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와 그림자
바람은 눅눅하고 축축했다. 낡은 창틀을 흔드는 소리가 마치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지훈은 창밖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방 한가운데 놓인, 촛불의 흔들리는 불빛 아래 희미하게 빛나는 그것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둠이 스며든 방 안은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흙냄새, 그리고 비릿한 쇠 냄새가 뒤섞여 숨통을 조여왔다. 퀴퀴한 공기 속에서 검은 양초 세 자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 낡은 마루바닥에는 붉은색 분필로 그려진 기묘한 문양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너무나 복잡하여 인간의 손으로 그린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훈은 굳게 다문 입술 새로 희미한 숨을 내쉬었다. 손가락 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증오라는 기름을 들이부어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처럼.
“민준… 네가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듯이, 나도 네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거야.”
그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낮게 깔려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목을 조인 사람의 소리 같았다. 촛불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에서 기괴하게 춤을 추었다. 앙상하게 마른 뺨과 움푹 들어간 눈은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이 복수를 위해 자신을 갉아먹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흙으로 빚은 듯한 작은 인형, 그리고 그 옆에는 한때 민준의 손목에서 반짝이던 고급스러운 시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유리알은 깨져 있었고, 시간은 영원히 멈춰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지훈이 일부러 박살 낸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시계가 아니었다. 민준의 아버지와 지훈의 아버지가 함께 일구어낸 사업의 성공을 기념하며 주고받았던, 두 집안의 우정과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 시계는 이제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잔해에 불과했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인형을 집어 들었다.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인형의 굴곡은 민준의 어깨선과 흡사하게 느껴졌다. 이 비참한 인형 안에, 민준의 모든 것이 갇히게 될 것이었다. 지훈은 그렇게 믿었다.
“네가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지. 이제 네 차례야.”
그는 날카로운 조각칼을 들어 자신의 왼손 손바닥을 그었다. 차가운 칼날이 피부를 가르는 고통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훈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더니, 이내 붉은 선을 따라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둑. 후둑.
선명한 핏방울들이 붉은 분필 문양 위로 떨어졌다. 붉은색과 붉은색이 만나 더욱 진득한 어둠을 자아내는 듯했다. 피가 마루에 스며드는 소리가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지훈은 고통 속에서도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픔을 즐기는 듯했다. 이 피는 자신의 고통, 자신의 증오를 담은 서약이었다. 이 피는 민준의 피를 부를 것이다.
그는 피 묻은 손으로 흙 인형을 쥐었다. 그리고 촛불을 향해 눈을 감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고대의 언어, 잊힌 목소리. 어디서 배웠는지 자신조차 알 수 없는, 하지만 뼛속 깊이 각인된 듯한 말들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처음엔 희미했지만, 점차 깊고 강력해졌다.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는 듯했다. 촛불의 불꽃이 미친 듯이 일렁이더니, 이내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방 한구석에서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듣고 있는가… 어둠의 주인이여….”
그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울려 퍼졌다. 인형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핏방울이 인형에 스며들자, 흙 인형의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검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했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뚝 떨어졌다. 마치 한겨울의 냉기가 심장을 얼리는 듯했다.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준의 시계였다. 깨진 유리알 너머, 멈춰 있던 시침과 분침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째깍, 째깍. 작고 나지막한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시계가 시간을 새기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시계의 표면 위로, 마치 핏줄처럼 검붉은 실핏줄들이 스멀스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유리알 위에서 꿈틀거리며 기괴한 형상들을 만들어냈다.
지훈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복수의 서약이 맺어지고 있었다. 어둠의 힘이 그에게 응답하고 있었다.
그 순간, 방 한구석의 그림자가 더욱 진해지더니, 거기서 무언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 같으면서도, 뼈대만 남은 듯한 기이한 형상. 그것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시선이 지훈의 심장을 꿰뚫었다. 공포가 그의 목을 죄었지만, 지훈은 이를 악물었다. 두려워할 수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자에게 두려움은 사치였다.
“민준… 이제 시작이야….”
지훈은 피 묻은 손으로 인형을 꽉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시계의 검붉은 핏줄이 더욱 선명해지더니, 유리알 안에서 섬뜩한 빛을 발했다.
**그때였다. 쩌적!**
창밖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유리가 산산조각 나는 듯한. 그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강렬한 소리여서, 지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밤하늘과 멀리 희미한 도시의 불빛만이 있을 뿐.
지훈은 다시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시계의 유리알 위, 방금 전까지 없던,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놓은 것처럼.
그것은 명백한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