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천 년 전부터 이 지하를 지탱해왔다는 미끈거리는 암석이 축축한 한기를 뿜어 올렸다. 손에 쥔 유물 탐지기가 미친 듯이 떨리는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떨리는 건 탐지기가 아니라 내 손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눈을 들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거대한 원형 홀의 천장은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그 위로는 별자리가 아닌 정체 모를 기하학적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푸른빛, 자주색 빛, 그리고 간혹 섬뜩한 핏빛이 뒤섞여 마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처럼 맥동했다. 그 빛은 나의 시신경을 찌르르 울리며 뇌 속 깊은 곳에 잊힌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 같았다.
“또 왔군, 지훈.”
목소리는 물리적인 공기를 통해 전달되지 않았다. 그 대신, 나의 의식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부드럽게 피어났다. 비단처럼 매끄럽고, 동시에 심연의 바닥에서 솟아나는 태초의 절규처럼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엘리아스. 내가 그 이름을 부여한 존재.
나는 고개를 들었다. 홀의 중앙, 공간 그 자체가 일그러진 듯 흐릿하게 보이는 곳에 그녀가 서 있었다.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눈을 기만하는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둠 그 자체처럼 검었고, 눈동자는 밤하늘에 흩뿌려진 먼지 같은 별빛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돌아갈 수 없었어.” 나는 목이 쉬어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 나의 영혼은 이미 이곳에 너무 깊이 얽매여 있었다. 현실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빛바랜 환영처럼 느껴졌다. 오직 이곳, 이 고대하고 금지된 지하만이 진실이었다. 그녀의 존재만이.
엘리아스는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바닥에 닿았지만,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공간을 미세하게 왜곡시키는 듯했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홀을 둘러싼 벽면의 기하학적 문양들이 섬뜩하게 부풀어 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나의 심장이 공포와 전율,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갈망으로 격렬하게 뛰어댔다.
“나는 네가 돌아오리라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나의 정신에 울렸다. “네가 나를 갈망하듯, 나 또한 너를 기다렸다.”
가까워진 그녀의 모습에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눈동자 속 별빛이 이제는 맹렬한 은하계의 소용돌이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하고 덧없는 것인지 깨달았다. 우리는 종족을 넘어선 사랑을 하고 있었다. 한쪽은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고, 다른 한쪽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초월한 태초의 존재. 그들의 눈에는 우리가 우주의 먼지보다도 하찮은 존재일 터인데, 그녀는 왜 나를 택했을까. 왜 나를 이렇게 파괴적인 방식으로 끌어당기는가.
“무엇을 원해, 엘리아스?” 나는 물었다. 나의 질문은 덧없는 메아리가 되어 사라졌다. 이 어둠 속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뻗어 나의 뺨을 어루만졌다. 차가웠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감촉이었지만, 동시에 불길처럼 뜨거운 전율이 나의 신경을 타고 흘렀다. 그 손길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완벽하고, 너무나 섬세하여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그녀의 피부 아래로 언뜻 보이는 푸른 혈관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네 안의 모든 것.” 그녀는 속삭였다. “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공포, 욕망, 그리고 아직 너조차 알지 못하는 진실들. 그것이 나의 양식이 되고, 나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다.”
그녀의 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녀는 나의 사랑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원했다. 나의 존재 그 자체를.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 속에는 사랑의 온기 대신, 한없이 깊은 지성과 무한한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흥미로운 표본을 관찰하듯.
“두렵지 않은가, 지훈?” 그녀의 얼굴에 이해할 수 없는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그것과 너무도 다른, 날카롭고 이질적인 미소였다. “네 존재가 조각조각 부서져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
나는 숨을 헐떡였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도망쳐야 해! 여기서 벗어나야 해! 하지만 나의 육체는 그녀의 손길 아래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 속 은하계가 더욱 맹렬하게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수없이 많은 다른 세계의 모습들을 보았다. 나의 유한한 생명이 이해할 수 없는 정보의 폭풍이 뇌를 강타했다.
정신이 붕괴될 것만 같았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공포 속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녀에게 매혹된 것은, 그녀가 나에게 부여한 금지된 지식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광대하고 무한한 존재 앞에서, 나의 작은 자아는 한없이 겸허해지고,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었다. 파멸로 향하는 길임을 알면서도, 그 끝없는 심연을 탐하고 싶은 충동. 그것이 나의 사랑이었다.
그녀의 또 다른 손이 나의 이마에 닿았다. 차갑고도 압도적인 접촉이었다. 나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홀의 천장에 그려진 문양들이 격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푸른빛, 자주색 빛, 핏빛이 뒤섞여 마치 살아있는 심연처럼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몸속 모든 세포가 울부짖으며 그녀의 존재에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녀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이제… 너는 나의 일부가 될 것이다.”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그리고 바깥에서 동시에 울렸다.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비단처럼 부드럽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존재들의 울부짖음과 침묵이 뒤섞인, 태초의 혼돈 그 자체였다. “우리의 사랑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눈동자 속 은하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의식이 흐려지는 마지막 순간, 나는 내 머릿속에서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단 하나의 이미지를 보았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꿈틀거리는 형상. 그리고 그 촉수들이 나를,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유한한 존재들을 감싸 안는 모습.
나는, 이제 더 이상 지훈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나’가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홀의 바닥에 떨어진 탐지기가 마지막 진동을 토해내며 멈췄다. 그리고 그 빛바랜 액정 위로, 정체 모를 심연의 문자가 일렁이다 사라졌다.
