르는 만행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야 해.” 강혁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빛났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
진우는 말이 없었지만, 이미 강혁의 의도를 읽은 듯 몸을 돌려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저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유나가 철창 속 감염자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제 사슬을 끊으려 발버둥 치며 미친 듯이 벽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액체가 이들을 완전히 미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들린다.” 강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기억할 거다. 제국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같은 모든 이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들의 발걸음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더욱 은밀하게, 더욱 빠르게. 제국 병사들의 비웃음 소리와 감염자들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등 뒤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강혁은 알고 있었다. 이 소리는 그의 심장 깊숙이 각인되어, 절대로 잊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창고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다. 낡고 거대한 철문에는 제국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진우가 철문에 귀를 대고 잠시 기다렸다. “내부 경비는… 세 명입니다. 움직임이 규칙적이고, 간격이 깁니다.”
“좋아. 유나, 내가 신호를 주면 저 문에 설치된 센서를 부숴. 진우는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난 엄호할 거다.” 강혁이 지시했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의 단도를 쥐고 있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이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아까의 망설임은 사라지고 없었다.
진우가 철문 앞에 바싹 붙어 앉았다. 작은 도구들을 꺼내 잠금장치에 손을 댔다. 정교한 기계음이 아주 작게,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강혁은 숨을 죽이고 주위를 경계했다. 어둠 속에서 언제 감염자들이 튀어나올지, 언제 제국 순찰대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 같지 않았다. 단 몇 분의 침묵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때, 진우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해제가 완료되었다는 신호였다.
“지금이다, 유나!” 강혁이 외쳤다.
유나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소총 개머리판이 센서를 정확히 강타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센서가 부서져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진우가 철문을 활짝 열었다.
내부는 어둠과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곰팡이 냄새가 더욱 짙게 풍겨왔다.
“들어가!” 강혁이 유나와 진우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몸을 숙여 안으로 뛰어들었다.
‘끼이이이익—’
철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길고 음침하게 울렸다. 외부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자, 내부는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셋은 잠시 숨을 죽였다.
“강혁, 뭔가 이상해요.” 유나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떨려왔다.
“왜?”
“경비병들이… 없어요. 진우, 소리 안 들려?”
진우는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긴장감이 느껴졌다. “정확합니다. 인기척이 없습니다. 움직임도… 없습니다.”
강혁은 직감적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너무 쉽게 들어온 것 같았다. 제국의 중요한 비축 물자 창고가 이토록 허술할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철컥… 덜그럭…’
어둠 속 저편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리고… 흐느적거리는 발소리.
강혁은 본능적으로 총을 들어 올렸다. “숨어!”
세 사람은 벽에 바싹 몸을 붙였다. 강혁은 손전등을 꺼내 들었지만, 섣불리 켜지는 않았다. 빛은 곧 목표물을 드러내는 표식이 될 테니까.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눅눅한 땅을 질질 끄는 듯한 소리까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실체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경비병이었다.
하지만 경비병의 모습은 처참했다. 찢어진 제복 사이로 시퍼런 살점이 드러나 있었고, 뼈가 부러진 듯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의 얼굴이었다. 눈은 텅 비어 있었고, 턱은 축 늘어져 있었다. 입가에는 검붉은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분명 감염자였다.
강혁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제국 경비병이 감염자라니. 어떻게?
그 경비병 감염자는 손에 낡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횃불의 희미한 불꽃이 어둠 속에서 일렁이며, 창고의 거대한 규모와 그 안의 수많은 그림자들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었다.
횃불의 불빛이 강혁 일행이 숨어 있는 곳에 가까워졌다.
유나가 숨을 멈췄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커져 있었다. 진우는 차분했지만, 그의 손은 단단히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감염된 경비병은 마치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듯이 천천히 걸어왔다. 끔찍한 신음 소리가 그의 목구멍에서 새어 나왔다.
‘크륵… 끄으윽…’
강혁은 온몸의 근육을 굳혔다. 이대로 움직이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또 다른 잔혹한 농담을 던졌다.
감염된 경비병이 그들 바로 앞을 지나치던 순간, 그의 몸에서 뭔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짤랑!’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은 굳은 바닥에 부딪혔고, 적막한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감염자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를 돌렸다. 텅 빈 눈동자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강혁 일행을 향했다.
“젠장…!” 강혁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감염된 경비병의 입에서 끔찍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횃불이 바닥에 떨어지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둠 속에서 불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꽃 너머로… 수십, 수백 개의 텅 빈 눈들이 강혁 일행을 향해 빛나고 있었다.
창고 안의 모든 그림자가, 사실은 감염자들의 무리였던 것이다.
제국의 아가리는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그들은, 그 아가리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튀어!” 강혁의 비명과 함께, 차가운 금속음이 울렸다.
총성이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